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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우리의 미래를 훔치는가 - 글로벌 보안 전문가가 최초로 밝힌 미래 범죄 보고서
마크 굿맨 지음, 박세연 옮김 / 북라이프 / 2016년 7월
평점 :
절판
작년 이맘때였나, 프랑스에서 보낸 이메일을 한 통 받았다. 신시아라는 사람이 보낸 이메일에는 첨부파일 하나가 달려 있었다.
모르는 이메일 주소, 모르는 발신인. 별 중요한 것도 없는 이메일 내용.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생각했다. 이 이메일이 왜 나한테 왔나? 혹시 지금(당시 내가) 진행 중인 건에 연결된 사람인가? 혹시 스팸인가 싶어서 첨부파일로 온 프로그램을 구글에 검색해봤다. 근데 별 위험한 내용은 안 나오더라고. 경계가 풀리자 순전한 호기심으로 나는 첨부파일을 클릭했다. 그리고 즉시 노트북에는 쓰나미가 일었다. 순식간에 노트북에 있던 모든 엑셀, pdf, jpg, 메모장 따위들에 암호가 걸렸다. 아, 이런 미친 뭐 이런 멍청한 일이, 대체 이게 뭐.. 아 놔...... 욕이 절로 나왔는데 성질을 부리는 것 보다 일단 일을 수습하는 게 급했다. 나는 서둘러 친구에게 눈물 어린 sos를 쳤다. 야 나 어떡해. 이거 수습 안 되겠니?
결론부터 말하자면 수습은 못했다. 파일들은 포로가 되었고 파일 해방을 볼모로 범인들은 돈을 요구했다. 그것도 72시간 이내에 돈을 보내지 않으면 뭐 어쩌고 저쩌고. 돈이라고? 차라리 노트북이 운명하셔서 하드를 날린 걸로 친다. 길에서 똥 밟고 옆걸음치다 모르는 사람에게 뺨 맞고 도망가다 미친개한테 물린 셈으로 하고 말지, 괘씸해서라도 돈은 안 준다. 다행스럽게도 이 놈들이 쓴 프로그램은 한글파일은 건들지 못했다. 하느님이 보우하사 나는 수많은 원고들과 문서들을 보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 두번 다시 어떤 일이 있어도 모르는 사람한테서 온 이메일은 클릭도 하지 않고 지워버린다.
내가 이 일을 당하고 나서 3주 정도 뒤에 포털에 뉴스 기사들이 올랐다. 컴퓨터에 저장된 파일에 암호를 걸어서 포로를 삼고 돈을 요구하는 신종 스팸메일이 유행하니 조심하라고. 이야, 나 얼리어답터였네. 뭐 이런 자랑스럽지도 않고 멍청하기만 한 일에 가장 발빠른 체험자가 되다니. 가문의 망신이지.
아직도 문득 떠올리면 혈압이 퐉 솟아오르게 하는 이 사건은 나에게 굉장히 큰 가르침을 주었다. 보이스피싱이니 스팸메일이니 이런 거에 당하는 사람들 중에 절대 '나'는 없을 것만 같았다. 근데 그게 아니라는 것. 나 역시도 아무 생각없이 이것저것 클릭하고 넙죽 이것저것 다운 받다보면 내 소중한 파일들을 볼모로 잡히는 일을 면치 못한다는 것. 누구라도 이런 일을 당할 수 있고 나는 그저 파일 몇 개로 끝났지만 어쩌다 패가망신 하는 수도 있고 더 심각하게는 신체의 안전을 위협받는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할 것.
실로 위험한 시대구나, 싶었다.
그래서 [누가 우리의 미래를 훔치는가]를 읽으면서 저자가 경고하는 모든 일들이 남일 같지 않았다.
책 분량이 꽤 많지만 따분하다기 보다, 이런 무게 있는 책을 완성한 저자의 노력이 느껴져 공들여 읽지 않을 수 없었다. 무작정 기술의 발전을 폄훼하고 경계하지 않는 저자는 다만 필연적인 기술 진보에 사람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지금부터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에 집중한다.
가장 도움이 되는 부분은 제일 마지막 특별 부록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이 사이버 범죄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이 순간부터라도 당장 실행해야 하는 팁들을 정리한 내용인데,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 바로 실천에 옮겼다.
혹시라도 사이버 범죄에 위협을 느끼지만 뭐부터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싶은 분들은, 이 책의 제일 뒤에 실린 이 내용부터 읽고 실천해보시는 것도 좋겠다. 그리고 나서 다소 안전해진 환경 속에서 첫 장부터 정독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