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라이시의 자본주의를 구하라 - 상위 1%의 독주를 멈추게 하는 법
로버트 라이시 지음, 안기순 옮김 / 김영사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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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얼마 전에 만년필을 선물 받았다.

그런 고급 문구류를 평생 쓸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만년필이 생겼다.

이 녀석은 생긴 모습대로, 사용하기가 영 만만한 게 아니었다. 잉크 없이 속이 비어있는 채로 선물 받았는데 나는 그것도 모르고 안에 잉크가 있는 줄 알고 한참 헤맸다. 아무리 가볍게 톡톡 두드려봐도 잉크가 나올 기미가 안 보여서 고장난 줄 알았지. 속을 열어보고 안에 잉크가 없다는 걸 알고 난 이후에도 한참 해맸다. 어떻게 잉크를 넣는지를 몰라서 말이다. 내가 우격다짐으로 잘못 다루면 혹시라도 망가질까봐 제대로 손도 못대고 이걸 어떻게 하는 거지, 눈알만 이리저리 굴리다가 포기했다. 결국 내가 이 만년필로 글자를 쓰게 된 건, 만년필 유저인 친한 동료가 도움의 손길을 베풀어준 덕분이다.

 

그가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게 세팅완료된 만년필을 건네면서 이런 말을 했다.

"만년필을 사용하는 사람의 필기 습관에 따라 촉 끝이 조금씩 마모된다. 그래서 사용자의 개성을 그대로 담은 고유의 필기구가 된다. 그게 만년필의 매력이다."

 

마침 이 책을 읽고 있었던 나는 만년필을 쓰면서 자본주의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본주의가 딱, 만년필 같아서.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촉끝이 달라지는 것처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자본주의는 덫이 될수도, 동력이 될수도 있으니까.

 

자본주의 자체가 세상을 망가뜨렸다고 하고 싶지 않다. 자본주의에는 분명 명암이 있지만, 그건 사람이 만든 모든 일이 그렇다. 어쨌든 문제는 시스템이 아니다. 문제는 사람에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 돈이 윤리를 이기는 사회가 된 가장 큰 이유는 돈 자체의 악함 때문이 아니라, 돈보다 윤리를 우선하는 사람 때문이다.

 

만년필 촉끝이 마구 마구 망가져서 종이를 찢어 일을 망칠 지경이 되었다면 그냥 두고 볼 일이 아니다.

 

[자본주의를 구하라]는 시스템의 몰락을 두 손 놓고 구경하지는 말라는 경고와 조언을 담은 책이다.

미국의 자본주의를 속속들이 파고든 저자는 특히, 한국 저자들에게 미국의 전철을 밟지 말라고 경고한다.

자본주의가 자본가들, 기업과 상위1%의 소수 마음에도 흘러가도록 두지 말라고 말한다. 결국 그 길은 모두를 망치는 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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