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독서 - 완벽히 홀로 서는 시간
김진애 지음 / 다산북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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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재밌다. 이 책장을 넘기는 게, 이 문장들을 읽어 나가는 게 정말 행복하다. 완전하게 내 편인 책을 읽는 기쁨은 이토록 경이롭다.

오롯이 내 편이다, 이 책은. 정말 진짜로 내 마음 깊은 뿌리가, 내 생각의 저 밑바닥이 닮아 있는 책이 내 편을 들어주면서 더 넓은 세계의 문 손잡이까지 쥐어주는데, 황홀하지 않을 수 있을까. 저자의 서문부터 본문 끝장까지 내내 이렇게 재미있을수 있을까 싶게 재미있어서, 나는 지난 며칠이 더운줄도 몰랐다.

 

나는 완벽히 홀로 서고 싶지도 않고, 페미니스트이고도 싶지 않다. 나는 그냥 나이고 싶다. 그런 나에게 이 책은 말한다. '그래, 모두가 그래.'

 

누군가는 페미니즘을 여성인권 향상운동이라고 혹은 남녀평등 운동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좀 다르다. 남자든 여자든, 백인이든 황인이든 흑인이든, 어른이든 아이이든, 살아 있는 인간은 누구나 본질적으로 이 생각을 하게 된다. '나답게, 하나의 인간으로서 살고 싶다.' 페미니즘의 맥락도 같다고 생각한다. 다만 여성의 입장에서 '나답게, 하나의 인간으로서' 살고 싶다고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언젠가 엠티를 가서 후배들이 과일을 깎는데, 그 중에 어떤 여자 후배 하나가 자기는 사과를 못 깎는다고 다른 걸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동기가 지나가는 말로 ', 여자애가 사과 하나도 못 깎냐.'더라. 5초도 안 되는 그 순간은 그렇게 내 기억 속에 남겨져 버렸다. 시끌 벅적했고 사건도 많았던 엠티의 수많은 시간 중에 5초도 안 되는 그 순간은 그렇게 영영 나의 뇌리에 박혀 버렸다. 후배를 핀잔했던 그가 남자 동기인지 여자 동기인지 그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남성, 여성의 역할이 그 사람다움, 인간다움이라는 기준 외의 것으로 고정되어있고 (그렇게 인식하고 있고) 그것을 입밖으로 내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우며 그것이 부당하다고 느끼는 나조차도 그 자리에서는 아무말 하지 못했다는 것. 이것이 현실이라는 것만이 중요할 뿐이다.

 

많은 여자들이 자라면서 '왜 이렇게 세상은 이상할까, 내가 여자라서 이상한가, 그럼 난 무엇을 할 수 있나, 무얼 해야 하는 건가?' 라는 의문을 품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언젠가 이글루스 블로그들을 여행하다 보았던, 내 또래 남성 블로거가 썼던 글도 잊히지가 않는다. 한국에서 청소년기를 보내고 미국에서 대학교를 다니기 시작해서 그대로 거기에 거주하게 되었다는 그는 '한국에서 자란 여자들 중에 페미니스트가 되지 않거나 하다 못해 페미니즘적인 의식이 전혀 없는 여자는 깊은 생각 없이 세상을 사는 사람 같다.'고 자기 생각을 남겼다. 보는 시각에 따라 너무 과장한 부분은 있을 수 있겠으나, 나는 저 말에 공감한다.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는 환경에서 우리는 자라온 것이다. 때문에 여자라서 갖는 의문은 이상한 일일 수 없다. 어쩌면 당연하게 가져야 할 의문들이다.

 

그런 의문 속에 성장하고 여전히 저 의문들을 품고 살아가는 여자들에게, 이 책은 하늘 아래 든든한 '내 편'이다.

좀처럼 이해받기 힘들었던 나의 의문들, 여자들끼리도 터놓고 말하기 힘든 에로스적인 부분까지도 이 책과는 이야기할 수 있다.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어떤 이야기라도 이 책은 얼마든지 들어주고 받아주는 정겨운 수다 친구가 된다.

 

이렇게 좋은 책을 세상에 내 준 저자에게 경의를 보낸다. 인생의 선배로서도, 여자라는 동지애 속에서의 동료로서도 나는 진심으로 저자를 존경한다. 이렇게 믿을만한 여자로부터, 이토록 든든한 언니로부터 삶과 여성과 책 이야기를 듣게 되다니.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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