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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집 - 상 ㅣ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07년 10월
평점 :
환상의 세계가 보여주는 실제의 인간.
사람이란 속을 알 수 없는 존재다. 그래서 웃고 있지만 웃는 것은 단지 얼굴의 거죽 하나 뿐, 그 속에는 어떤 표정이 있는지 알 수 없다. 물결 위는 잔잔하고 평온해보여도 수면 아래 어떤 소용돌이가 있는지 보이지 않는 것처럼.
미야베 미유키의 다른 이야기와는 좀 다른 것 같다. 외딴집은. 사람의 마음에 숨겨놓았던, 각자의 사정과 생각들이 무엇을 기폭제 삼아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되는지, 그리고 그렇게 수면 위로 떠오른 사람의 감정은 어떤 선택을 낳고 그 선택은 어떤 사건을 일으키는지. 외딴집의 무대가 되는 마루미 번은 이것을 똑똑히 보여준다. 미야베 미유키는 평소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 외딴 집처럼 아무 미동도, 기운도 없이 내재되어 있던 공포와 증오, 분노와 폭력성 같은 것들이 언제 어떻게 문 밖으로 나오는지를 따라간다. 인물들의 생사와 그들의 흘러가는 인생에 대하여 저자는 가차없다. 우리 삶이 본래 우리에게 그러하듯이. 독자의 환타지를 위하여 혹은 일말의 위로와 희망의 여지를 주기 위하여 봐주는 법은 없다. 요미우리의 서평이었던가 ‘미야베 미유키인만큼 각오하고 읽어야 한다’고 했는데 그 말이 전혀 틀리지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운명들이 가차 없이 결말로 치달아 덧없이 끝나버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는 암울하고 쓸쓸하게 끝나지만은 않는다. 가스케 대장도, 가가 님도, 우사도 결코 독자가 원하는 편안한 결말에 닿지 못한다. 그래서, 2권 중반 이후부터는 책장을 넘길 때마다 마음이 저리다. 책을 갈무리하면서는 내내 울었다. 슬프다. 하지만 절망적이고 고독하지 않다. 스스로의 힘으로 보물이라는 이름을 얻은 아이가 거기 남아있기 때문이다.
800페이지가 넘는 긴 소설 속에서 많은 미스테리가 교차한다. 미스테리의 끝에는 언제나 그렇듯 항상 비극이 있다. 미스테리 소설에서 가장 보고 싶은 것은 범인의 정체가 아니다. 무엇이 그 일을 일으켰는가이다. 그 무엇이야 말로 진짜 범인 아닌가. 마루미 번에 일어난 갖가지 비극을 떠올리며 영민들의 대부분은 당연 ‘가가 님’ 때문이라고 하겠지만, 실은 가가 님을 빌미로 문 밖을 뛰쳐나온 그들 각자의 추악함이 실제 범인이듯.
귀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쁜 일이 일어나면 으레 귀신의 짓이라고 탓을 돌린다. 귀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으므로, 항변도, 변명도 하지 못하니까. 하지만 귀신이 과연 사람에게 무슨 짓을 하겠나? 진짜 귀신은 사람 안에, 악함을 주체하지 못하는 그가 진짜 귀신인 것을.
이제 진저리가 난다. 누군가에게 울분을 풀지 않고서는 마음이 가라앉지 않는다. 그렇게 외치며 날뛰고 싶었던 사람들은 히키테들과 어부들만이 아니다. 확실히 이 소란에 불을 붙인 것은 그들이겠지만, 이 싸움이 없었다 해도 조만간 어디에선가 같은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우사는 다리가 움츠러들 정도로 무서웠다. 주엔지로 도망쳐 들어온 사람들 중에는 아는 얼굴이 적지 않은데도 모두들 다른 사람처럼 보이는 것도 무섭다. 지금까지 서로 보인 적이 없는 얼굴을 꺼내어 서로에게 보여 주고 있다. 그 얼굴은 어떨 때는 이를 드러내고 상대를 욕하고, 또 어떨 때는 절망으로 울고 있다. 잘못한 사람은 누구이고, 잘못하지 않은 사람은 누구일까. 아무도 구별할 수 없는데도 억지로 구별하여 원수를 찾아내려 하고 있다. 나도 저런 얼굴로 보일까. 358-3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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