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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마지막 그림 - 화가들이 남긴 최후의 걸작으로 읽는 명화 인문학
나카노 교코 지음, 이지수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6년 6월
평점 :
그림을 보고 화가의 일생을 추적해보는 일이 몇 번 있었다. 미술 관련 책에서 줏어 읽은 이야기들이 불현듯 미술관에서 생각날 때 그랬다. 책에서 해설해주었던 그림을 지하철 광고판 앞에서 마주쳤을 때 그랬다. 선, 색 그리고 작품에 지문처럼 새겨진 분위기. 어줍잖은 눈으로 그걸 읽어내면서 어떤 생을 살았기에 이런 걸 그렸을까 가늠해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거꾸로 가봤다. 화가의 일생을 읽고 그들의 인생론을 읽고 그리고 나서 그들의 그림을 보게 됐다.
그림만 보고서는 풀리지 않았던 의문들이 화가의 일생을 이해하고 난 다음에는 풀리게 되는 경험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일본 최고의 명화 이야기꾼이라고 소개된 저자 나카노 교코의 신간[내 생애 마지막 그림]은 이전에 읽었던 여러 미술서적과는 조금 달랐다. 그림을 해설해주는 미술서적들이 대부분 이용하는 스타일을 따르지 않아서일까. 구성도 흥미롭고 내용도 재미있다.
저자는 작품이 아니라 화가를 주인공으로 두고 이야기를 진행한다. 하지만 화가 개인만이 이 책의 주인공은 아니다. 저자는 화가와 시대, 화가와 그림과의 관계를 면밀히 살펴 설명한다. 그래서 이 책이 되게 재밌다. 화가의 일생을 지배했던 주요 테마들에 따라 세 가지로 구성했다. 화가와 신, 화가와 왕, 화가와 민중. 종교화를 그렸던 화가의 일생을 살피고 궁중화가로 명성을 누렸던 화가의 일생도 살펴보고 민중과 함께했던 화가의 일생도 살펴본다. 저자가 설명을 잘해서인지 아니면 본래 화가의 일생이라는 것이 그토록 흥미로운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책은 참 재미있다. 그 화가는 이렇게 살았대더라, 이것만 있었으면 다소 따분했을텐데 이 책은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저자는 화가의 인생을 읽어 그의 작품을 세밀하게 읽어주는 안내자의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그래서 나는 '고야'의 전혀 새로운 얼굴을 보았다. 라파엘로의 단정한 그림체가 어디서 나왔는지를 알게 됐고 보티첼리의 말년을 이해하게 되었다.
미술서적의 경우에 인쇄가 특히 중요한데, 이 책은 인쇄도 괜찮다. 오랜만에 보는 <비너스의 탄생>이 너무너무 정말 감탄이 나오게 아름다워서 나는 책에 실린 그 작품을 한참이나 들여다보기도 했다. 작품이 워낙 아름답기도 하지만 작품을 감상하기에 책의 인쇄상태도 훌륭한 덕분이다.
최근에 미술전 관람이 뜸했다. 보통 여름이면 유명작가들의 대대적인 기획전을 하기 마련인데 지금 어떤 특별전이 진행되고 있으려나?
기분 좋은 미술서적을 읽고 나니 오랜만에 미술작품을 보러가고 싶어졌다. 그림에는 항상 문외한이지만 [내 생애 마지막 그림]을 읽었을 때처럼, 그림은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뜨겁고 기분이 좋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