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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 법칙
편혜영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6월
평점 :
중요한 건, 사람은 점이 아니라 선이라는 것이다. 인연을 두고 인생을 두고, 우리는 흘러간다고 표현한다. 생각해보면 멈춰 있는 것은 없다. 완전무결한 무관계 속에서 독수공방하는 자도 없다. 어떤 인간이든 과거로부터의 줄기를 받은 한 갈래의 선이다. 몸도, 생각도 결국에는 나를 둘러싼 선의 접점이 만든 흔적들이니까.
더 중요한 건, 선의 접점이란 선의 의지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선은 이리저리 정처 없이 흐를 뿐이다. 계획한다고 만사가 계획한대로, 다짐한다고 모든 일이 다짐 그대로 되지 않는다. 그건 신의 영역이다. 사람은 단호하고 엄정한 심판자인 시간이 일방통행으로 내어둔 선 위를 걸어간다. 어디로 가는지, 어디에 닿을지 알지 못한다. 어쩌면 그걸 아는 건 아무 의미 없는지도 모른다. 닿는다는 건 끝. 사람에게 끝이야 죽음밖에 더 있나. 종착지가 어디인가에 집중하는 건 길의 영역이다. 선의 영역은 따로 있다.
[선의 법칙]이 따라간 주요 인물들의 궤적이 올곧지도, 매끄럽지도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벽이 나타나면 잠시 혹은 아주 오랜 시간 그 자리에 고여있거나, 더 낮은 곳을 향하여 돌아 흐르는 것이 선의 법칙이다. 윤세오, 신기정, 조미연, 부이, 이수호, 신하정 모두 선의 법칙에 충실하게 움직인다. 장애물을 만나면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진로를 틀고, 다른 선을 만나면 그 접점만큼의 관계만 간직한 채 각자 서로의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런데 이 선의 법칙에는 아주 흥미로운 요소가 있다. 선의와 악의. 선은 움직이되 의지를 갖고 움직인다. 때로 의지가 선을 움직이게 만든다. 의지대로 움직이지 못할지언정 의지라는 것은 선이 결코 버릴 수 없는 숙명이다. 이 의지라는 미지수가 골치 아픈 이유는, 선이 지닌 선의와 악의가 분명하게 구별되지 않기 때문이다. 선의이기도 하고 악의이기도 한 이 의지의 모호성은 고장난 나침반이다. 선은 갈팡질팡한 궤적을 그리면서도 스스로가 어떤 모양으로 흐르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사람이란 본래 그럴 리 없는 일도 하는 존재였다. (본문 페이지 78)’ 차라리 면처럼, 동전의 앞뒤가 분명하듯 선의와 악의가 분명하게 분리된다면 어땠을까. 우리의 궤적은 보다 명료하고 서로의 입장은 더 명쾌했을까. 나는 너를 그리고 너는 나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을까? 부질없는 질문이다. 사람이란 스스로를 이해하는 일조차 실패한다. 내 안에서 하루에도 몇 천 번씩 얼키고 설키는 선을 풀다 풀다 다 풀지 못하고 종착지에 도달해버리고 마는 존재다. 그래서 작가는 어쩔 수 없이, 하는 수 없이 우리를 ‘선’으로 두어야 했나보다. 의도치 않게 엉키고 때로 꺾이지만 어떤 방향으로든 끊임없이 흐르고 흐른 만큼의 궤적을 틀림없이 남기는, 그것이 사람이니까.
작가는 미약하고 불안하게 움직이는 개인을 따라가며 점도, 면도 아닌 가느다란 선으로서의 우리들을 지면에 옮긴다. 차분하고 덤덤한 문장으로 노정을 안내한 작가는, 하얀 종이 위에 까만 잉크가 제멋대로 그린 선을 조망하듯, 분명하고 적나라하게 나타난 삶을 목도하게 했다. 세오의 집요하고 안쓰러운 악의 때문에, 신기정의 무심하고 냉담한 애도 때문에 책을 읽는 동안, 나마저 건조하고 염세적인 기분으로 끌어내려지곤 했다. 그러나 결말에 이르러 나는 세오와 이수호에게 든 연민을 죄책감 없이 간직하게 되었다. 그물처럼 엮인 선의 도가니를 자유롭게 부유한 부이에게서, 이수호의 집에서 조용히 나온 세오에게서 나는 [선의 법칙]의 선이, 선(線)과 더불어 선(善)의 법칙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신기정이가 세오의 손을 잡아쥐었던 것처럼, 어딘가에서 세오와 닮은 선을 만나게 된다면 나는 그 접점에서 잠시 그 선을 안아주고 싶다. 나 역시 세오와 같은 궤적을 그리게 되었을 때, 선의와 악의가 뒤섞인 한가운데에서 침전하고 있을 그때, [선의 법칙]에서 만났던 말들을 떠올릴 수 있기를.
윤세오를 만나도 그럴 것이다. 윤세오가 동생에 대해 애기할 수 있는 건 거의 없을 것이다. 말을 하지 않으려 해서가 아니라 아는 게 없어서. 그래도 윤세오가 제 삶을 사느라 동생을 모른 척한 게 아니라는 건 알았다. 동생과 달리 윤세오의 삶이 밝고 따스했던 것도 아니었다. 젊은 애다운 광채를 뿜어내지도 않았다. 부이의 얘기를 들으면서 신기정은 세 사람을 두고 해온 자신의 짐작이 대부분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 사람은 그저 홀로 존재하다가 어느 시기에 서로 연결되었을 뿐이다.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러는 것처럼, 그 누구의 삶도 긴밀하게 이어져 있지 않았고, 무관하게 홀로 있지도 않았다. 궁금했다. 세 사람은 비슷한 실패를 겪었다. 그 일을 하는 동안 시절이 낭랑하게 흘렀을 것이다. 친구를 잃고 시간과 희망을 잃었을 것이다. 물론 돈도. 동생처럼 많은 액수의 빚을 지기도 했을 것이다. 같은 실패를 경험한 후 시간을 통과하면서 동생은 죽고 윤세오와 부이는 살아남았다. 살아서 누군가를 뒤쫓게 되었을지라도. 페이지 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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