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탱고클럽
안드레아스 이즈퀴에르도 지음, 송경은 옮김 / 마시멜로 / 2017년 6월
평점 :
절판


제목이 촌스러웠다. 거기에 홍보용으로 소개되는 줄거리는 진부했다.

그래서 이렇게 재미있는 작품을 놓칠 뻔 했다.

썩 내키지 않는 제목에 썩 궁금하지 않은 줄거리였지만 이 책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재미와 울림을 주었다.

 

[꿈꾸는 탱고클럽]의 주인공 가버는 잘나가는 기업 컨설턴트다. 눈치가 빠르고 명민하며 신중하고 때로는 과감하게 배팅을 할줄도 아는, 성공한 사회인 되시겠다.

거기에 잘생긴 얼굴에 춤으로 다져진 몸매까지. 회사에서도, 탱고클럽에서도 어디에서나 그는 시선을 사로잡는 잘난 인간이다.

우리 시대에 이런 종류의 인간은 보통 자기와 급이 맞는 사람들하고만 어울리려고 든다.

 

유명한 가수의 세련되고 현란한 뮤직비디오에서 막 튀어나온 것 같은 화려한 외모와 의상의 사람들, 더 대단한 명성과 사회적 지위를 위해서 물불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 더 어마어마한 부를 위하여 갖가지 트릭과 속임수를 사용하면서도 양심에 거리낌이 없는 사람들. 가버 그 자신이 그랬고 가버 주변의 모든 인물들이 그러했다.

 

탱고클럽에 화려한 조명처럼 삐까뻔쩍하게 흘러가던 가버의 삶에 사고가 일어난다. 운전 중에 일어난 단순한 접촉사고인 줄 알았던 이 사고는 그의 인생의 근간을 아예 바꿔버리는 엄청난 사건의 시발점이었다. 학습장애를 가졌다고 판단되어 특수학교에 모인 아이들에게 탱고를 가르치기 시작하면서 단 몇 개월만의 그의 가치관, 그의 인생관, 그의 삶 전체가 송두리째 바뀌어버린다.

 

냉철한 기업 컨설턴트로서의 그의 생은 모자른 것, 우스워 보이는 것, 누추해 보이거나 약해 보이는 것들과는 전혀 인연이 없어보였다. 하지만 약하고 모자른 아이들과의 격렬하고 짜릿한 조우는 그가 가슴 속 깊이 묻어두었던 그의 유년기의 아픔을 건드리고, 친절하게도 그 상처에 새살 돋는 약을 발랐다.

 

이 책은 정말 너무나 재미있다. 언뜻 진부하고 뻔해 보였던 줄거리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아이큐 85의 아이들과 잘나가는 어른의 만남은 당연히 아이와 어른의 동반 성장 이야기로 흐르리라고 생각은 했다. 하지만 으례 그러려니, 하는 쪽으로 이야기는 흐르지 않는다. 아이들 각자의 상황과 어려움이 너무나 선명하고 그런 상황에 대응하며 변화하는 가버의 모습은 흥미진진하다. 이야기 자체도 재미있지만 작가의 글도 경쾌하고 편안하게 잘 읽힌다. 글마다 생생한 장면이 머릿속에 필름처럼 펼쳐져, 영화 시나리오를 쓴다는 작가의 전적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또한 중간중간 작가가 전하는 존중과 양심에 대한 메시지가 마음에 오래 남는다. 아이들이 진지하게 탱고를 대하기 시작하는 그 날, 가버는 아이들에게 탱고의 가장 기본인 파트너를 존중하는 '매너'에 대해서 알려준다. 아이들이 그런 매너는 촌스럽지 않냐고 항변하자 가버의 입을 빌어 작가는 말한다. '매너는 절대 구식이 아니야. 매너는 너 자신이야.' 그리고 성장하는 아이들과 가버의 모습을 통하여 존중이라는 가치가 얼마나 아름다운 빛을 내는지 보여준다. 이뿐 아니라 작가는 어른들의 입장에서 너무나도 편안하고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속임수나 의료 윤리 등 우리 생활 곳곳에 한번쯤 생각해봐야 할 중요한 문제들을 짚어낸다. 진지한 훈수가 아니라 '이게 과연 맞을까?'라는 경쾌한 질문으로.

 

작가가 독일인이라 한국인 독자의 정서로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조금 있었지만, 전혀 아쉬움은 없다. 그만큼 재미있는 작품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