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 내가 죽던 날
로렌 올리버 지음, 김지원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이 글은 '일곱번째 내가 죽던 날'에 대한 스포일러를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만다가 일곱 번째로 죽던 바로 그 순간, 나는 책의 마지막을 덮었다. 분명 뭔가 더 있어야 할 것 같았지만 죽음처럼 단호하게 끝나버린 책의 마지막 장 뒤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슬퍼할 시간도 없었다. 일곱 번을 반복해서 죽음을 맞는 사만다의 마지막에 대해서, 그녀가 그녀의 죽음을 걸고 구해낸 것들에 대해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무언가를 들려주고 싶어했던 그녀의 목소리가 거기서 끝이라는 것에 대해서.

 

 

 



초록색 눈의 발랄한 여고생 사만다는 아주 운이 좋은 삶을 살았다. 또래 여자아이들은 그녀를 선망하거나 질투했고 또래 남자아이들은 그녀를 좋아했다. 학교는 언제나 우습고 재미난 사건이 벌어지는 곳이었고 화목하고 다정한 부모님과 명랑하고 귀여운 여동생이 있는 집은 따분했지만 평화로웠다. 찌질한 아이들은 절대로 알 수 없는 세계에 사는 그녀는 늦은 금요일 밤 파티를 다녀오다 난데없는 교통사고를 당한다. 차가 뒤집어지고 온갖 소음과 연기와 고통의 아수라장 한가운데에서 어느 순간, 그녀는 다시 눈을 뜬다. 일어나라고 채근하는 여동생의 손길, 익숙한 풍경과 햇살, 똑같은 금요일 아침. 금요일 밤 12시를 지나 죽었던 그녀는 새로운 금요일 아침에 다시 눈을 뜬다. 그렇게 7번의 금요일을 살게 되는 사만다. 그건 운 좋은 삶을 살았던 그녀에게는 저주였고, 운 나쁘게 사고를 당한 그녀에게는 기회였다. 그간의 삶을 책임지라는 저주이자 기회. 그 7번의 금요일을 살면서 사만다는 속삭인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야...'

 

 

 

 





늘 궁금했다. 정말 죽음의 그 순간이 되면 모든 사물이 슬로우모션으로 움직이고 눈 앞에 내가 살아온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질까? 그리고 어느 순간 나의 모든 것이 다 끝나버리는 그런 순간이 올까? 사이코같이 기분 나쁜 느낌을 주던 여자애에게 술을 뿌리고, 술에 잔뜩 취한 남자친구를 내버려두고 파티에서 나올 때까지만 해도 사만다 역시 죽음이 그렇게 가까우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잘나가는 여고생의 일상이란 언제나 가볍고 웃기고 아무 생각 없이 흘러가니까. 우월감과 자만, 때론 경박하고 다소 거칠게 흘러가던 사만다의 일상은 그녀가 죽음을 맞은 후 거듭 살게 되는 6번의 금요일 동안 180도로 바뀌게 된다.

 

 



또 다시 시작되는 금요일(더 자세히는 금요일 밤의 예정된 죽음) 때문에 사만다는 처음엔 엄청난 혼란과 두려움 속에 살아간다. 파티에 가지않고 교통사고를 피해도 예정된 끝은 어김없이 그녀를 또 다른 금요일 아침으로 데려다 놓았고, 그녀는 그녀만이 알고 있는 예정된 끝 때문에 가족과 친구들에게 과격하게 굴며 방황한다. 그녀 자신의 죽음을 돌릴 방법을 구하던 그녀는 어느 순간, 죽음이란 피할 수 없는 것임을 알게 된다. 그렇게 죽음을 인정했을 때에야 그녀 자신이 아닌, 그녀가 살던 세상과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어쩌면 린지와 나는 가장 친한 친구인 동시에 서로를 싫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는 안나 카툴로 같은 싸구려 창녀와 수학 수업 한 번 정도의 차이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가슴 깊은 곳에서는 안나와 똑같은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가 그럴지 모르지.

점심시간 한 번만 잘 못 보내면 혼자 화장실에서 밥을 먹는 신세가 될지도,

누군가에 관해 진실을 안다는 게 정말로 가능한 일일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은,

고개를 숙이고 누구와 부딪치지 않기만을 바라며 서로를 향해 비틀비틀 걸어가는 것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p299

 



사람을 완전히 잘못 판단하는 게 얼마나 쉬운 일인지 생각하며 나는 몸을 떨었다.

사람의 아주 작은 일부만 보고 그걸 전체라고 착각하는 것, 원인을 보고 그게 결과라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로 생각하는 것.

p 403

 

 



사만다는 하나뿐인 귀여운 여동생에게 가장 아끼는 목걸이를 주고, 자신의 가장 소중한 장소에 동생을 데리고 간다. 그간 다소 서먹했던 엄마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아빠가 엄마의 이마에 입을 맞추는 풍경을 돌아보면서 보길 잘했다며 기뻐한다. 찌질하다고 생각했던 남자애는 알고 보니 진심으로 멋진 훈남이었고 우습게 여겼던 학교 선생님들과 동급생 여자아이들은 저마다의 소소한 삶의 이야기와 사정들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었음을, 잘나가는 자신과 크게 다를 것이 없는 모습임을 사만다는 보게 된다. 친구들의 진심, 약하고 상처받은 그래서 더 소중하고 예쁜 그들의 진짜 얼굴을 보고 나서야 사만다는 깨닫는다. 이 저주이자 기회인 금요일을 어떻게 살아야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금요일이 끝나게 되는지.

 

 

 





사만다가 사는 7번의 금요일은 어느 날은 일탈, 어느 날은 추억 만들기, 또 어느 날은 새 친구 사귀기처럼 일상적으로 흐른다. 만약 사만다가 7번을 거듭해서 금요일을 살고 있다는 걸 알지 못하고 읽는다면 그냥 평범한 고등학생의 이야기 같다. 이 일상성이 사만다의 결심과 만나 뭉글뭉글 슬픔과 애틋함으로 끓어오르는 것은 마지막, 7번째 날이다. 칸트와 마지막 키스를 하고, 친구들을 구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줄리엣의 뒤에서 몸을 던지는 사만다를 위해 흘리는 눈물은 그래서 막상 책을 손에 쥐고 있을 때는 쉽게 흐르지 않는다.

 

 

 

 



그러나 눈물은 불시에 찾아온다. 책을 덮고 일어난 다음날 아침. 여느 때처럼 울리는 알람 소리와 익숙한 방의 풍경, 천장에 비치는 햇살과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는 엄마의 기척을 느낄 때 나는 갑자기 베개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죽음은 고통과 소음의 아우성이라고 이야기했지만 7번의 반복 끝에 죽음은 온기와 빛이 가득한 것이라고 이야기한 사만다가 생각나서. 가진 자들과 못 가진 자들로 나누어진 세상이라고 시니컬하게 얘기했었지만 '싫어하는 게 아니라 잘 몰랐던 것 뿐'이라며 먼저 손을 내밀었던 사만다의 절박함이 생각나서 눈물이 났다. 생과 사의 기묘한 간극에서 사랑과 이해, 희생과 배려를 배우고 웃으며 떠난 그녀가 나를 눈물나게 했다.

 

 



오늘이 전부라고 혹은 나 밖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사만다를 만나보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조잘조잘 소녀의 감성으로 세상의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 그리고 형체가 사라져도 여전히 남아있는 어떤 소중한 것들에 대해 꼭 알려주고 싶어했던 사만다의 이야기를 들어보라고 하고 싶다. 사만다는 확실한 죽음을 예정해 놓고서야 그 모든 것을 알게 되었지만, 우리는 그녀의 이야기를 통해, 확실한 끝을 보지 않고서도 그녀가 보았던 것을 함께 볼 수 있으니까. 저주이자 기회였던 사만다의 7번의 죽음은 우리에겐 그녀가 전하는 축복이자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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