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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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책 중에서 이십 년도 지나지 않은 사건들을 서술한 책은 단 하나도 없을 겁니다.

나는 모든 개인적인 경험이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압니다.

아주 긴 침전의 과정을 통해서만 시적인 무게를 지니게 되지요.

시간과 기억과 노스탤지어만이 줄 수 있는 시적인 무게 말입니다.”

p160

 

책을 펴고 몇 장 읽지 않았는데 나는 기함했다. 가정부와 난교를 가지는 게 아무렇지 않을 정도의 성의식을 가진 이 남자는 대체 뭔가? 대체 창녀들과 노느라 결혼도 내팽개치는 이 괴씸하고 난잡한 남자는 대체 뭐란 말인가! 그의 90살 생일에 숫처녀인 미성년자와 하룻밤을 보내야겠다고 의뢰하는 장면에서는 책을 집어던지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저자를 믿어야 했다. 독자의 미덕은 이것이다. 특히 문학을 읽을 때는 더욱 절대적이어야 한다. 저자에 대한 믿음. 이 책을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저자가 말한 “경험이 긴 침전의 과정을 거쳐 시적인 무게”를 지니게 된 그 결과를 확인하고 싶어서가 아니었던가. 나는 참아야 했다. 그리고 참는 자에게는 복이 있다.

 

한마디로 나는 창녀들 때문에 결혼할 시간이 없었다.

그러나 아흔 살이 되던 날까지, 그러니까 더 이상 운명에 도전하지 않겠다고 결심하며

로사 카바르카스의 집을 나서기 전까지는 그렇게 말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겠다. 나는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p55

 

90살 생일을 맞은 이 남자는 사랑을 한 적이 없었다. 그의 어머니는 그에게 가족을 꾸리길 원했지만 그는 그건 언제라도 가능한 일이라고 여기다 어느새 아내도 자식도 친구도 없이 아흔살 생일을 맞아버렸다. 노인은 이 초라하고 건조한, 남기고 갈 것이 없어 이토록 부담스럽고 텁텁한 삶의 의미를 숫처녀와의 하룻밤을 통해 찾고 싶었다. 그래서 만나게 된 16살 소녀 델가디나는 그러나, 그에게 육체적 능력에 대한 확인 대신 열대의 진하고 습한 사랑을 끼얹었다. 그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그 아무것도 하지 않음이 아흔살 노인에게는 사랑이 되어 버렸다.

 

어쨌거나 당신 나이가 되면 쓸 만한지 아닌지가 늘 관건인데, 당신은 아직 쓸 만하다고

당신 입으로 말했잖아요.

나는 그녀의 말을 가로막으며, 섹스란 사랑을 얻지 못할 때 가지는 위안에 불과하다오,

하고 말했다.

p93

 

잠시 후 사육장에서 전화를 걸어와서는, 희생시키는 것 말고는 다른 수가 없는데,

그러려면 내 허락이 필요하다고 했다.

왜 그렇다던가? 내 물음에 다미아나는 너무 늙었대요, 라고 했다.

나는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고양이를 사랑하는 법은 배우지 못했지만,

늙었다는 이유만으로 죽여버리라고 할 만큼 냉정하지도 못했던 것이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설명서 어디에 나와 있는 것가?

p104

 

사랑을 얻지 못한 사람들은 사랑 대신 좌절과 절망을 저도 모르게 꾸역꾸역 그 빈자리에 채워넣는다. 이 좌절과 절망에 빠져 가라앉지 않기 위해 어떤 이는 섹스, 어떤 이는 돈, 어떤 이는 명예, 권력 등등 저마다의 기호에 맞는 어떤 것으로 다시 사랑의 빈자리를 메꾼다.

창녀와 자기 위해 결혼까지도 물린 남자의 90살 생일에서야, 입 한번 맞춰보지 못한 16살 소녀로 말미암아 사랑의 경이롭고 평화로운 그러나 고통스럽고 쓰라린 세계를 발견했다. 이 대단한 발견을 통해 그의 경험은 정제되고 침전해 시적인 무게를 지니게 되고 그렇게 그는, 그의 표현에 따르면 석쇠에 굽는 생선을 뒤집어 다른 면을 익히게 되는 것처럼, 그의 인생을 뒤집어 새로운 국면에서의 삶을 시작하게 된다.

 

나는 사랑 때문에 죽는 것은 시적 방종에 불과하다고 늘 생각해 왔다.

그런데 그날 오후, 그녀도 고양이도 없이 집으로 돌아오면서,

사랑 때문에 죽는 것은 가능한 일일 뿐만 아니라,

늙고 외로운 나 자신이 사랑 때문에 죽어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와 정반대의 것도 사실임을 깨달았다.

즉, 내 고통의 달콤함을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꾸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나는 자코모 레오파르디의 시들을 번역하려고 십오 년 이상을 허비했지만,

그날 오후에야 비로소 그중 한 대목을 마음속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오, 가련한 나, 이것이 사랑이라면, 얼마나 고통스러운가!”

p112~113

 

“그 불쌍한 아이는 당신을 미칠 정도로 사랑하고 있어요.”

햇빛이 환하게 비추는 거리로 나선 나는 처음으로 내가 나의 첫 번째 세기의 희미한 수평선에 이르러 있음을 알았다.

아침 6시 15분경 고요하고 정돈된 나의 집은 행복한 여명의 색깔을 즐기기 시작했다.

마침내 현실이 되었다. 그러니까 나는 건강한 심장으로서 백 살을 산 다음,

어느 날이건 행복한 고통 속에서 훌륭한 사랑을 느끼며 죽도록 선고받았던 것이다.

- 엔딩.....

 

고통은 삶의 방증이다. 평생에 단 한번도 고통스럽지 않았던 그는 델가디나 때문에 걱정하고 울고 분노하고 무릎을 꿇는다. 그렇게 인생을 완성한 것이다. 평생 느낄 수 없었던 시의 한 대목이 그의 심장을 뚫고 지나는 순간, 그의 인생은 거기서 결정되었다. 남은 그의 삶은 사랑이 주는 행복한 고통 속에서 어느날 미련없이 눈을 감도록. 이 아름다운 마지막을 읽고 나면 마음에는 둥실, 사랑이 날아오른다. 노화의 서글픔, 인생의 허무함. 인간이 어쩔 수 없이 공유하는 절박한 한계의 무게라는 추를 달고 사랑은 놀이공원의 풍선처럼 찬란하고 평화롭게 날아오른다.

 

인생을 완성하는 것은 사랑이라는 진부한 결론이 이토록 명징하게 다가오는 것은 순전히 저자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연륜에서 비롯한다. 그의 경험이 정제되고 침전하길 기다린 지혜로운 작가는 섹스에 탐닉해온 노인의 노년을 마치 오래된 소나무의 솔잎처럼 고상하고 향기로운 이야기로 빚어냈다. 90살 노인이 16살 소녀를 사랑하는 내용이 향기롭다고 하면 이상한가? 노인의 불쾌하고 망측한 치정사를 미화했기 때문이 결코 아니다. 고양이의 안락사를 놓고 당황할 정도로 여전히 인생에 서툰 한 남자가, 마음으로 느끼는 사랑만으로 그의 인생을 완성해내는 과정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하루 지나면 하루만큼, 1년이 지나면 다시 한살을 먹는, 그가 늙어온 시간처럼 그 모든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기 때문이 한없이 아름답고 평온하다.

 

삶은 길다. 누구나 노인이 된다. 그 어떤 노인이라도 여전히 사랑할 수 있다. 사랑은 인생을 완성하고, 인생은 사랑이 주는 생명력 안에서 재생된다. 그렇게 삶은 때로 영원까지 바라볼 만큼 길다.

당신의 긴 삶에서 누가, 당신으로 하여금 저 노인이 소유한 아침 햇살 같은 황혼을 느끼게 할 수 있을까? 누군가 즉시 떠오른다면 당신의 인생도 이미 완성되고 있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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