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라는 생물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4년 10월
평점 :
절판


 

다시 태어나면 다시 여자? 아님 남자?

 

 

30대에 들어선 이후 나는 가끔 혼자 이 물음을 던져 봤다.

 

20대였을 때는 '여자라서 행복해요'라는 어느 전자제품의 카피가 대유행을 했다. 나는 그 카피도, 그 카피를 읖조리는 여성 모델도 너무 좋아했다. 그래서 그때는 '여자라서 행복한건가' 라고 아주 막연하게 생각했다.

 

30대에 들어와 생각이 많아지다 보니 20대와는 당연히 여러가지가 달라졌다.

 

40대에는 더 달라지겠지, 라고 혼자 결론을 짓고 저 물음에 답은 내리지 못했다.

 

 

그런데 마스다 미리라는 문제적 언니의 에세이를 읽으면서 무릎을 쳤다.

 

! 나는 여자로 태어날 것이냐 남자로 태어날 것이냐를 고민하던 게 아니었구나.

 

나는 그냥 다시 새로운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것에 고단함과 거부감을 느낀 것이었구나.

 

 

아주 쉽고도 간단히 답을 내린 이 언니는 40

 

아주 어렵고 복잡하게 답을 회피한 나는 30

 

이것이 연륜이란 말인가

 

 

그간 마스다 미리는 여러 에세이를 냈지만 그 중에 나에게 가장 의미도 있고 재미까지 있는데다 위로마저 주었던 책을 고르라면 단연 이 책이다. [여자라는 생물]

 

 

'여자'라고 분류되는 생물에 대한 이야기. 여성이며 여자이고 생물인 존재로서 이 존재의 공통분모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마스다 미리라는 한 개인의 이야기인 이 책은 첫 페이지부터 나를 빵 터지게 했다  

 

 

가끔... 아니 솔직히 자주 화가 났다.

 

'우정'이라는 순결한 정서적 교감이 남자들의 전유물인 것처럼 취급하는 미디어도, 주변의 이야기도 짜증이 났다.

 

여자에게 우정은 있는가? 바보냐, 당연히 있지.

 

첫 장 부터, 얼음 띄운 한 여름의 사이다를 끼얹는 이 책은 책장을 넘길 때마다 유쾌한 웃음을 참을 수 없게 만든다. 웃다가 때로는 고개를 끄덕였다가, '맞아 나도 이랬는데....'하며 저자의 부끄러움을 전이 받아 손가락을 배배 꼬았다가.

 

 

여성이라는 성(섹스)으로 시작한 이야기들은 도란도란 가정에서 사회에서 여자로 성장하고 살아가면서 겪는 여자 사람의 기분과 생각으로 이어진다. 젊음을 자랑했던 어린 날과 젊음이 부럽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하는 지금의 나날이 교차하고 여자로서의 멋도 좋지만 그냥 인간으로서의 멋을 더 인정받고 싶은 속내를 담백하게 그려진다.

 

이 책이 정말 유쾌하면서도 격려가 되는 이유는 이야기의 마지막을 여성도 여자도 아닌 그냥 사람, 그냥 한 존재로서 마감하기 때문이다. 여성으로서, 여자로서 40년 이상을 이렇게 살아왔지만 뭐가 어쨌든 나는 그냥 열심히 살아온 사람이니까, 그냥 나니까. 이런 마음이 소박한 그림 사이사이 진솔한 문장 사이사이에 실려 있다. 책 제목이 그러하듯 시작은 '여자'여도 끝은 어찌됐건 '생물'에 충실하다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마스다 미리가 좋다.

 

뭐 대단한 사회적 성공이나 업적보다도, 사람의 마음을 읽어주는 이런 책들이 좋다.

 

40대가 되면, 다시 이 문제적 언니의 책들을 읽고 웃고 공감하고 위로 받으면 좋겠다.

 

50대가 되도, 그래서 이 언니는 계속 에세이를 그리고 써주길. 그래서 여성으로 여자로 생물로 살아가는 시간들을 공유할 수 있기를 바란다.

 

 

    

"힘이 장사네요."
칭찬받았다고 생각,
"네, 저 장사예요!"
장난스럽게 브이.
그런데 나중에 술자리에서 그 남자는 웃으면서 이렇게 조언해주었다.
"그럴 때는 못 든다고 하는 편이 여자로서 더 점수가 올라가요."
음, 알고 있다. 너무 잘 알고 있다. 친구가 그런 유의 패턴을 악용하는 것을 몇 번이나 목격했고, 나도 그녀들에게 목격됐을 터. 할 수 있는 일도 못 한다고 해보는 것이 인간. 아무리 정교해도 로봇들은 알 리가 없다.
나는 그때, 가볍게 내기를 했었다. 못 해요, 못 들겠어요, 해주세요,라고 하지 않는 나를 "멋지네"하고 생각해주는 남자였으면 좋겠다고, 아주 조금 기대했다.
93-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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