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의 탄생 - 근대 유럽을 만든 좌우익 혁명들
데이비드 파커 지음, 박윤덕 옮김 / 교양인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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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혁명. 국가 기초, 사회 제도, 경제 제도, 조직 따위를 근본적으로 고치는 일. 이전의 관습이나 제도, 방식 따위를 단번에 깨뜨리고 질적으로 새로운 것을 급격하게 세우는 일이다. 비슷한 말로 혁신, 변혁, 개혁, 의거, 쿠데타 등이 있다.

 

1500년대 이후, 지구는 혁명의 도가니였다. 정치, 경제, 사회, 종교적인 관습이 점차로 무너지고 사람들은 새로운 시대를 만들기 위해 투쟁해왔다. 투쟁은 새로운 인식으로부터 출발했다. ‘특별한 계층이나 집단 뿐만 아니라 개인에게도 권리가 있다. 이 권리는 타자가 부여하는 권리가 아닌 인간이 인간이기 때문에 갖는 본연의 권리이며 때문에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 신과 왕, 사제에게 그 신체 뿐 아니라 사상마저 귀속되어 왔던 사람들에게 이와 같은 인식은 그 자체로 혁명이었다.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옛것이 부서져 사라지고 새것이 들어서자 사람들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어느 순간부터 변화란 발전이며 진보이자 자유가 되었다. 사람들은 옛것을 부수기 위해 투쟁했고 투쟁은 혁명이 되었다.

 

그런데 이 ‘변화’의 대목에서 우리는 고약한 의문에 빠진다. 대체 개혁과 혁명은 무엇이 다른가? 반란과 혁명의 차이는 또 뭘까? 무엇이 혁명을 혁명으로 완성하는 걸까? 데이비드 파커를 포함한 12명의 저명한 사학 교수들은 이러한 의문에 답하기 위해 근대의 혁명사를 다룬 책을 펴냈다. [혁명의 탄생]은 지난 500년의 세계사(서양사) 속 혁명을 차례차례 살펴보며 혁명에 대한 보다 깊은 탐구와 고찰을 돕는다.

 

대학생들을 위한 혁명사 강의 교재로 만들어졌다는 이 책은 유럽과 미국 등 서양세계 속에서 나타난 혁명을 사례별로 설명한다. 각 장은 혁명의 원인, 과정, 결과를 기술하면서 사회, 정치적 맥락에서 살펴보거나 그 속에서의 이념의 역할 등 다양한 시각으로 혁명을 담아냈다. ‘혁명’ 자체에 대해 다룬 ‘1장, 혁명이란 무엇인가’에서 출발해 네덜란드, 미국, 프랑스 등을 거쳐 12장에서 소비에트 탈공산주의 혁명까지 다룬다. 그런데 이렇게 친절한 설명의 끝에 달려 있을 법한 결론 챕터는 등장하지 않는다. 핵심 논점들은 책에서 제시하되 결론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었다. 독자의 자유로운 고찰을 배려한 것이기도 하지만 혁명이란 그만큼 무엇이라 규정하거나 정의하기 힘든 논제라는 것을 말없이 보여주는 대목이다.

 

2000년대, 지구는 여전히 혁명 중이다. 혁명의 근원은 유럽, 주무대 역시 미국을 포함한 서양세계였으나 더 이상 혁명은 어느 지역만의 것이 아니게 되었다. 우리 시대 혁명은 단순히 정치적이고 산업적인 것이 아닌 생활 저변의 개혁, 인식 자체의 혁신 역시 옛것을 깨뜨려 새것을 세우는 변화가 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최초의 여성대통령이 탄생한 현재의 대한민국도 일종의 혁명 중에 있는 나라 아닐까. 사상 최고의 투표율을 기록한 선거가 낳은 대통령이자 유신정권의 딸이라는 점에서, 대통령 스스로 개혁을 다짐했을 뿐 아니라 많은 이들이 대통령에게 다각도의 혁명을 청원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금 한국은 혁명의 불씨를 뜨겁게 품고 있다. 때문에 [혁명의 탄생]의 한국어판 머리말 ‘혁명은 언제 탄생하는가’의 내용은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민중의 사회적 요구들이 혁명 이데올로기의 중심을 차지하게 되면서 인류가 한층 더 평등한 사회를 향해 나아갈 수 있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때로 혁명은 실패하더라도 혁명의 사회적 성과들은 혁명 안에서보다 그 밖에서 더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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