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모래 - 2013년 제1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
구소은 지음 / 은행나무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평화. 입 안쪽으로 동그랗게 부드러운 온기가 고인다. 평화. 내뱉는 혀끝에 바닷가 바람 같은 아련한 기운이 일렁인다.

 

 

원폭으로 폐허가 된 나가사키의 처참한 시가지 속에서 남편을 찾던 구월에게 평화란 남편 박상지 그리고 그를 데리고 돌아가 함께 꾸려갈 가정 그 자체였을 터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한태주의 위풍당당한 귀환을 기다리던 해금에게 평화란 한태주가 처음으로 책을 건네던 그 순간, 그와 함께 먹었던 아이스크림, 그와 마지막 시간을 보낸 그 밤. 엄마 구월이 그리워 잠을 이루지 못한 그 새벽, 해금에게 평화란 엄마와 함께 갔던 검은 모래밭이었을 것이다. 그녀가 그토록 바랐지만 결코 그녀의 생에서는 이루어지지 못했던 하나, 평화. 제주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구월과 그 딸 해금 그리고 그들 가문의 이야기를 그린 [검은 모래]는 그 주인공들이 간절히 바랐지만 누리지 못한 평화의 이름으로 상을 받은 작품이다(1회 제주 4·3평화문학상 수상).

 

 

모래처럼 까실하고 안개 낀 바닷물처럼 뿌연 푸른색 표지의 [검은 모래]는 일제강점기부터 오늘날까지 동아시아를 유랑하는 한국인들의 고달픈 발자취를 담았다.

일제의 잔혹한 착취를 견디다 못한 제주의 상잠녀 구월과 남편 박상지는 자녀들의 얼굴에 핀 버짐이라도 걷어보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러나 1900년대 중반, 조선 사람이 다리 뻗고 살 곳은 땅에도 바다에도 없었다. 미군의 원폭으로 초토화된 일본 영토, 지구촌 이념 전쟁의 최전방이 된 한반도. 일본 본토에서의 차별과 탄압은 끝없이 이어지고 전쟁과 정치의 칼바람 속에서 목숨들은 속절없이 스러졌다. 2차 세계대전 전후 일본과 한국, 북한을 부유한 재일한국인들의 삶은 남루하고 궁핍했다. [검은 모래]는 자기 영토에서 그들을 내어 쫓으려는 일본과 그들을 외면하는 한국, 솔깃한 거짓말로 치장한 북한 사이에 끼어 제대로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하고 살아온 재일한국인들의 반세기를 담담하게 따라간다. 그들의 깊은 슬픔과 절망에 동조하지도 않지만 남의 일처럼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바라보지도 않는다. 소설은 마치 르포의 시선처럼 간결하고 가감 없이 사실과 진실만을 전한다. 사실은 사건과 사고들이요 진실은 그 속에서 어찌할 도리 없이 먼지처럼 굴러다닌 사람들의 심정이다.

 

 

모두가 험하게 떠났다. 박상지는 원폭으로 시신조차 수습할 수 없었고,

구월은 바다에서 넋을 빼앗겼으며, 한태주마저 한국전쟁으로 귀한 목숨을 소각해버렸다.

그들만이 아니었다. 해금의 주변에는 가난하고 슬픈 삶과 처절한 죽음이 너무나 흔했다. 시대가 그랬고 전쟁이 그랬고 인생이 그랬다.

쇠털같이 많은 사람들이 민들레 홀씨마냥 풀풀 날아서 고단한 육신 내려 앉힌 곳.

그곳은 곧 삶의 터전이 되었다. 모든 것이 새로 시작되었다. 고통까지도.

고국산천을 떠나온 사람들의 운명은 질척했다.

p231

 

 

제주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1세대 구월과 박상지, 2세대 해금과 한태주 그리고 해금의 아들 켄(건일)과 손녀 미유에 이르는 4대의 이야기는 단순히 이 가문만의 사연은 아니다. 이 한스런 인생들의 궤적은 전쟁 통에 묵사발이 된 인간 존엄과 생명의 가치를 고발하고 이념 때문에 찢어 발겨진 우리의 자화상을 보여준다. 특히 재일한국인으로서 켄(건일)과 미유가 맞닥뜨린 일본사회의 차별과 갈등 그리고 그것이 해소되는 과정은 이 소설이 전하는 메시지를 잘 나타낸다. 지난 반세기, 한국과 일본은 쓰라린 전쟁과 반목의 시간을 거쳐 왔지만 이제는 함께 상처를 치유하고 새살이 돋게 해야 한다는 것. 같은 상처를 공유하고 있는 지금, 우리는 더 이상 적일 수 없다. 결말에 이르러 재일 한국인 4세대이자 한국과 일본의 피를 반반씩 물려받은 미유는 자신에게 공존하는 한국과 일본을 모두 인정하며 그 두 나라를 함께 이어가려고 한다. 저자는 미유의 모습을 통해 한국과 일본의 공존, 한국인과 재일한국인의 소통 나아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진정한 이해와 화합까지 바라본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은 진정한 평화에 얼마나 가까워 있을까? 누구도 지금을 평화의 시대라고 말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안전함과 편리함은 자꾸 평화를 잊게 한다. 이런 과도기는 오히려 어떤 의미에서 더 위험하다. 이런 세상이 열리기까지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생명과 인생을 희생했는지 잊어버리기 쉽기 때문이다. 잊는 것은 그냥 잊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우리가 그 시절을 완전히 잊어버리는 그 때, 참혹한 시대의 망령은 다시 살아나 언제라도 우리를 덮칠지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검은 모래]처럼 한스런 시대의 군상들을 그린 작품을 자주 만나야 한다. 과장된 드라마나 감정과잉의 영화로서가 아니라 사실적이고 명징한 묘사로서 그 시간들을 만나야 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화해와 이해의 에너지를 자꾸 캐내야 한다. [검은 모래]의 저자가 미야케지마의 황량한 폐허, 옛 잠녀들의 마을을 목도한 순간 느꼈던 에너지는 바로 이것 아니었을까.

 

 

 

미유는 해금이 남겨놓은 아리수와 거기에 포함되어 있는 모든 흔적들을 지키고 싶을 뿐, 욕심은 없다. 그래서 간절히 부탁한다.

많이 서툴겠지만, 도와줘.

p324

 

 

미유의 혼잣말은 그녀와 동일한 세대인 나의 목소리가 된다. 난폭한 시대가 남겨놓은 흔적이 희미해진 지금, 그 자취를 바라보는 우리는 마땅히 역사에 부탁해야 한다. 아버지를 나가사키 원폭에 잃고 어머니는 그 생계를 맡아주던 바다에 잃고 모든 것을 준 정인은 한국전쟁에서 전사하고 하나뿐인 동생마저 이념에 희생당해야 했던 해금과 같은 이들에게 많은 것을 물어야 한다. 그 시대, 원폭으로 지옥이 된 땅에서 가장 먼저 일어난 질긴 쇠뜨기처럼 살아남아주지 않았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고단한 세월을 버텨 물려준 이 유산을 잘 지키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많이 서툴겠지만,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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