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뿔소를 보여주마
조완선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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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뿔소 새끼는 어미의 뿔을 보고 가야 할 곳을 찾는다. 코뿔소는 새끼든 어미든 뿔이 가리키는 방향으로만 간다.

 

사람의 미래는, 그가 그의 과거를 어떻게 대하느냐에 달려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제아무리 우람한 나무라도 작은 씨 하나에서 출발하고, 햇빛의 영광을 누리는 건 울창한 가지일지라도 나무의 뿌리가 깊지 않으면 강한 햇빛은 오히려 해가 된다.

뿌리가 탄탄하지 못한 나무는 시들 수밖에 없듯이 사람도 그렇다. 과거에 빚이 남겨진 사람은 미래를 빚의 그늘에서 살고 과거에 한이 있는 사람은 미래를 한의 터 위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현재는 때로 과거를 잊게 한다. 현재의 안락함과 안온함이, 현재에 누리고 있는 부귀와 권세가 사람으로 하여금 과거를 돌아보고 청산하게 만드는 의무를 잊게 한다.

하지만 시간은 그 누구의 편도 아니다. 시간은 심판자다. 시간이란 현재 권력을 쥔 자의 편도 아니고 과거 피해자의 편도 아니다. 다만 일어났던 모든 일을 간직하고 묵묵히 흘러갈 뿐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때가 되면 시간은 가증스럽고 부패한 뿌리를 샅샅이 파내어 사람의 눈앞에 드러낸다. 그렇게 사람에게 경고한다. '너의 과거에 파숫꾼을 세우지 않으면 현재는 잠잠할지라도 미래는 분명 망하게 된다'는 것을.

 

조완선 작가의 [코뿔소를 보여주마]를 읽고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지은 죄를 잊은 자들의 말로, 피해를 입은 자들의 현재..... 그 모든 것이 비극이다.

죄를 지었으므로 참혹하게 살해당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죄를 지은 자는 원한에 의한 살해가 아닌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법이 그들을 심판하기를 원치 않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법이 그들에게는 눈을 감고 나에게만 그 냉혹한 칼날을 들이대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정의가 사라진 세상에서 나라도 정의를 지키겠다는 일념은 옳은 것인가 아둔한 것인가?

 

조완선 작가는 '코뿔소는 새끼든 어미든 뿔이 가리키는 방향으로만 간다'면서 어미의 뿔이 새끼 곧 후대의 미래를 결정한다고 썼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결정된 어미의 뿔의 방향이 나의 미래를 결정한다고. 나는 이 말이 이 땅의 많은 사람들, 특히 젊은 세대들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말이라고 느꼈다.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결정된 대한민국의 정치, 사회의 모습. 우리가 태어나면서 배운 수많은 부조리와 부패와 부당함. 무엇보다도 인식 속에 그리고 사람들의 말 속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폭력. 그렇다면 다음 세대에게 우리 역시 이런 세상을 물려줄 것인가. 다음 세대가 따르게 될 뿔의 방향에 아직도 청산하지 못한 과거의 잔재들을 남겨둘 것인가.

 

작가는 이 작품을 1980년대 부당한 국가권력의 횡포에 목숨을 잃은 아버지들에게 바치는 진혼곡이라고 썼다. 부당하게 고통을 당하고 억울하게 목숨을 잃었는데도 그 누구도 진실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런 자들이 이 땅에 너무나도 많다는 것, 어쩌면 알려진 사람들보다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의 수가 더 많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슬프다. 또한 그 누구도 곪고 냄새나는 뿌리를 도려내려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슬프다. 흙으로 덮어둔 채 현재만 모면하려 그렇게 살아가고 있고 지금도 그런 자들이 살아가고 있다. 그런 자들을 겨냥한 코뿔소의 뿔은 때로는 촛불로, 때로는 서명으로 여러 개의 모습으로 어떻게든 자라가고 있다.

 

[코뿔소를 보여주마]1권으로 끝나지 않을 것 같다. 아버지들의 억울한 죽음을 세상에 알리려는 코뿔소들의 시도가 정말 그들의 목적을 이루게 될지 어떻게 될지, 책에서는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 또한 코뿔소들을 추적하는 베테랑 두식과 범죄심리학자 수연 그리고 검사 준혁이 각자의 트라우마와 과거에 진 빚들을 어떻게 청산해갈지도 미지수로 남았다. 그래서 450쪽을 넘는 분량을 순식간에 읽어버리고 다음의 이야기를 기다린다.

 

이 다음 이야기를 읽게 될 쯤에는 한국 그리고 한국인이 썩은 것을 도려내고 털어내 보다 깨끗하고 맑은 심정으로 코뿔소를 마주하게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코뿔소 새끼는 어미의 뿔을 보고 가야 할 곳을 찾는다. 코뿔소는 새끼든 어미든 뿔이 가리키는 방향으로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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