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두사호의 조난
A. 코레아르.H. 사비니 지음, 심홍 옮김 / 리에종 / 2016년 8월
평점 :
품절


아비규환.

화가 테오도르 제리코가 그린 <메두사호의 뗏목>은 절망과 공포 그리고 그 안에서 어떻게든 구원을 바라는 끈질긴 삶에의 의지가 뒤섞인 아비규환 그 자체다.

누군가는 절실하게 옷을 깃발처럼 흔들고 있는 사내들에게 시선을 고정하겠지만 나는 그보다 그들의 반대편, 송장처럼 누워 있는 인물들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창백한 피부에 절망적인 표정의 사람들은 정신을 잃었거나 이미 죽었거나. 이 널부러진 인체들을 통해서 이 뗏목이 그간 얼마나 치열하고 참담한 시간을 보냈는가를 가늠한다.

 

테오도르 제리코는 메두사호의 뗏목에서 생존한 군의관과 광산기사의 생생한 증언을 바탕으로 이 그림을 완성했다.

절망과 광기로 점철된 이 작품은 그러니까 작가의 상상이나 가상현실이 아니라 실제 바다 위의 어느 순간을 그대로 포착해낸 작품인 것이다.

 

군의관인 헨리 사비니와 광신기사 코레아르는 1816617일 오전 6, 프랑스의 세네갈 원정대 소속으로 메두사호에 올랐다.

불행히도 선장은 아주 무능하고 안일했으며 심지어 비겁했다. 그는 바다를 읽을 줄도 몰랐고 배를 어떻게 운용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그는 선장으로서의 능력을 인정받아 총독이 된 것이 아니라 현 정부의 권력을 뒷받침한 능력으로 배를 타게 되었다.

선장만 무능했으면 상황은 달랐을지 모르지만, 이 배는 조직과 위계질서마저 엉망이었다. 대부분의 군인들은 오합지졸이었고 어리석었다.

배가 모래톱에서 좌초하고 이내 부서져 가라앉기 시작하자 선장은 제일 먼저 구명정으로 탈출했다.

구명정의 수는 배에 탄 모든 이들을 태우기에는 부족했다. 결국 사람들은 폭 7M 길이 20MD의 뗏목을 만들었다. 좌초된 배의 부속을 떼어 밧줄로 엮은 뗏목이 대단한 기능을 할리 없다.

 

구명정을 타지 못한 150명이 사람들은 별다른 항해도구도 없이, 소량의 식량만을 뗏목에 묶은 채 목숨까지 실었다. 탈출 초기에 뗏목은 구명정에 밧줄로 연결되어 유인되고 있었으나 구명정을 탄 사람들은 뗏목에게는 생명줄과 같은 유인줄을 놓아버린다. 그렇게 뗏목은 버려져 표류하게 되었다.

 

뗏목에 탄 150명은 서로 싸우거나 부상이 심해지거나 파도에 휩쓸려간다. 그리고 이들은 결국 15명만이 살아남는다.

구명정을 마다하고 뗏목에 오른 사비니와 코레아르는 이 생존기를 아주 세밀하게 기록했다.

배가 출항하던 그 날부터 몇 날, 몇 시에 그들은 어느 바다의 어느 길을 따라 움직였는지 그리고 시시각각 배 위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졌고 누가 어떤 선택과 지시를 내렸는지 무척 상세하게 적혀 있다. 기록은 뗏목에 탔던 15명이 기적적으로 생존하고 그 이후 프랑스로 돌아가서 벌어진 일들까지 담아냈다.

 

이들의 기록을 읽다보면 바다는 더이상 공포의 대상이 아니게 된다. 바다라는 대자연은 사람이 어찌해 볼 수 없는 절대의 존재이며 동시에 인간을 겸손하게 만드는 경외의 존재다. 거기에는 어떤 인간적인 시선이나 감정이 섞일 여지가 없다.

 

메두사호의 뗏목은 바다 위에서 사고를 당해 파도 위를 표류했지만 정작 그들을 공포로 옭아맨 건 사람이었다. 비열하고 치졸한, 이기적이고 몰지각한 인간들.

 

뗏목을 표류하게 만든 이들도, 표류한 뗏목 위에서 서로를 죽고 죽인 이들이 참상을 만든 것이다. 몰지각한 인간들의 비열한 얼굴은 바다 위에서 뿐만 아니라 생존자들이 프랑스로 돌아가서도 계속된다. 표류하는 뗏목 위에 고립되어 동료의 시체를 먹을 수밖에 없었다는 기록보다 문명이 범람하는 프랑스에서 생존자들이 당한 처우가 더 씁쓸하고 끔찍하다. 인간이란 이토록 잔인하고 이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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