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피라예 - 가장 최고의 날들
자난 탄 지음, 김현수 옮김 / 라이프맵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2004년의 터키의 한 연구소에서 실시된 조사에 의하면 터키 여성의 21.8%가 초등학교를 아예 가지 않았거나 마치지 못했고 불과 17%의 여성들만이 고등학교 또는 대학교를 졸업하게 된다. 2010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터키여성의 42%가 남편이나 애인으로부터의 폭력에 시달리며 살아가고 있다. 아내의 귀를 자르고 고문한 남편의 징역은 2년, 그러나 그것조차도 남편이 뉘우치고 있다는 판단이 들면 바로 풀어주고 즉시 그가 고문한 아내와 함께 살수 있게 된다.



여성이 국가의 수장으로 나서고 남성의 사회적 지위를 초월하는 알파걸들이 속속 출현하고 있는 지금, 그러나 우리의 세상 한 켠에는 여전히 여성에 대한 폭력과 천시가 당연시 되는 사회가 있다. 이미 1926년에 남녀평등권이 도입되었고 일부일처제가 법으로 확립되었으며 여성에게도 엄연히 선거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여성이 남성보다 낮은 사회적 지위와 역할에 갇혀있는 터키. 그런 터키 여성들의 자주와 독립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 [내 이름은 피라예]가 한국에 왔다.











[내 이름은 피라예]의 주인공 피라예는 진보적이고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 고등학교 시절을 거치며 시와 좌파주의에 심취한 터키의 여대생.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후계자가 되어 치과를 물려받기를 강요하는 아버지의 뜻에 의해 치의생과로 진학한 그녀는 결혼한 언니 그리고 몇 번의 연애를 거치며 터키에서 자주적인 여성으로 산다는 것에 대해 매일 고민하고 저항하며 살아간다. 유명한 부호이자 보수적인 집안으로 시집을 가게된 그녀는 아들을 요구하는 시어머니와 자신을 속박하는 남편 등 터키 대부분의 여성들에게 당연시 되는 결혼 생활에 점점 지쳐간다. 그러던 어느 날, 딸을 낳은 그녀가 더 이상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진단을 받자 시어머니는 대리모를 들일 것이라며 선언을 하는데....





마치 여대생의 일기를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하는 이 책은 터키 여성의 현실을 고려해 봤을 때 꽤 파격적인 캐릭터와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주인공 피라예는 굉장히 공격적이고 고집스런 성격이며 그녀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연애와 결혼사는 매우 과감하고 격렬하게 요동친다. 점점 개방적이고 진보적이 되어 가는 이스탄불의 대학생들과 그에 비해 여전히 보수적이고 폐쇄적으로 남아있는 피라예의 남편 하림의 세계가 대비되며 터키 남성과 여성 그리고 과거와 현재가 부딪히는 흥미로운 장면들이 그려진다. 이스탄불의 부유한 치과의사로 살고 있는 그녀의 아버지와 어머니, 남편의 폭력과 바람을 좌시하지 않고 이혼을 감행하는 그녀의 언니가 진보적인 성향의 인물로 나오고 피라예의 친구들은 자유 연애를 즐기며 피라예 역시 자유롭게 교제를 하지만 어떤 남자들은 여전히 과거의 전통적인 인식을 가진 인물들로 등장해 피라예에게 실망을 준다. 특히 피라예의 남편 하림은 피라예를 마음을 다해 사랑하지만 남자 환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피라예를 참지 못해 손찌검을 하거나 대리모를 받아들이면서도 대리모를 비하하는 등 여성 인권에 반하는 행위을 하곤 한다. 특히 피라예의 시어머니는 전통적인 인간상을 대표하고 있는데, 전통과 관습을 무척이나 중요시하고 불합리하고 반인권적인 제도까지도 강요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며 자주적인 피라예와 완벽하게 대치되는 인물로 나와 결국 피라예와 그녀의 남편 모두를 불행하게 하는데 한 몫 제대로 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이 책이 남성우월주의의 전통적인 사회에서 자신의 힘으로 자주와 성공을 일궈가는 여성의 가슴 벅찬 일대기를 그렸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터키 여성들에게는 무한한 공감과 교감을 이끌어 낼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의 오늘을 살고 있는 나의 눈에 피라예는 부유한 가정에서 좋은 부모님을 둔 덕분에 자기 목소리를 내면서 살아갈 수 있는 운 좋은 여성으로 비칠 뿐이다. 더구나 유별나게 공격적인 그녀의 말은 때때로 너무 과하지 않나 싶을 정도다. 분명 그녀는 똑똑하고 야무지게 자신의 존엄성을 주장할 줄 아는 여성이지만 주장만 있을 뿐 포용이나 이해가 없는 캐릭터였다는 것이 너무나 아쉬웠다. 이건 작가에게 아쉬운 점이기도 한데, 피라예의 주변 남성들이 그녀를 좋아하고 그녀의 친구들조차도 그녀를 공주처럼 대우한다는 점에서 마치 할리퀸 로맨스(하이틴 로맨스)를 읽는 느낌을 주기까지 한다. 부유하게 자라고 일류 대학을 다니고 친구들에게 공주처럼 대우를 받아야만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여성이 되는가? 더구나 그녀가 시집살이를 하는, 이야기의 후반으로 가면서는 그녀의 복수심을 이해는 하지만 복수하는 방식이 너무나 안타깝다. 어떤 엄마가 자기 자녀를 볼모 삼아 남편에게 복수를 할 수 있을까? 자기 자신이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았기 때문에 아들을 아빠없는 자녀로 키운다는 결론은 너무 심하지 않았나 싶다. 할리퀸 로맨스로 시작해 아내의 유혹같은 막장 드라마로 치닫는 이야기, 정말 과격하다.









공공연하게 인권을 무시받고 천대를 당하는 여성들의 삶을 조명하고 사회적인 제한과 압박을 이기기 위해 노력하는 여성 캐릭터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내 이름은 피라예]는 터키 문학에 혁명적인 책이 될 수도 있겠다. 터키 독자들이 그토록 많이 이 책을 읽은 것은 이 책이 주는 대리만족의 카타르시스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나 한국의 독자인 나는 주인공인 피라예에게 커다란 공감이 가지 않고 관심없는 드라마 주인공을 보듯 지켜보기만 하다 책을 덮게 된다. 혜택받은 몇몇만 아무 노력 없이 모든 걸 누릴 수 있게 하는 게 자본주의 체제라고 생각한다는 피라예가 그 자신이 부모의 부에 커다란 혜택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독립적인 여성으로 그려지는 이 어색한 상황이 아마 피라예라는 인물에 대한 공감을 막고 있는 것 같다. 물론 터키의 사회상과 변화하고 있는 그들의 인식을 읽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터키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분명 읽어볼 만하다. 이 책에는 피라예의 인생 이야기에 사용되는 터키의 문화와 경관 그리고 도시들의 역사를 세밀하고 흥미롭게 그리고 있으니까. 하지만 운명적인 한계를 이겨내는 인간 승리의 드라마를 보고 싶다면 굳이 이 책을 들 필요는 없다. 강경애나 박완서 등 여성주의를 문학으로 녹여낸 다른 작품들이 더 현명한 선택이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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