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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 개정증보판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16년 3월
평점 :
어릴 때 할머니는 항상 그러셨다. 밥도 군것질도 항상 반쯤 남기는 나를 야단치셨다. "저 밖에 가믄 굶어 죽는 아가들이 얼매나 많은데 너는 이러고 있냐." 입이 짧았던 나는 굶어 죽는 아이들 이야기는 건너듣고 할머니의 타박만 새겨듣곤 했다. 성인이 된 후에 입이 짧은 건 고쳤지만 그때 할머니가 말씀하셨던 '저 밖에 가믄 굶어 죽는 아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건너듣는 건 여전했다.
그런데 기아대책이나 기아후원 이런 거에는 영 관심이 없던 내가 이 책을 읽게 될 줄이야. 굶어 죽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새겨듣게 될 줄이야.
유럽연합은 나름의 논리를 따르고 있어. 자국의 농민들을 살려야 하고, 그 때문에 농산물가격을 높게 유지해야 하거든. 배고픈 사람들을 돕는 것은 FAO나 WFP의 과제일 따름이지. 하지만 이들 국제기구는 우선적으로 긴급한 지역만 도울 수 있을 뿐이야. 8억 명 이상이 고통을 받고 있는 ‘구조적 기아’, 심각한 만성 영양실조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식량의 가격이나 생산량의 결정, 그리고 식량의 공평한 분배 등에 대해 FAO나 WFP는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야. 세계시장만이 힘을 가지고 있지. 그리고 그 시장은 아주 잔인하단다.
책 80쪽
그래, 시장은 잔인하다. 구조적으로 모두가 공평할 수 없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단 하나 공평한 것은 '경쟁'이다. 누구도 잔혹한 경쟁을 피해갈 수 없다는 것. 처음부터 남보다 많이 가지고 시작하는 사람들은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는데 어쩌겠냐, 다들 적응해야지 뭐.' 이런 속편한 소리로 넘어갈 수 있겠지. 하지만 남만큼 가진 것 없이 시작하는 사람들은 푸념은 커녕 숨소리 내는 것조차 힘들다.
이 경쟁이 비싼 차를 굴리느냐, 안 비싼 차를 굴리느냐 정도를 결정짓는 차원이라면 그래도 다행이다. 문제는 경쟁이 생존의 영역까지 지배하면서 나타난다.
중부 아프리카의 아이들이 하루 종일 걸어서 흙탕물 한 병을 얻어 식수로 쓰고 남미 약소국의 아이들이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것이 과연 척박한 자연환경 탓일까.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의 저자 장 지글러는 아니라고 단언한다.
이런 숫자의 배후에는 고통과 절망으로 가득 찬 세계가 존재한다.
불평등이라는 부당한 역동성이 현재의 세계질서를 결정하고 있다.
한쪽에는 민족을 초월한 소수의 과두체제에 지배되는 정치적 경제적 이념적 학문적 군사적 힘의 집중이 있다. 그리고 다른 한쪽에는 미래가 불투명한 삶, 몇 억 인구의 절망과 기아가 있다.
책 162쪽
소리 없이 매일 많은 사람을 죽이는 기아에 대한 범세계적 투쟁이 어려운 것은 또한 세계은행, 세계무역기구, 국제통화기금의 무차별적인 신자유주의 정책 때문이다.
흑인들의 예를 들어보자. 많은 부채를 안고 있는 나라의 유일한 수출 품목은 가축인 경우가 많다. 흑인 농부들과 유목민들은 수백만 마리의 낙타, 소, 양, 염소들을 가지고 있다. 미네랄을 함유한 토양 덕분에 서아프리카의 가축들은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적 독트린에 충실하게, 국제통화기금은 ‘국립 수의사국’을 민영화할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이제 거의 아무도 레바논 상인들이나 다국적 제약회사가 파는 혈청, 비타민, 구충제 등의 높은 의약품 가격을 지불할 수 없다. 가축을 기르는 농가들은 몰락하고 있다.
책 180쪽
저자는 유엔 식량특별조사관으로 오랜 시간 일했다. 그는 지구촌 수많은 나라들에서 발생한 기근 문제를 직접 보고 들은 증인으로, 이 분야의 다양한 보고서와 사례, 자료들을 모아 이 책을 썼다. 너무 많은 나라들의 너무 많은 사람들이 배고픔으로 죽어가고 있다. 그런데 이 배고픔은 근본적으로 식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사치와 향락을 합리화하는 돈이 식량의 분배는 합리화하지 않기 때문이다. 굶어 죽는 사람들을 구제할 충분한 자본과 식량이 지구촌에 존재하지만 그것이 절실한 사람들에게 전달되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는 신자유주의의 지배를 받는 세상 속에서 생존 환경 자체를 보장받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 아주 자세히 썼다. 특히 그는 '기아'에 무게를 두고 내용을 전달한다. '어린이가 굶어 죽는 것'은 국제사회, 국가와 사회의 부조리 즉 어른들의 부조리 때문에 사회적으로 가장 약자인 어린이들이 희생되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관심이 없다고 외면하고, 누군가는 '자연도태'라는 잔인한 말로 포장하는 이 처참한 현실을 알리기 위해 저자는 심혈을 기울여 책을 썼다. 그리고 이 책은 부르키나파소처럼 생소한 나라들 그러나 결국 이 시대에 나와 같이 생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처한 식량부족의 상황과 희생되는 아이들의 얼굴을 낱낱히 그려내고 있다.
북한에 대한 기아원조 가운데 매달 배급되는 의약품이나 비타민류, 단백질 보조식품 등의 3분의 1에서 절반 정도는 군부와 비밀경찰이 가로채고 있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돌고 있다는구나. 도시나 지방의 고아원에서는 아이들이 속속 죽어나가는데도 지배층은 호화롭게 살고 있나 봐.
-그게 옳은 일일까요?
뭐가? 원조가? 아니면 구호품을 가로채는 것이?
-원조를 계속하는 거요.
아빠는 구호단체의 방침에 동의해.
구호단체는 극단적인 조건에서 활동하고, 갖가지 모순들과 싸워야 해.
그러나 어떤 대가도 한 아이의 생명에 비할 수는 없단다.
단 한 명의 아이라도 더 살릴 수 있다면 그 모든 손해를 보상받게 되는 것이지.
책 92-93쪽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책을 읽는 내내 이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영양실조로 고통 받는 아이들에게 무상으로 분유를 제공하려다 살해당한 정치가를 움직였던 힘은 무엇일까? 회생 가능성이 없이 죽음에 가까운 아이를 외면하고 회생 가능성이 조금 더 있는 다른 아이에게 약을 주어야 하는 간호사가 그 정신을 유지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 모든 비극을 목도하고 설령 더 많은 비극을 보게 되더라도 단 한 명의 아이라도 더 살릴 수 있다면 계속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저자의 영혼에 있는 것은 무엇일까?
답은 사실 이미 책 속에 있었다. 저자는 서두에서부터 그 이야기로 시작했으니까.
다른 사람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느낄 줄 아는 유일한 생명체인 인간의 의식 변화에 희망이 있다. (22쪽)
기아라 국가 구조, 경제 체제의 문제인 동시에 의식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저자가 쓴대로 세계는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수없이 투쟁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기아해결의 해법을 제시하지 않았다. 기아해결을 위해 노력해온 그리고 노력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옮겼을 뿐이다. 그리고 가능성이다. 권유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공감'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이 문제 해결에 같이 하자고. 적어도 관심을 가져달라고. 알고 있어 달라고.
기아에 관한 한 시장의 자율성을 맹신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못해 죄악이다.
우리는 기아와 투쟁해야 한다. 기아문제를 시장의 자유로운 게임에만 방치할 수는 없다.
책 168쪽
배고픔의 숙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가난한 나라라도 말이다.
부족한 것은 연대감이며, 국제 공동체로부터 도움을 받고자 하는 진짜 의지이다.
책 17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