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필립 짐바르도 자서전 -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으로 20세기를 뒤흔든 사회심리학의 대가
필립 짐바르도 지음, 정지현 옮김 / 앤페이지 / 2023년 2월
평점 :
필립 짐바르도는 미국의 사회심리학자다. '깨진 유리창 이론',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 등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스탠포드 대학교의 명예교수이기도 하다. 그의 이름은 생소하더라도 교도소 실험이나 유리창이 깨진 자동차 실험 등의 내용은 어디선가 한 번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거리에 트렁크가 열린 채 방치된 자동차가 있을 때, 누구도 그 자동차를 훔치거나 부수지는 않지만 방치된 자동차의 유리가 깨져 있을 때는 사람들이 자동차의 물건을 훔쳐갔고 훔쳐갈 게 없어지자 마침내는 차를 부수기까지 했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선과 악이 정해져 있거나 성장하고 살아가면서 선과 악 중 한 가지 편향으로 고정되지 않는다. 대부분은 어느 정도 수준으로 선을 지키려고 노력하며 살지만 사람은 어떤 상황에 처하면 선택을 하게 된다. 자기 안의 악을 꺼내서 사용할 지 말지, 선을 넘을 것인지 말 것인지를. 그런 선택의 순간은 개인의 성격이나 취향 때문에 촉발되는 게 아니다. 상황이다. 그 상황에 처해보기 전에 그가 어떤 선택을 할지는 그 자신도 모른다.
아주 솔직하고 직관적인 제목의 책 [필립 짐바르도 자서전]은 필립 짐바르도와 스탠포드 역사학회의 구술 인터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책이다. 제목만큼 내용도 솔직하다. 짐바르도는 어린 시절부터 청소년기, 청년기를 거쳐 악명 높은 실험의 장본인으로 널리 알려지기까지, 자신의 생을 이야기한다. 재밌는 것은 그는 그의 연구와 실험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그가 했던 실수들도 이야기하는데, 이런 실수마저도 집단 내부의 역학 관계, 집단 즉 3명 이상이 모인 상황 속에서 개인의 위치와 관계에 따라 각 개인이 내리는 선택에 대한 그의 이론의 당위성을 증명한다.
밀그램은 제가 자신감 없는 남학생에서 자신감 넘치는 남학생으로 변한 건지, 아니면 상황이 바뀐 건지 점검해 봐야 한다고 말했어요. 그리고 우리는 상황이 바뀐 거라는 데 동의했죠.
신기한 것은 그때가 1948년이었다는 거예요. 밀그램이 ‘상황이 개인적 성향에 미치는 힘’을 입증하기 위한 연구를 시작한 때는 1960년대 초반이었고요. 몇 년 뒤 저도 똑같은 내용을 보여주는 실험 결과를 내놓았죠. 밀그램과 달리 제 실험은 개인의 권위보다 개인이 어떤 역할을 맡게 되는 상황에 더 주목했지만요. 상황에서 비롯된 힘을 지배적이고 물리적이고 학대적으로 쓰게 된다는 내용이었죠.
32-33쪽
이 과정에서 제가 큰 실수를 하나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저도 모르게 상황을 객관적으로 분석해야 하는 조사관에서 교도소 감독관으로 역할을 바꿔버린 거예요. 또 다른 실수도 있었는데, 사무실에 ‘교도소 감독관’이라는 팻말을 붙여놓은 거죠. 수감자를 면회 온 부모는 항상 교도소장을 먼저 만나야 했습니다. 돌아가기 전에는 감독관을 만나야 했고요. 그래서 그들은 저를 교도소 감독관으로 대할 수밖에 없었고, 저 역시 교도소 감독관으로 그들을 대해야 했죠.
136쪽
탁월한 학자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는 것도 재미있고 (특히 4번이나 다른 인종으로 오해를 받았다는 이야기. 유대인, 흑인, 시칠리아인, 프에르토리코인. 근데 나도 이 인종들을 잘 구별하지 못한다) 스탠리 밀그램과의 에피소드들도 재미있다. 무엇보다 어떤 특별한 재능이나 환경, 유산을 받아 지금의 놀라운 성과를 이룬 연구자가 된 게 아니라 그야말로 헝그리 정신으로 사회심리학계의 장인이 되었다는 비하인드가 놀랍다. 빈곤하고 위험한 환경에서 어린시절을 보냈지만 다른 사람들이 평범하게 느끼고 경험하고 기억하는 순간과 상황들 속에서 그는 남다른 시각으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발견했다. 단순히 관찰력이 좋다기 보단 메타인지가 뛰어난 경우가 아닌가 싶다. 어린 필립 짐바르도는 상황 속에서 그 상황과 자기 자신의 입장에 매몰되지 않고 관객이 영화를 들여다보듯 상황 전체를 구석구석 들여다보고 분석하는 힘이 정말 대단했다. 이것은 필요에 의하여 생긴 능력인지 아니면 타고난 재능인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만약 타고난 재능이라고 해도 본인이 이것을 학구적으로 발전시켜 뛰어난 연구가로 인생의 노선을 정하지 않았다면 아무 의미가 없거나 쓸데 없는 곳에 쓰이지 않았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