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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대표적인 수필가 87인이 내 놓은 나의 대표작
김시헌 지음 / 수필과비평사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어릴 때는 한창 소설이 좋다가 조금 머리 크고 나서는 시가 좋았다.
고작 몇년 사회생활 했다고 닳고 닳은 인간이 되어버린 듯한 느낌에 지레 지쳐버린 요즘은 수필이 좋다.
이야기는 어차피 허구, 시는 비유와 상징이 난무해 피곤하다고 느낄 때 수필을 폈다.
이렇게 대단한 소설을 쓴 작가도 아궁이에 불 지피며 눈가를 훔치는 평범한 이구나
이런 존경할만한 어른도 가끔은 어처구니 없는 것에 걱정하고 안달복달하며 그렇게 인생을 사는구나
글에는 쓰는 사람이 들어가야 진심이라고 하더라.
내 피와 살, 내 조각조각이 들어가 있지 않으면 글이 숨쉬지 않는다고.
나는 수필에 삶의 흔적을 담고 그 사유의 결실을 엮어 들려주는 작가들이 좋아졌다.
간결한 싯구보다 주저리주저리 넋두리도 늘어놓고 이판저판 벌려놓은 모양새가 좋다.
스펙타클한 사건과 사고, 아름답고 처절한 인물이 날개를 펼치는 화려한 이야기가 아니라 동네 시장에서 사과를 고르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라 더욱 싱그럽다.
산책길 팔등을 간지럽히는 바람처럼 실체가 분명하면서도 아련한 이 느낌은 수필이어서 가능하지 않을까.
내로라 하는 수필가들의 대표작을 담아낸 이 책을 나는 참 감사한 마음으로 읽었다.
맹난자 선생님의 글이 유난히 좋았고 김수봉 선생님의 글에선 눈물이 났다.
글쓰기가 참 피곤하다고 느꼈던 어느날 저녁에 이 책을 읽고나선, 글쓰기는 이렇게 아름다운 일이라고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