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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스치는 바람 2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1권에서의 실망감은 2권으로 오면 애틋한 감동으로 모습을 바꾼다.
그 전에도 윤동주의 시를 여러번 읽었다. 그리고 지금도 나는 윤동주를 비롯한 여러 시인의 시들을 읽곤 한다.
그런데 30년동안 살면서 이런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읽히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우리는 너무 많은 시들을 너무 쉽게 읽고 있는 것 아닌가.
시는 영감이 아니다. 시는 삶이다. 우주를 밝히는 태양같은, 발을 보듬는 든든한 흙같은, 뜨듯한 손 건네는 사람같은 이 생명력 넘치는 아름다운 조선어를 빼앗긴 시인이 느낀 극한의 결핍과 처참한 고립의 삶이 그의 시를 낳았다. 그의 삶이 이렇게나 어려웠는데 그의 시가 이토록 쉼없이 가슴을 미어지게 할 정도로 눈물을 터뜨리며 쉽게 읽히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이미 몇 편의 훌륭한 역사 팩션을 발표해 한국형 팩션의 대표 작가로 인정받고 있는 이정명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도 세심하게 사건과 인물에 공을 들였다. 특히 스기야마와 유이치라는 두 일본인 간수를 실제 인물처럼 생생하게 묘사해 모든 사건들이 (비록 느리게 흐르더라도) 충분히 설득적이다. 단순히 감옥에 수감된 조선인의 심정을 그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저자는 '문학'을 사랑하는 일본인에게 전쟁이란 무엇인지, 이 아비규환 속에서 그들은 어떤 심정이었는지를 세밀하게 그렸다. 조선의 시인과 그의 시를 향한 이 두 일본인 간수의 애정과 인간적 양심은 이 책이 그린 '인간애'를 더욱 진하게 완성한다. 소재는 '윤동주'일지라도 그의 궤적을 통해 이야기는 '말과 글' 즉 문학이 인류 공통에게 얼마나 위대하고 아름다운 힘을 발휘하는지로 귀화한다. 문학이 시인, 간수, 평범한 청년의 인생에 얼마나 강렬한 변화를 선사하는지 페이지마다 그들이 부딪혀 일으키는 파도가 넘실거린다. 그 파도는 1권에는 미처 느낄 수 없었는데 2권을 열면서 내 가슴을 울렁이게 하더니 결국 '왜, 어떻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의 의문이 한꺼번에 해결되는 2권 중반이후부터는 돌이킬 수 없는 역사(별같은 시인을 일찍 잃은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너무 많은 시들을 너무 쉽게 읽어온 부끄러움이 결국 눈물을 왈칵 쏟는다.
' (동주의) 시를 적은 연을 간직한 소녀를 찾고 싶습니다. 그 연은 찬 감방에서 써낸 시인의 영혼이고, 그 시를 살리려다 죽은 한 간수의 영혼이기도 합니다. 우리들이 망가뜨린 순결한 시인의 시를 지켜낸 그녀는 잃어버린 우리들의 양심이기도 합니다.'
감방 밖으로 연이 떨어지고 거기엔 동주의 시가 적혔다. 순결한 시인의 시를 가진 이 소녀는 지금 어디에 있나? 나의 책장 한 켠, 좁은 책 등에 써 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윤동주' 순결한 시인의 시를 가진 것은 우리다. 이 시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서도 그 별빛에 매료되어 그의 시를 사랑해 온 우리다. 감방 밖으로 떨어진 연을 주워든 것은 우리다. 떨어진 연을 우리는 너무 쉽게 얻은 것은 아닐까. 삶이 곤할수록 시도 어렵고 그 시를 읽는 것도 어려워야 한다. 지천에 그의 시가 있어도 그 한 조각 한 조각 씹을 때마다 숙연해져야 한다.
별이 된 시인, 이미 세상에 없는 그 시인이 남긴 별빛 아래 그 빛을 만끽하는 우리가 할수 있는 일이라곤 끊임없이 기억하는 일밖에 없을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