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가게 - 제13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53
이나영 지음, 윤정주 그림 / 문학동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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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마시멜로 하나를 먹지 않고 참고 기다리면 이따가는 두 개를 먹을 수 있어.’ 마시멜로 이야기로 유명해진 스탠포드의 마시멜로 이론은 ‘욕망의 인내(자기절제)는 성공의 토양이 된다’는 가설을 만들어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실험에 주목했고 미래의 성공을 위해 눈앞의 마시멜로를 참아내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게 되었다. 당장의 괴로움을 견디면 분명 마시멜로 2개의 행복한 삶이 당연히 따라오는 것으로 철썩같이 믿고 만져보지도 못한 2배의 마시멜로를 기대하며 오늘을 꾹꾹 눌러 참는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모두 환상에서 깨어나야 한다. 삶은 마시멜로 실험장이 아니다. 누구도 먼 미래에 주어질 2배의 마시멜로를 보장할 수 없다. 그리고 보다 더 근본적으로, 2배의 마시멜로를 소유하게 되면 반드시 행복할거라고 자신하는가?

 

 

 

 

 

“네가 진심으로 행복했던 때의 기억을 주면 된단다.”

“겨우 그거예요?”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었다. 무려 시간을 주면서 그 대가가 행복했던 기억이면 된다니... 할아버지의 말이 의심스러웠다

“그런데 행복한 기억이 물건도 아니고 어떻게 드리죠?”

“너는 생각만 하렴. 그러면 시계가 알아서 움직일 거란다.

어때? 시간을 사겠니? 너한테 나쁠 건 없을 것 같은데 말이다. 더구나 너는 시간이 필요하고 말이지.”

할아버지 눈이 초승달 모양이 되어 웃고 있었다.

그래, 어차피 내게 지난 기억 따위는 필요 없다. 엄마도 늘 말했다. 앞만 보고 달리는 거라고.

페이지 17

 

 

 

 

 

 

 [시간 가게]는 말 그대로 시간을 파는 가게와 거래하게 된 초등학생 윤아가 겪는 일을 그린 판타지 소설이다. 2배의 마시멜로를 쫓아 달리며 가혹한 현재쯤이야 견뎌내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어른들의 판타지 그리고 그런 어른들이 심어준 꿈을 자기 것으로 여긴 채 이렇게 살면 잘 살게 될 것이라 생각하는 아이들의 판타지에 균열을 일으키는 소설이다.

 

 남다른 스펙, 억대 연봉과 수입차가 ‘성공’이 아니라는 말은 못하겠다. 요즘 같은 시대에 그것은 분명 성공한 삶이다. 그리고 그렇게 성공했을 때 쉽게 행복해질 수 있는 것도 사실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렇게 성공하기까지 우리의 시간은 어떻게 흘러가는가? 시간은 순간의 조합이고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의 총합이다. 미래란 현재가 차곡차곡 쌓여서 완성되는 세계이다. 지금이 행복하지 않은데 어떻게 미래가 행복할 수 있을까? 2배의 마시멜로를 위해 죽을 힘을 다해 참았는데 정작 마시멜로를 즐겨야 할 내가 그 미래에 없다면 지금의 인고가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할머닌 아빠 기억해요?”

“그럼, 기억하제. 왜 아빠 보고 잡냐?”

나는 대답 대신에 할머니 쪽으로 몸을 돌렸다.

“눈에 뵈지 않는다고 볼 수 없는 게 아니제.

눈으로만 기억하는 것이 아니고 내 몸이 기억을 하는디.. 가심은 말할 것도 없고.”

시간 가게의 할아버지도 할머니와 비슷한 이야기를 했었다.

온전히 몸과 마음이 기억하는 행복이라고 말이다.

“할머닌, 행복이 뭐라고 생각해요?”

“이게 행복이제.”

할머니가 날 꽉 안았다.

페이지 144

 

 

 

 

 

 

  영민한 [시간 가게]는 이런 부분을 톡톡 건드리며 이야기를 펼친다. 영어고사 1등, 만점 시험지와 행복한 추억을 맞바꾸게 하며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만 외치고 끝나지 않는다. 더 팔 수 있는 추억이 없을 정도로 피폐해진 윤아가 거꾸로 자신의 시간을 팔아 자기 것이 아닌 추억을 사들이는 장면에 이르면 이야기 깊이 숨겨져 있던 작가의 진짜 목소리를 듣게 된다. 성공은 살 수 있지만 행복은 살 수 없다. 행복은 나와 사랑하는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만들어지고 그 관계가 낳은 순간들이 쌓여 나를 만든다. 나와 너는 맞닿아 있고 우리의 삶은 순간을 영위하는 시험장이 아니라 과거가 현재로 또 현재가 미래로 이어지는 강이다.

 

 

  우리는 보통 현재의 편안함과 즐거움을 마시멜로라 여기고 그런 것들을 외면하는 것이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버티는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마시멜로의 본질은 ‘욕망’이다. 거짓말을 해서라도 1등을 하고 싶은 욕망, 가족과의 단란한 시간을 버려서라도 출세를 해야 한다는 욕망, 부당한 방법을 써서라도 큰돈을 벌겠다는 욕망. 그렇게 되면 누구보다 행복해질 것이라는 욕망. 우리가 외면해야 하는 진짜 마시멜로란 이 욕망이다.

  [시간 가게]가 깊은 인상을 남기는 소중한 작품이 되는 것은 바로 이 욕망을 과감히 버리는 주인공 윤아가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마지막에 이르러 윤아는 더 이상 욕망에 휘둘리기를 거부하고 시간 가게를 벗어난다. 그리고 이제 보다 주체적이고 의식적으로 움직이겠다는 윤아의 다짐으로 소설은 끝을 맺는다. 욕망의 질서 아래 수동적으로 매여 있던 인물이 욕망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다가 욕망의 파괴적인 본질을 깨닫고 스스로 그 틀에서 벗어나는 이야기는 그 주체가 청소년이기 때문에 더욱 극적이고 그래서 어른들에게 더 속 깊은 메시지를 남긴다.

 

 

 

 

 

 

“근데 그 학교는 왜 들어가려는 거야?”

“...”

엄마가 하라는 대로 했을 뿐, 이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엄마와 내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발이 퉁퉁 붓도록 일하고 고지서를 보며 한숨짓는 엄마에게 내가 유일하게 해 줄 수 있는 선물이었다.

“난 이제부터 좀 달라지려고. 숨 막혀서 죽을 거 같거든”

“어떻게?”

“아직 어떻게 할지 모르겠지만 지금 내 마음이 중요하지 않겠어? 노력하다 보면 달라지지 않을까 싶고. 너도 그랬으면 좋겠어.”

페이지 169

 

 

 

하지만 분명한 건, 행복이란 내가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말하고 싶은 것에 대해 생각해 봐야겠다.

그리고 시간을 내가 주인이 되어 써야 할 것이다.

‘윤아야, 너 지금 어떠니?’

앞으로 난 매 순간 이렇게 나 자신에게 물어볼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를 믿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내가 대견하게 느껴졌다.

페이지 197

 

 

 

 

 

 

 

 슬로시티가 관광상품으로 떠오르고 심신힐링을 위한 템플스테이 예약은 꽉 찬다고 한다. 하지만 자살률은 높아만 가고 행복지수는 낮아져간다. 우리들은 과연 어디까지 스스로를 몰아붙여야 ‘이렇게는 절대 행복해질 수 없다’고 깨달을 수 있을까? 밥상머리에 가족 간의 정든 대화가 돌아오고 돈이 성공의 기준에서 멀어지면 그때야 알게 될까? 그래도 분명한 것은 아직 우리들은 무엇이 정말 중요한지 완전히 잊어버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욕망을 위해 추억을 팔았지만 곧 우리가 삶에서 찾아야 할 진짜 중요한 것을 깨달은 윤아가 소설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많은 어른들이 윤아처럼 결심하고 또 많은 아이들이 그런 어른들로부터 욕망이 아닌 진짜 삶을 위해 움직이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시간 가게]가 문학동네 어린이문학상을 받고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있는 것부터가 그 증거이자 그런 노력의 결과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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