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줌파 라히리 지음, 이승수 옮김 / 마음산책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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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하지 않게... 기대치 못했는데..... 좋은 책이었다.

 

 

벵골어라는 모국어를 가진 여자

영어권에서 자라 영어로 책을 낸 작가

이탈리아어라는 벼락을 맞아 불현듯 이탈리아어로 글쓰기를 시작한 사람

 

3명의 인물이 엎치락뒤치락하며 이야기를 전한다.

도전에 대한, 삶에 대한, 뿌리와 결실에 대한 그리고 무언가를 순수하게 탐험하고 사랑하고 잠시 파괴되었다가 마침내 새로 태어나는 것에 대한.

 

아름다운 문장이나 섬세한 묘사를 기대한다면 이 책은 그다지 감흥이 오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언어로 글쓰기에 나선 작가의 좌충우돌 위험천만 체험기이기 때문에 그런 방향으로 읽어본다면 굉장히 재미있는 책이다.

 

문장은 어딘가 둔탁하고 건조하지만 한 단어 한 단어 갖은 노력과 정성을 다해 쓴 작가의 의지가 느껴진다.  

    

 

 

이러한 독서가 영어 책을 읽을 때보다 더 친밀하고 강렬하다는 걸 알았다.

왜냐하면 나와 새로운 언어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같은 지역 출신이 아니고 가족도 아니다. 가까이에서 성장하지 않았다. 피 속에, 뼈 속에, 이 언어는 없다.

나는 이탈리아어에 매료되었지만 동시에 갑갑증을 느낀다. 이탈리아어는 내가 사랑하지만 내게는 무정하기만 한 신비였다.

모르는 단어들은 내가 이 세상에서 아직 모르는 게 많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41(사전을 가지고 읽기 중에서)

 

 

이제 이탈리아어와 내 관계를 다른 식으로 설명해야겠다고, 새로운 은유를 가져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나와 이탈리아어의 관계는 늘 낭만적인 것이었다. 번개를 맞은 것처럼 사랑에 빠진 관계였다.

이제 나 자신을 번역하면서 나는 내가 두 아이의 엄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탈리아어에 대한 내 태도가 바뀌었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그 변화는 발전, 자연스러운 과정을 반영하는 것일 터다.

사랑의 형태가 바뀐 것이다. 사랑의 결합에서 새로운 세대가 태어난 것이다.

내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점점 더 강렬해지고 순수해지고 초연해짐을 느낀다.

모성은 탯줄로 이어진 관계, 조건 없는 사랑, 단순한 끌림을 넘어 자신을 다 바칠 수 있는 헌신이다.

98(털이 부숭부숭한 청소년 중에서)

   

 

액자(삼각형의 액자. 벵골어(부모님으로부터 받은) - 영어(성장환경에 준) - 이탈리아어(본인이 선택한).

세 가지 언어가 만든 삼각형의 프레임)안에서 특별한 이미지를 볼 수 없는 건 내 인생이 어지러워서라고 생각한다

. 내가 찾는 이미지가 없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겁다. 거울에 텅 빈 공간이 비칠까봐, 거울에 비친 모습이 없을까봐 두렵다.

나는 이 빈 공간에서, 이런 불확실에서 왔다. 빈 공간이 내 원천이요 운명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 이 빈 공간에서, 이 모든 불확실에서 창조적 충동이 나왔다. 액자를 채우고자 하는 충동이 말이다.

126-127(삼각형 중에서)

 

 

라히리는 나 자신을 찾기 위해 영어를 접어두고 이탈리아어를 선택한 것을 다프네의 변신에 비유한다. 변신은 격렬한 재생 과정, 죽음이요 탄생이다. 다프네가 아폴로에게서 도망쳤듯이, 라히리는 이탈리아어로 글을 쓰면서 영어에 대한 패배감이나 성공에서 도망치는 거라고 말한다. 미국으로 이주한 인도 가정에서 태어난 라히리에게 평생 영어란 피곤한 싸움, 고통스러운 충돌, 패배감과 불안의 그림자이자 동시에 영광을 안겨준 존재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탈리아어로 글을 쓰면서는 이전에 단단히 지니고 있던 작가로서의 장비를 떼어낼 수 있기에 다시 자신을 만들어갈 수 있었다. 애벌레가 나비로 변하듯, 변신은 자연스러운 생물학적 이행이며 완전한 성장으로 이끄는 특별한 단계다.

162-163(옮긴이의 말 중에서)

 

 

글을 쓰는 입장에서라든가끊임없는 자기 탐구라든가변화 속에서 변신해가는 과정이라든가.

여러가지로 공감도 가고 재미도 있고, 가볍게 보려고 샀던 책이었는데 다 읽고 나니 인덱스 한 무더기.... 만만치않게 무거운 책이었던 것이다, 사실.

덕분에 줌파 라히리가 썼던 작품들을 찾아보게 되었다.

세 가지 언어 즉 세 가지 세상의 면을 하나씩 모아 만든 프레임으로 안팎을 탐구하는 작가는 어떤 글을 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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