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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의 말 - 언어와 심리의 창으로 들여다본 한 문제적 정치인의 초상
최종희 지음 / 원더박스 / 2016년 12월
평점 :
절판
1)
언어가 그 사람이다. 그 사람의 언어가 사람을 사람으로 만들기도 하고, 동물이나 식물로도 만든다. 독재자의 언어를 애용하는 사람은 결국 독재자의 길을 걷는다. 박근혜가 사용하는 단어, 문장, 어법을 면밀하게 뜯어보고 그 안에 담긴 그녀의 가치관과 사고방식, 심리 상태를 국민이 진즉에 알아차렸다면, 한국 정치의 불행은 오늘의 수준까지 이르지는 않았을지 모른다. 물론 속이려고 작정한 사람에게 속지 않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런 말도 있다.
“한 번 속으면 속이는 사람의 잘못이지만, 같은 일로 두 번 세 번 속으면 속는 사람도 잘못이다.”
본문 31쪽
이 내용에 십분 동의한다.
‘그 사람이 하는 말이 그 사람’이라는 사실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손가락에 지문처럼, 우리의 말에는 우리 영혼의 결을 보여주는 문이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었다. 박근혜와 직접 말을 나누지는 못해도 박근혜가 했던 말들을 수집하여 분석했다면 그 속에서 분명 박근혜 본인조차 몰랐던 그의 얼굴을 발견할 것만 같아서다.
언어학자인 저자는 그간 출판된 박근혜의 책(일기나 연설집 따위)과 정치 활동을 하면서 그가 남긴 말들을 채집하여 자료를 삼았다. 박근혜 특유의 화법(주어가 없다든가 등등), 자주 쓰는 표현이나 단어들을 통하여 그가 어떤 입장에서 어떤 사고를 하는 인간인지를 추론했다.
막연히 감각으로 인지하던 내용들이 저자의 분석과 예시를 통하여 구체화되고 확실하게 정리가 된다. 그는 지적 능력은 고사하고 공감 능력마저 없이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사는 그야말로 ‘답정너’의 전형이었다. 적어도 그의 말이 보여주는 모습은 그렇다.
2)
책 전반에, 박근혜의 말을 분석하여 그의 민낯을 분석하려는 저자의 의도와는 좀 어긋나 보이는 부분이 많아 아쉬웠다.
박근혜가 실제로 태음인인가 아닌가는 중요치 않으나, 굳이 이 책에서 언어적 특성이 아닌 신체적 특성인 태음인으로서의 박근혜를 분석하는 게 어울리는지.
박근혜의 말을 분석하기 위하여 박근혜가 걸어온 삶의 궤적을 돌아보는 것은 지극히 옳다. 하지만 박근혜의 말에 대한 이야기보다 박근혜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게 느껴진다. 제목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그랬다. 박근혜의 말이 아니라 박근혜의 삶으로. 같은 맥락으로 박근혜의 인생에 최태민이 아주 중요한 요소라는 것은 잘 알겠으나, 박근혜의 언어가 최태민의 언어에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쓰고 싶었다면 하다못해 최태민이 남긴 말 한 두 마디 정도는 인용해서 박근혜의 말하고 대조라도 했어야 옳지 않을까. 박근혜의 인생의 기록(정황)을 통한 유추와 추측만 있다. 박근혜의 말이 궁금해서 책을 읽었는데 자꾸 박근혜와 최태민의 관계로 이야기를 끌고 들어가 어지러웠다.
3)
같은 내용이 반복되는 느낌이다. 복제되는 내용과 문장들을 좀 쳐내고 200페이지 안쪽 규모로 출간했으면 더 간결하고 좋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또한 박근혜가 유머가 없다하여 그게 그렇게 심한 정치적 장애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웃기지도 못하는 그의 무능력을 그토록 많은 글자와 페이지로 설명할 필요가 있나.
4)
백악관을 비키니를 입은 젊은 여성으로, 청와대를 겹겹이 한복을 입은 나이든 여성으로 빗댔는데 무얼 말하려는 건지는 알겠으나 부적절하다.
다른 비유를 할 수도 있었을텐데 왜 저런 비유를 들었는지. 언어가 그 사람이다.
같은 맥락으로 ‘박근혜가 실체는 어떻든 간에 지극히 여성적인 여성으로 보여 왔다는 점도’라고 쓰셨는데 이 문장도 부적절하다. 여성적인 여성이 무엇인지? 언성이 높지 않고 웃음소리도 크지 않고 행동양식도 요란하지 않으면 여성적인 여성인가?
5)
책 말미에 저자가 쓴 말이 이 책의 동기와 주제, 거의 모든 이야기를 압축하고 있는 것 같다.
“ 정치판에서 판치는 언어 성형 정치를 문제 삼아야 하는 주된 이유는 하나다. 그 직접적인 폐해가 국민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실체 없이 구호부터 남발하고 보는 것, 그것은 그 자신이 먼저 언어에 솔깃해하기 때문이다. 언어에 그 자신이 현혹되어, 번드르르 한 말만 앞세우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포퓰리스트적 언어 성형 정치가 박근혜식 정치의 근간이다. 이유도 단순하다. 인기몰이용의 그 같은 말들이 유권자들에게 내내 잘 통해 왔기 때문이다. 박근혜가 유권자를 길들였고 유권자들이 박근혜를 그렇게 길들였다. 예를 들어, 의원 시절 박근혜가 가장 일 안 하는 국회의원으로 몇 번이나 뽑혔는지 따위는 국민들이 기억하지 않는 덕도 크다. (본문 245쪽)“
그렇다. 박근혜가 유권자를 길들였고 유권자들이 박근혜를 길들였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박근혜가 가장 일 안 하는 국회의원으로 몇 번이나 뽑혔는지 따위, 나는 여전히 궁금하지 않고 기억하고 싶지 않다. 가장 일 안 하는 국회의원과 그나마 일 하는 국회의원의 차이가 개미 발톱 정도의 차이라면 왜 기억해야 하는가?
정치인의 말에 현혹되지 않기 위하여, 이제는 이전보다 더욱 면밀히 그들의 말에 주의하고 분석해야 하겠지만, (청문회를 보면서 확신한 바) 가장 일 안하는 정치가나 그나마 일 한다는 정치가나 별 차이가 없는 현실에서 느끼는 멀미는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다만 더 이상 박근혜 케이스처럼, 우리가 그들을 그리고 그들이 우리를 이토록 엉망진창으로 길들이는 일은 없어야겠지.
언어가 그 사람이다. 그 사람의 언어가 사람을 사람으로 만들기도 하고, 동물이나 식물로도 만든다. 독재자의 언어를 애용하는 사람은 결국 독재자의 길을 걷는다. 박근혜가 사용하는 단어, 문장, 어법을 면밀하게 뜯어보고 그 안에 담긴 그녀의 가치관과 사고방식, 심리 상태를 국민이 진즉에 알아차렸다면, 한국 정치의 불행은 오늘의 수준까지 이르지는 않았을지 모른다. 물론 속이려고 작정한 사람에게 속지 않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런 말도 있다.
"한 번 속으면 속이는 사람의 잘못이지만, 같은 일로 두 번 세 번 속으면 속는 사람도 잘못이다."
본문 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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