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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의 품격 - 조선의 문장가에게 배우는 치밀하고 섬세하게 일상을 쓰는 법
안대회 지음 / 휴머니스트 / 2016년 5월
평점 :
문장에도 품격이 있다.
사람에게 그러한 것처럼.
문장이란 사람이 쓰는 것이라 문장의 품격은 다름아닌 사람의 품격에 달렸다.
그래서 문장의 품격을 만나게 되는 일은 멋있는 문장을 만나는 일이 아니라 멋있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문장의 품격]이라는 책 제목을 읽는 순간, 나는 그런 기대에 설렜다. 멋있는 사람들을 소개받을 기회다!
조선의 문장가들은 무엇을 썼을까?
나는 오늘, 인스타00에 내가 만든 소품 사진 한 컷을 올리면서 짤막한 문장 몇 개를 썼고 점심을 먹고 난 뒤 생각난 일정들을 다이어리에 짧게 정리해 썼다. 영화를 보고 나서 느낀 것들을 달력에 두 문장으로 써 넣고 지금은 이렇게 포스팅을 쓴다. 일기거나 일정이거나 sns거나. 지극히 일상적이고 개인적인 이런 기록들, 사소하고 즉흥적인 문장들이 지배하는 내 삶과는 달리 조선의 문장가들은 분명 뭔가 그들만의 특별한 글감이 있었을 것이다.
라고, 이 책을 읽기 전에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문장의 품격은 특별한 것을 쓰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사람이 쓰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었다.
'치밀하고 섬세하게 일상을 쓰는 법'
이렇게 일상을 쓰면, 어제와 별 다를 것 없는 내 삶에도 품격이란 것이 자라게 되나?
조선의 문장가들은 참 사소한 것들을 쓰고 그것을 주고 받았다. 집에 쌀이 없으니 좀 꿔주게, 이런 부탁을 하거나 '우리집에 서재를 새로 만들었는데 거기에 어울리는 글 좀 써주시오'라는 부탁에 답신을 보내기도 했다. 내가 좋아하는 친구가 있어, 이런 자랑글을 쓰기도 하고 벗을 위로하는 짧은 편지를 쓰기도 했다. 아주 오래된 일상들이 거기 있었다. 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무엇을 생각했는지. 나와는 접점도 교집합도 거의 없는 옛날 사람들이 쓴 이야기가 재미있을 줄이야.
재미 뿐 아니라 유익하기도 하다. 애초에 글 잘 쓰는 기술에 대한 내용을 읽기 위해 이 책을 편게 아니었다. '품격 있는 문장'을 썼다고 알려진 문인들은 어떤 생각으로 살다 갔는지 궁금했다. 그런 나의 물음에 대해 이 책은 아주 적합한 답변을 해주었다.
이 책이 보여주는 많은 글, 많은 문인들의 삶이 인상적이지만 이덕무와 이용휴의 글이 특히 마음에 들어와 박혔다. 청빈.. 말이 좋아 청빈이지. 쌀을 꾸면서 술도 있으면 좀 같이 보내달라고 청하기까지 하는 것이 그들의 나날들이었다. 그런 궁핍함 속에서 그들이 문장에 담은 것은 좁은 방의 답답함이 아니라, 조금만 몸의 위치를 바꿔도 사방이 바뀌는 이치의 신비함이었다. 좋은 재료로 빚었기 때문에 좋은 그릇이 되는 게 아니라, 좋은 것을 담았기 때문에 좋은 그릇이 되는 법이다. 문장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 무엇을 생각하며 글을 쓸 것인가. 이 부분이 문장의 품격이 출발하는 지점이겠지.
시간이 지나 또다시, 글이 무엇인가 어떻게 써야 하는가 그리고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를 깊이 고민하게 될 때 꺼내 보고 싶은 책이다.
아! 우임금도 풍속을 따라 바지를 멋었고 공자도 남을 따라 사냥을 하고 잡은 짐승을 비교해보았다. 대동하는 마당에 시세를 위배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남들 하는 대로 따르기만 할 것인가? 아니다! 마땅히 이치를 따라야 한다. 이치는 어디에 있는가? 마음에 있다. 범사에 반드시 자기 마음에 물어보라! 마음이 편안하면 이치가 허락한 것이요, 마음이 편안하지 않으면 이치가 허락하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만 한다면, 따라서 행하는 일이 올바르고 하늘의 법칙에 절로 부합할 것이며, 마음의 요구에 따라 행동해도 기수(氣數: 저절로 오고 간다는 길흉화복의 운수)와 귀신이 모두 그 뒤를 따를 것이다.
69-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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