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속 4킬로미터의 행복 - 바쁜 마음도 쉬어 가는 라오스 여행기
김향미.양학용 지음 / 좋은생각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하루종일 수만가지 소리에 시달리다 보면 끊임없이 귀로 흘러들어오는 소리들이 그 자체로 일상이 된다.

분주한 아침, 마음마저 바쁘게 만드는 아침뉴스. 출근길 버스와 지하철의 굉음과 사람들의 발자국. 해가 하늘에 떠 있는 동안 움직이는 모든 것들이 내는 소리들이 하루를 꽉 채우고 집으로 돌아가는 저녁, 귀에 꽂은 음악까지. 귀는 온종일 온갖 소리의 홍수 속에서 지나치도록 많은 소리를 흡수하고 우리는 그 자극이 마치 당연한 것인듯 산다.





그러다 자정을 막 넘긴 어느 밤. 티비는 먼저 잠들었고 으례 노트북으로 감상하던 영화도 시들한 어느 밤.

마당 구석에서 귀뚜라미가 희미하게 날개를 비비고 어쩌다 가끔 먼데서 자동차 지나가는 자취만 들려올 때가 있다.

달빛이 내리는 것에도 고양이가 담을 넘는 것에도 겨울바람이 성큼 가까워지는 것에도 소리가 있다면 그 밤 역시 소리가 충만하겠지만, 여름가뭄을 지나는 시냇물 줄기마냥 모든 소리가 자리를 감추는 그런 시간이 있다. 그런 시간에 깨어 있을 때에야 비로소 알게 된다. 비움의 즐거움. 특별하게 신비한 어떤 소리가 들려서가 아니라 아무 소리도 없어서 편안하고 즐거운, 신비하기까지한 어떤 시간. 이 시간을 알게 되면 어쩔 수 없이 그 시간을 기다려 적막함을 만나야만 한다. 아무 소리가 없어 더 특별한 밤.





특별한 무엇이 있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아무것도 없어서 라오스에 끌렸다고 한 저자들의 이야기에 그래서 나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무엇을 더 채우고 더 얹기 원한다면 지금 우리가 서 있는 도시로도 충분하다. 우리가 갈망하는 변화란 채우는 것이 아닌 빼는 것. 소리를 비롯해 온갖 것의 무질서한 풍요 속에 내던져진 우리는 어쩌면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플러스가 아닌 마이너스라는 것을. [시속 4킬로미터의 행복]의 저자들은 도시에서 아둥바둥하고 있는 우리보다 조금 더 일찍 본능이 알려주는 것을 실천한 용자들이다.














제주도에서 터를 꾸리던 이 부부는 불현듯 라오스로 떠났다. 흔들릴지언정 일상이 있기에 여행이 있다는, 여행의 본질을 꿰는 말을 던진 저자들은 행복하기 위해 라오스로 향했다. 몇 번의 식민지와 처절한 내전을 거친 이 나라는 사실 이렇다할 관광지나 특별한 풍광이 많지않음에도 불구하고 점점 많은 여행자들이 찾아온다고 소개했다. 그들이 라오스에 끌렸던 그 이유와 동일한 이유로 라오스에 매력을 느끼는 여행자들이 점점 많아지는가 보다.





황톳물이지만 인도차이나 6개 나라의 젖줄로 지구상에서 가장 오염이 덜한 강으로 주목받고 있는 메콩강처럼, 소박하고 단촐하지만 신선같은 미소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라오스. 인생의 섭리를 탐구하기 위해 철학자 혹은 구도자들이 인도를 찾아가듯이 문명과 삶에 지친 사람들이 라오스를 찾아가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부부가 조바심도 내지 않고 불안해하지도 않고 유유히 흐르는 메콩강처럼 돌아본 라오스 기행이 그 당연함을 설득시키니 말이다. 황무하고 멋없는 숲과 들판, 강과 사람들, 그들의 마을과 사원, 사는 자취들이 자연스럽게 일러준다. 장식도 없고 필요없는 멋도 부리지 않는 그런 천연한 삶의 터전이 라오스라고.





차근차근 라오스 여행길을 안내해준 저자들의 글과 사진, 포토에세이에 남겨둔 아쉬움에도 멋을 부리지 않은 저자들의 모습이 라오스와 무척이나 닮아서 참 신기했는데 책을 다 읽고보니 그걸 신기해하는 내가 참 바보같았다. 라오스를 닮았으니 라오스로 찾아간 여행자들 아니던가. 글도 사진도 당연히 라오스를 실어오기에 가장 어울리는 사람들이 아닌가 말이다.










라오스 남자들은 일생에 한번은 반드시 승려로 지낸다고 한다. 공양을 해서 끼니를 잇고 수행을 하며 인내와 절제를 배운다. 그래서일까. 저자들이 만난 라오스 사람들에게는 잔잔하고 너그러운 미소가 있었다. 그 어떤 문화재나 예술품이 줄 수 없는 넉넉하고 포근한 감동이 거기서 왔다. 지구 반대편에서 시속 100킬로미터로 질주하고 있어도 라오스 사람들은 천천히 그들만의 걸음을 고수한다. 그것은 역사적으로 어쩔 수 없었던 미약한 개발과 발전의 결과이기도 하고 라오스 사람들을 잉태한 그곳의 환경적 특성이기도 하다. 라오스 인들은 여전히 시속 4킬로미터로 터덜터덜 굴러가도 그것만으로 행복해한다. 곤핍 이상의 것을 몰라서가 아니라 곤핍조차도 넉넉하게 받아들이는 듯, 욕심이 비치지 않는다.





소리가 그친 후에야 적막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만났듯 라오스 여행기를 읽고나서야 바쁜 마음이 쉬어갈 수 있는 둥지를 찾는다. 어떤 사람은 여행을 통해 에너지를 채운다고도 하고 어떤 사람은 여행을 하며 에너지를 소진한다고도 한다. 그래서 여행이 참 재미있다. 무언가를 채우면서 동시에 다 비우고 오는 길. 라오스를 다녀오는 길에는 아마 그럴테지. 욕망이나 성난 것은 버리고 아무것도 없어 오히려 충만해지는 비기를 채워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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