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의 기술 - 트럼프는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 - The Art of the Deal 한국어판
도널드 트럼프 지음, 이재호 옮김 / 살림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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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에 들어 천재에 대한 생각이 좀 바뀌었다.

 

그 전에 내가 생각하는 천재라는 사람들은 어떤 기술이 대단히 뛰어나다거나 여러가지 면에서 머리 회전이 비상하게 빠르다거나 뭐 그런 특별한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어떤 계기는 따로 없었지만 천재란 자기 자신을 뼛속까지 잘 아는 사람이라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특히 자신이 어떤 재능이 있는지를 알고 그걸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전략이 있는 사람. 바로 도널드 트럼프 같은 사람이 천재다.

    

 

십년 전 쯤에 티비쇼에서 넉살 좋게 생긴 아저씨와 그와는 닮은 듯 안 닮은 듯한 금발미녀인 딸래미가 함께 나오는걸 본적이 있다. 이름이 너무 특이해서 잠깐 봤는데도 인상에 오래 남았던 그 아저씨가 도널드 트럼프였다. 티비쇼에서 보여주는 그의 능력에 감동했다기 보단 딸이 너무 예뻐서, 부인이 엄청 미인인가 보네 감탄했던 기억만 있다. 나는 부동산에도 건축에도 관심이 없거니와 특히 그게 미국시장의 일이면 더더욱 관심이 없어서 도널드 트럼프라는 사람은 그때 잠깐 티비에서 봤던 부자 아저씨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미국 대선에 출마했다는 소식을 듣고난 직후에는 돈이 저 정도로 많으면 도전해볼만 하지, 이렇게 코웃음 쳤다.

     

 

최근에는 그가 세계의 미디어를 하루에도 열두번씩 들었다놨다 하는 걸 보고 감탄하는 중이다.

 

여러가지 의미로 대단한 사람이다. 자신이 뭘 할 수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고 그걸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지도 알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을 즐기는 그는 정말 타고난 선수다. 거래의 선수.

 

지금 그는 미국 대중에게 사이다를 주고 그 대가로 표심을 얻고 있다. 아마 어디까지 뭘 어떻게 해야 자신이 원하는 걸 얻게 될지 이미 머릿속에 계산이 다 있겠지. 대중과 거래를 하고 있다고 해야 할까 미디어와 거래를 하고 있다고 해야 할까. 암튼 도널드 트럼프의 등장으로 선거의 패러다임이 바뀐 건 사실이다. 더이상 선거는 정치가 아니다. 트럼프의 난입으로 선거는 쇼가 되었다.

    

 

그가 지금 저지르고 있는 일에 대해 박수를 보내야 할지 비난을 보내야 할지 솔직히 나는 모르겠다. 데미안을 대하는 심정이랄까.

 

분명 도널드 트럼프라는 인물이 벌이는 일에는 양도 있고 음도 있다. 어떤 면에서 그는 매우 선구적이지만 어떤 면에서 그는 악마다. 하지만 철저히 자본주의의 관점(윤리의 문제는 다른 차원이므로 배제)에서 보자면 흠잡을 데가 없다. 거침없는 발언만 가지고 보면 철없는 늙은이 정도로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그는 대단히 영민한 사업가이고 돈이 본능적으로 붙는 사람인데다 누구보다 냉철하고 때로는 씨니컬한 현실주의자다.

 

      

그런 트럼프의 일면을 보여주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 도널드 트럼프가 쓰고 1987년에 출간한 [거래의 기술[ 책의 나이와 내 나이가 비슷하지만 그렇게 오래된 책 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책 두께가 꽤 있는데도 지루하지도 않다. 그의 거침없는 성격처럼 책의 내용도 거침없이 진행되니까.

 

     

나는 항상 많은 현대미술이 사기라고 느껴왔다. 또 가장 성공한 화가는 예술가이기에 앞서 남보다 뛰어난 세일즈맨이거나 판촉 요원이라고 믿어왔다. 나는 가끔 그림 수집가들이 내 친구가 그날 오후에 그의 화실에서 한 행동을 봤다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하곤 한다. 그러나 그런 사실이 밝혀지면 그의 그림 값은 더 치솟을지 모른다. 그만큼 예술의 세계란 우스꽝스러운 것이다

57-58

 

     

땅을 살 생각이 있으면 주변에 사는 사람들에게 학교는 어떤지, 도둑은 없는지, 장보러 다니기는 편리한지 물어본다. 내가 사는 지방이 아닐 경우에는 택시를 잡아탄 뒤 운전사들에게 질문을 하기도 한다. 묻고 묻고 또 물어서 의문을 해결한 뒤에야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77

     

 

쓸 만한 가치가 있으면 돈을 써야 한다. 그러나 적정 규모 이상으로 낭비해서는 안 된다. 저소득층의 주택을 지을 때 내가 고려한 주안점은 건물을 빨리 짓되 임대가 가능하도록 경비를 적게 들이는 방법이었다. 그때부터 일을 벌일 때는 경비를 생각하게 됐고, 결코 돈을 뿌리는 일은 없었다 

87 쪽

 

 

이 책은 어디까지나 도널드 트럼프의 일면을 보여줄 뿐,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이 책이 도널드 트럼프라는 인물의 면면을 어느 정도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건 사실이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도널드 트럼프를 알기 위해 이 책을 읽은 건 아니다. 나는 그가 어떤 사람인가가 궁금했다기 보다, 나와 그의 어떤 점이 다를까가 궁금했다.

 

나는 사업가도 아니고 돈도 없고 성별도 나이도 문화도 그와는 정말 다르다. 하지만 이런 외형 혹은 물리적인 스펙 외에 다른 점은 어떨지가 궁금했다. 그가 그의 인생을 경영해 가는 면면과 습관만큼은 나와 얼마나 다를지 혹은 같을지가 알고 싶었다.

 

그래서 의문에 대한 답을 풀었는냐고?

 

나는 아직도 나를 잘 모르겠다. 내가 천재가 아닌 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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