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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남극 탐험기
김근우 지음 / 나무옆의자 / 2017년 7월
평점 :
“그래도 취직은 할 수 있습니다.”
“할 수 있겠지. 굳이 대학 졸업장 같은 거 없어도 들어갈 수 있는 데에. 정규직도 아닌 비정규직으로 그리고 한평생 이렇게 후회하겠지. 내가 왜 학창시절에 공부를 안 했을까, 하고.”
“저도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중학교 때는 야구 하느라 공부 못했지만 고등학교 올라가서는 꽤 열심히 했다고요.”
47쪽
저마다의 입장과 사정이 복잡하게 교차하는 현실. 나 자신만 해도 내 안에서 여러 욕망과 생각들이 매 순간 교차하고 엇갈린다.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하고, 애쓴다고 세상은 그렇게 쉽고 만만하게 살아지지 않는다. 나름대로 애를 써도 가끔 현실은 내가 들인 시간과 땀방울을 송두리째 부정하기도 하고,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이상한 일에 휘말려 내가 옴팡 뒤집어 쓰는 일도 적지 않다. 어떤 영혼이 마치 수호신처럼 내 귀에 뭔가를 들려준다면, 그래서 나의 앞길과 방향을 이끌어준다면 그럼 좀 나을까. 적어도 이 현실이 뻔하고 무가치해보이는, 그런 염세주의에서 벗어나서 지금 이 순간을 조금 더 충실하게 살 수 있는 마음을 갖게 될까.
그래서 [우리의 남극 탐험기]의 두 주인공은 남극으로 떠났는가보다.
사실 나는 저 둘이 남극으로 기어코 떠나서, 그 살벌하고 혹독한 추위 속으로 자신들을 내동댕이친 이유를 아직도 모르겠다. 책을 다 읽은 다음인데도. 맨 마지막에 저자의 여담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엉터리이고 헛소리’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인지 아니면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머리깨나 아픈 상황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이 아닌 다른 세상과 다른 현실을 열망하던 그들은 결국 ‘남극’이라는 판타지로 떠났다. 그 판타지의 혹한 속에서 그 어느 때보다 가까워진 죽음을 마주한 그들은 그 순간에조차 추위를 이기고 살아내야 하는 지금 이 순간이 아니라 ‘잠깐만 참으면 영원한 안식이 찾아올 텐데’라는, 또 다른 세상으로 넘어가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때 그 순간, 마음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몸은 필사적으로 지금 이 순간을 버티고 살아내려고 움직이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만 포기하고 싶었다. 지금 여기도 내가 있을 곳은 아니었다. 내가 찾아야 하는 한마디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다 포기하고 드러눕고 싶었다. 고통은 길지 않을 것 같았다. 눈에 질식하거나 혹은 동사하거나 하여튼 잠깐이면 될 것 같았다. 잠깐만 참으면 영원한 안식이 찾아올 텐데 왜 이렇게 억지를 부려야 하는가.
그렇다. 그것은 억지였다. 살고자 하는 억지였다. 죽을 게 분명한데도 살 수 있다며 부리는 억지였다. 언젠가 모든 것이 끝날 게 자명한데도 지금은 살아야 한다며 부리는 억지였다. 나는 움직였다. 아니, 내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내 몸이 억지를 부렸다.
210-211쪽
꿈을 가지고 다가올 미래를 그리며 사는 것과 현실을 부정하며 다른 세상을 열망하는 것은 분명 다른 차원의 일이다. 꿈은 현실이 되지만 망상은 폭망을 부를 뿐이다. 꿈의 닻은 항상 현실에 있다. 이 현실이 흘러 미래가 되기에, 오늘 이 순간이 없이는 내가 바라는 세상도 오지 않는다. 주인공은 마침내 남극탐험을 마치고 ‘지금’으로 돌아왔다. 나는 조사관과 나눈 마지막 대화를 읽으며 실패는 얼마나 실질적이고 고결하며 위엄이 있는가를 생각했다. 나의 닻도 현실에 있다. 그러니 나 역시, 나의 실패를 위하여 도전하고 싸워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