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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순, 고귀한 인생 한 그릇 - 평범한 인생을 귀하게 만든 한식 대가의 마음 수업 ㅣ 인플루엔셜 대가의 지혜 시리즈
심영순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16년 7월
평점 :
옥수동 심 선생님이 책을 내셨다.
그가 세상에 태어나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겪어온 과정을 적었다. 어떤 환경에서 어떤 마음으로 살아왔는지를 조물조물 무쳐냈다.
범상한 밥 한 그릇이 고귀한 인생 한 그릇이 되기까지의 여정이다.
예전에 김치견문록이라는 책을 읽고는 한동안 김치를 제대로 배우고 싶어 끙끙 앓았다.
김치의 세계는 정말 넓고도 깊었다.
배추도 무도 그냥 밭에서 나는 듬직한 풀떼기가 아니었다. 그 자체로 자연이였고 우주였고 삼라만상의 섭리였고 후에는 인생이 되기까지 하는 생명체였다. 식재료가 야물어가는 과정, 산지에서 캐어져서 다듬어지는 과정, 그 재료들을 혼합하여 맛깔나게 요리하는 과정. 그 어느 하나 흥미롭지 않은 부분이 없었다.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이 요리 자체가 한국인의 정서요 한국인의 얼이라고 짚어낸 부분이었다. 김치는 한국인들이 만들어 먹기 시작했기 때문에 한국요리라는 게 아니라, 한국인의 혼에서 혼으로 이어온 한국만의 정서가 뿌리깊게 담겨 있는 요리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한국요리였다.
심영순 선생의 책에서 나는 그때 느꼈던 '한국인의 맛'을 보다 명확하게 발견했다. 심 선생은 '한국이 아니면 먹을 수 없는 맛'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맛, 그 요리와 더불어 평생을 살아온 사람으로서 한국요리가 얼마나 아름답고 고귀한 문화인지를 가르쳐주었다.
어머니는 “우리 것도 아니고 남의 것도 아닌 음식을 배울 필요는 없을 것 같구나. 나는 네가 한국 음식을 제대로 배웠으면 했다. 여기는 그만 다녀라”라고 말씀하셨지요. 결국 어머니는 다음 달 학원 등록비를 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어머니의 이 말씀은 70년 나의 요리 인생에서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원칙이 되었습니다. 한 나라의 요리는 언어나 관습과 마찬가지로 그 나라 사람들의 정체성이라 말할 수 있지요. 요리 문화를 잃어버린다는 것은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고작 먹는 것 가지고 뭘 그렇게 생각하냐고 할 수도 있지만, 한국 사람들이 나물을 즐겨 먹고 국물을 좋아하고 김치 없이 밥을 못 먹고 된장, 간장, 젓갈 등의 발효 양념을 먹는 것은 우리의 역사와 기질, DNA와 다 연결됩니다.
89쪽
요리든 사람이든 정체성을 잃는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반 세기에 걸친 일제강점기 동안 우리의 정체성이 완전히 파괴되어 아직도 다리를 절듯 반쪽자리 생을 살고 있는 나라다. 온전치 못한 정체성 때문에 많은 비극과 사건들로 시끄러운 나라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더 가슴이 저렸는지도 모른다. 일제시대를 겪으면서 창씨개명까지 해야했던 어머니와 그 어머니 아래에서 대한민국의 복잡한 근현대를 오롯이 걸어온 어머니와 딸(심영순 선생의 어머니와 심 선생)의 이야기가 어떻게든 정체성 한 조각을 지켜내고자 고군분투한 우리나라의 모습처럼 느껴졌다. 요리 그 자체를 경외하고 요리에 혼을 담아 마침내는 그 정성으로 사람의 구석구석 반듯하고 바른 혼을 불어넣는 모녀가 보여주는 인생의 자세가 너무나 희귀해진 우리 사회가 애닳아서였기도 하다.
[심영순, 고귀한 인생 한 그릇]은 꼼꼼히 읽을수록 유익하고 재미있다. 계란장조림을 맛있게 하려면 생계란을 장아찌로 담궜다가 먹을 때 익혀내면 탄력이 있고 좋다 등의 요리팁은 물론이고 정성스러운 요리가 사람을 어떻게 키우는가에 대한 생생한 증언도 담겨있다. 요리법을 배우고 싶은 사람도, 아름다운 인생의 자세를 배우고 싶은 사람도, 한국요리의 특징과 정체성을 알고 싶은 사람도 모두 재미있게 읽고 많은 것들을 느끼게 될 책이다.
요리를 해준다는 것은 함께 있어준다는 것과 같은 뜻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155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