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을 권하다 - 삶을 사랑하는 기술
줄스 에반스 지음, 서영조 옮김 / 더퀘스트 / 201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그들 중 누구도 철학이 우리를 부자로 만들어주거나 성공으로 이끌어줄 거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에픽테토스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땅, 부, 명성, 철학은 이 세 가지 중 그 어느 것도 약속해 주지 않는다.” 그들은 철학이 외적인 부가 아니라 내면의 풍요로움을 가져다줄 수 있다고는 했다.

피타고라스와 그의 추종자들은 철학의 한계를 알았다. 그리고 철학이 우리에게 가르쳐야 하는 중요한 점 중 하나가 바로 우리가 이 책에서 첫 번째로 배운 교훈, 즉 우주에서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이 얼마나 제한되어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p187

 

 

플라톤을 들고 있었다. 누군가 물었다. ‘그런 책은 왜 읽습니까?’ 나는 딱히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나는 부자가 되기 위해서 책을 읽는 것도 아니고 남들보다 잘나가기 위해서 책을 읽는 것도 아니었다. 위대한 업적이나 (툭 까놓고, 독서가가 남길 수 있는 위대한 업적이라고 해봐야 얼마나 위대할 수 있겠나?) 누군가에게 자랑할 만한 특별한 성과를 위한 것도 아니다. ‘나’라는 존재를 규명할 방법을 책에서 찾고 있는 것뿐인데, 이런 말을 그 상대에게 건넸을 때 그가 어디까지 내 의견을 존중해줄지 알 수 없었고 굳이 존중받고 싶은 생각도 없었기 때문에 대답할 말도 없었다. (이런 의견을 존중해줄 사람이라면 처음부터 저런 질문을 하지 않았겠지.)

 

 

‘20대에 반드시 해야 할 00가지’ 따위의 자기계발서보다도 못한 처지에 놓인 지금의 철학서(적어도 저런 자기계발서를 들고 있으면 그런 건 왜 읽니?라는 질문은 받지 않는다)가 딱하다. 패스트푸드에 익숙한 사람이 채소의 생즙을 역겨워하는 것처럼, 우리는 쉽고 피상적이고 간단한 텍스트에 너무나도 익숙해져있다. 물론, 철학이 대중으로부터 멀어진 데에는 철학 스스로의 책임이 크다. 철학은 도서관 밖으로 나와 본 적이 없다. 유명한 자기계발서들에 실린 메인 아이디어들의 원형도 철학이고 수많은 심리치료사, 상담사들의 이론과 테라피 저변에 깔려 있는 것도 철학이건만 실상 그걸 접하는 대중이나 심지어 저자와 상담사 본인들도 그게 어디서부터 온 것인지 모르고 있는 이 현실은 철학이 스스로를 종잇장에만 봉인해 온 결과다.

 

 

분명 그렇다. 철학은 삶은 경제적으로 윤택하게 하거나, 불운한 사건을 행운의 사건으로 바꾼다든가, 암환자의 암세포를 궤멸시킨다든가 하는 능력이 없다. 그래서 철학은 종이 위에서는 아주 무능력하다. 하지만 이 철학이 거리로 나와 삶으로 스며들면 상황은 반전된다. 돈의 힘, 죽음의 위협까지도 넘어설 수 있게 만드는 에너지가 철학으로부터 흐른다. 이건 시너지다. 사람이 철학을 살아있게 하는 동시에 철학이 사람을 살아있게 한다. 삶은 삶대로 철학은 철학대로 떨어져 있다면 결코 나타나지 않는 이 에너지 때문에 [철학을 권하다]의 저자 줄스 에반스는 철학을 권한다. 성공해야만 하고, 돈을 끝도없이 벌어야만 하는 우리 세대를 위해 고대 그리스 철학가들의 가르침을 권한다. 홧병에 시달리고 정신질환을 앓고 잔인한 순간들에 할퀸 트라우마에 잠식된 우리들에게 절실한 삶의 기술을 권한다.

 

 

주목해야할 것은 이 ‘삶의 기술’이다. 학교에서도 심지어 부모님조차도 제대로 가르쳐주지 못하는 이 삶의 기술을, 저자는 철학에서 찾았다. ‘철학에서 해법을 찾았어요’라고 하면 먼지 냄새 폴폴나는 오래된 철학서들을 뒤적였을 것 같은 느낌이 나지만, [철학을 권하다]가 권하고 있는 철학은 매우 신선하고 선명한 거리의 공기가 배인 철학이다. 고대 철학자들과 현대 인문학을 주도하고 있는 각계각층의 운동가와 학자들을 오가며, 에반스는 철학 이론이 아닌 각 철학가들의 가장 무게 있는 메시지들을 삶에 적용하는 기술을 정리했다. 특히 믿을만한 것은 철학을 마법 주문처럼 포장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저자는 각 철학 종파와 계류를 분류하고 그들의 가르침에 어떤 힘이 있는지를 설명하면서도 아주 냉철하고 때로는 위트있게 각각의 맹점과 허점에 대해서도 꼬집는다. 절대적인 철학가도 없고 완전히 효과적인 현대 철학 운동이란 것도 없다. 이 책은 그 제목처럼 다만 ‘철학을 권한다’. 아주 오래 전부터 인간이 고민해 온 것이란 대동소이하고 때문에 고대 그리스 철학가들의 고민과 가르침도 우리 삶에 적용될 수 있으며 이 적용은 미처 기대하지 못했던 많은 변화를 삶에 불러오므로 철학을 알기를 권한다. 철학을 알고 삶에 적용하는 것이 곧 삶의 기술이 되기 때문에 삶의 여정이 남아있는 모든 사람에게 철학을 권하고 있다.

 

 

사람들이 철학을 실천하는 이유는 자신이 지녀온 믿음이 그다지 현명하지 않고, 잘 살아가는 데 도움이 안 된다고 의심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로 받아들인 철학에 진정으로 몰두하고, 그것을 정신에 각인시키기 위해 가능한 한 모든 방법을 사용하지 않으면 그 철학은 피상적인 것에 머물 것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스스로에게 말했듯, “너의 정신은 네가 습관적으로 하는 생각을 닮게 될 것이다. 그 사람이 지닌 생각의 색으로 물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영혼을 지혜로운 생각들 속에 담그도록 하라.”

p192

 

 

이 책이 다루는 철학의 범위가 서양철학, 고대나 현대나 결국 서구의 학자들로부터 시작해 서구에서 주로 다뤄지고 있는 철학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아쉽다. 삶을 사랑하는 기술을 가지게 하는 철학은 어쩌면 동양 철학에서 더 깊고 강력한 근원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지만, 그건 나의 기대일 뿐. 이 책에서 삶을 사랑하는 기술에 대한 논의는 사실상 충분하다. 남겨진 것은 저자인 줄스 에반스가 그러했듯, 이 철학들을 삶에 새기기 위해 내가 해야 할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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