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석, 백 년의 지혜 - 105세 철학자가 전하는 세기의 인생론
김형석 지음 / 21세기북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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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간 자리에 남는 건 무엇일까? 매 초가 쉼없이 흘러가는 일생에서, 그렇게 부지런히 시간이 흘러간 후에 남은 빈 자리에서 우리는 무엇을 발견하는 걸까?


1920년에 태어나 일제강점기과 전쟁, 대한민국의 험난한 탄생과 발전을 모두 겪어 낸 철학자는 시간의 빈 자리에서 길어올린 이야기를 한 권의 책에 담았다. <중앙일보>에 연재했던 글들을 다듬어 묶어 낸 것이다. 저자 김형석은 이 책 <김형석, 백 년의 지혜>의 머리글에서 이 책에 수록된 글들을 두고 '백 년 동안의 인생 경험을 통해 현대인들과 나누고 싶은 문제를 제시해본다' 고 했다. 백 년치의 인생 경험 그리고 그것이 2024년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이며 현재의 무엇을 "문제"라고 발견할 것인지를 두고 45편의 에세이가 독자에게 질문을 건넨다.


인생은 무엇을 남기고 가는가

사랑이 있는 교육이 세상을 바꾼다

대한민국이 지향하는 정의란 어떤 것인가


긴 에세이의 호흡을 정리하면 이 세 가지로 105세 철학자의 메시지가 정리되는 듯하다. 인생, 사랑과 교육 그리고 현재의 대한민국.


몸이 약하게 태어나 장수는 커녕 성인으로 성장하는 것도 어려워보였던 아이는, 대한민국 최고령 철학자가 되었다. 유약하고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지나 위험천만한 탈북, 닥치는대로 일했던 청중년기를 지나 교육과 선한 영향력에 매진하며 살아온 노년기에 이르는 김형석 저자의 생은 대한민국의 역사를 정면으로 관통해온 시간이기도 했다. 주권을 잃은 나라의 설움, 전쟁의 참혹함, 사상 갈등의 냉혹함과 치열함, 개발도상국의 혼란스러움을 차례로 지나 그는 그리고 대한민국은 오늘에 이르렀다. 그래서 그의 이야기를 차근차근 읽어가다보면 한 인간, 철학자 김형석 개인과 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오늘날 우리에게 말을 거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대한민국은 지독히도 험하고 독한 세월을 지나왔다. 그 시간이 지나간 자리에도 질기고 억세고 독한 것들이 남았다. 지금 우리 모두를 괴롭히고 있는 여러가지 문제들은 모두 그런 것들로부터 출발한다고 나는 믿는다. 저자 김형석은 이 책을 통해 현재의 대한민국이 지금보다 나은, 선한 개인들이 자유롭고 행복하며 사회와 국가는 품격과 휴머니즘을 회복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를 고민한다. 그가 평생의 푯대로 삼았던 사랑과 교육을 바탕으로 바라볼 때, 우리들 개인이 잃어버린 것은 무엇이며 사회와 국가가 되찾아야 할 것은 또 무엇인지를 진단한다.


무엇이 해결책인가. 인간성의 회복이다. 인격과 삶의 가치를 복구시켜야 한다. 양심의 자유와 인간애의 질서를 정착시켜야 한다. 자유와 정신문화를 말살하는 정치력을 배격하고 인문학과 인간주의를 되찾아야 한다. 그것이 자유민주주의의 선결과제다. 책 128쪽 - 사라지는 인류의 유산, 인간애가 필요한 때


일의 가치란 무엇인가. 나에게 주어진 일을 통해 좀 더 많은 사람이 행복과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돕는 데 있다. 이기적인 목적으로 하는 일은 사회적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 서로가 서로를 위해 하는 일을 통해 국가와 국민이 번영과 행복이 증대되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면서 진리이다. 책 58쪽 - 일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주는 인생의 길


내 철학과 친구들은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최대의 위기는 '가치관의 상실'이라고 걱정한다. 정치, 경제, 과학 문명, 기계 과학의 미래 등 문제는 산적해 오는데 건설적이고 영구한 가치관은 보이지 않는다는 호소다. 우리 사회를 이끌어갈 희망의 빛이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철학 부재에서 오는 결과다. 책 133쪽 - 철학과 함께한 70년, 지금도 희망을 찾는다.


어느 개인의 말이 이 사회의 기준이나 진리가 될 순 없다. 그러나 100년 동안 대한민국의 역사를 온몸으로 함께 써온 입장에 있는 동시에, 자신의 온 생애를 통해 배운 가치를 평생에 걸쳐 실행해온 주인공의 이야기라면 들어봄직하지 않을까. 노동하지 않고 돈을 벌어야 박수를 받고, 공동체보다 개인의 가치와 필요를 앞세워야 인정을 받는 시대 속에서 일의 보람, 공동체의 귀함을 이야기하는 철학자를 만나, 나는 진심으로 반가운 마음으로 이 책 <김형석, 백 년의 지혜>를 읽었다.

유형의 것, 물질, 돈, 다 좋지만 그 속에 무형의 것, 정신, 가치관이 부재하면 어떤 부작용이 생기는지를 우리는 지금 체험하고 있다. 이 체험 속에서 이런 책과 같은 에세이를 읽고 백 년의 시간이 남긴 지혜에 조금 더 귀기울여본다면 그리고 그것을 우리 삶의 태도와 방향에 반영해본다면 내일이라도 우리는 이전과는 사뭇 다른 대한민국에서 살게 될 수 있지 않을까. 100살이 넘은 철학자가 여전히 '희망'을 찾는다고 썼듯, 우리 역시 이 책을 읽으며 지금도 희망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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