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스치는 바람 1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학교 도서관에서 나는 낡은 냄새, 바스러질듯 가벼우면서도 육중한 존재감이 뚜렷한 그 냄새.

고등학생 시절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몇가지 기억들 중의 하나다. 그 냄새는 나란히 앉아 어깨를 바짝 마주하고 읽는 이를 기다리는 책들의 냄새이기도 하고 그 책들이 담고 있는 사람과 삶과 생에 대한 기록에서 풍겨나는 냄새이기도 하다. 그 냄새는 자연스레 몇 개의 책과 작가들로 이어진다. 토지, 태백산맥, 이육사, 그리고 윤동주.

사실, 국어 교과서에 실린 윤동주의 시보다 더 깊이, 사춘기 소녀의 마음을 잡아끈 것은 반듯한 이목구비가 선명한 그의 얼굴이었다.

 

정말 딱, 그의 시와 같은 생김의 얼굴은 일제의 생체실험에 희생되어 젊은 날에 인생을 마친 비극적인 생애와 함께 '윤동주 시인'에 대한 환상을 품게 했다. 그의 시에서 딱히 감동이나 절절한 동감을 느끼지 못했으면서도 (나는 주로 이육사에 열광하던 쪽이었다. 그땐 윤동주 시인의 시는 너무 서정적이고 심심하고 가냘프다고 생각했으니까) 그의 시가 아니라 윤동주라는 사람에 매료된 나는 오랫동안 '한국의 시인'하면 김소월이나 김수영 (심지어 내가 좋아했던 이육사)보다 윤동주를 자동적으로 떠올리곤 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윤동주'는 이름만 떠올려도 어딘가 아련하고 가슴이 아린, 나에겐 그런 시인이었다.

 

이 책을 보자마자 고민도 하지않고 바로 구매해 책이 도착한 그날 읽어버린 것도 순전히 '윤동주'에 대한 애정 때문이다. 이 애정은 책표지의 우울하고 으슥한 느낌 (서정적이고 사색적인 느낌을 유도한 책표지인지 어쩐지 모르겠지만, 표지는 정말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이 주는 다소간의 촌스러움도, 첫권의 중반 이후까지 이어지는 따분한 호흡도 극복하고 결국 끝까지 다 읽게 만들었다. 그가 남긴 몇 편의 시와 그에 대한 증언과 기록들이 채 전하지 못한 윤동주를 알게 될 것 같아서 나는 끝까지 책을 읽어야 했다. 때로 이러한 역사 소설은 실제 기록보다 더 선명하고 정확하게 당시를 가르쳐주지 않던가.

 

혹시라도 나와 다르게, 이 책이 역사 팩션이자 추리소설의 구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리얼리티가 살아있는 긴장감을 기대하며 읽게 되는 사람이 있다면 너무 지루해하지 말고 이 참에 한국이 낳은 별과 같은 시인 '윤동주'에 대해 보다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기회로 삼기를 조언한다. 그리고 혹시, 나처럼 '윤동주', 이 이름만으로 이 책을 읽기로 선택한 사람이 있다면 축하한다. 이 책은 분명 팩션이라 이 책의 모든 내용을 사실로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적어도 윤동주의 시 한 편 한 편이 어떤 심정으로부터 만들어졌는지 절절하게 이해하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은 분명 추리소설로는 별로다. 만약 소재가 윤동주가 아니었다면 나는 이 책을 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추리 소설 특유의 서스펜스 (비슷한 표현과 문장들이 계속 등장해 지루함이 더하다.) 대신 이 책은 윤동주의 싯구처럼 차분하면서도 정갈한 문장과 '문학' 안에서 소통하는 아름다운 인간애를 진하게 담았다. 읽는 내내 영화 피아니스트와 쇼생크탈출이 번갈아 떠올랐는데 이야기의 배경은 전쟁과 감옥이요 인물들은 그 안에 갇힌 예술가(양심있는 순전한 영혼)들이기 때문인가 한다. 1권 중반 이후부터 이야기가 본격 궤도에 오르면서 동주와 및 그를 비롯한 그 주변의 인물들에 대해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 그제야 책은 기다렸다는듯이 재미와 눈물을 함께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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