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거대 위협 - 앞으로 모든 것을 뒤바꿀 10가지 위기
누리엘 루비니 지음, 박슬라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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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가 되고 살이 되는 말은 쓰다. 분야와 맥락, 주제에 상관없이 항상 그렇다. 듣기에 좋지 않은 말이 모두 약이 되는 말은 절대로 아니지만, 들어서 약이 되는 말 중에 쓰지 않은 말은 없다. 왜냐면 내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현재의 내 처지와 상황을 받아들이고 마주봐야하기 때문이다.

[초거대위협]은 책 표지와 띠지가 한결같이 무섭다. 아마 여느 때 같았다면 이런 무서운 책은 연초에, 그것도 이것저것으로 한창 바쁘고 정신이 없을 때에는 들여다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가파른 물가 상승과 반비례하여 곤두박질하는 소비지수를 온몸으로 느끼면서, 이 와중에 국내 정치에나 국제면에서도 좋은 소식이 하나도 없는 정말 암울한 시기라는 걸 함께 감지하면서 이 책을 읽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책을 읽어나가면서 다들 이 책을 읽고 우리가 함께 겪고 있는 또한 겪어 나가야 하는 이 위기에 대하여 함께 공부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해진다. 왜냐면 지금 우리를 덮친 위협과 아직 다가오지 않았지만 이미 가까이에서 드릉드릉 시동을 걸고 있는 위협들은 개인의 선택이나 한두 국가의 정책으로 대응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라 어찌되었든 집단 대응으로 해결해 나가야 하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어려운 책이라면 어려운 책이다. 2006년 미국 부동산붕괴를 비롯하여 아르헨티나 채무불이행 등 여러가지 국제적인 경제이슈의 인과를 고찰하고 그를 바탕으로 우리의 현재 위기를 진단 및 방안을 모색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평소 이 분야에 대하여 어느 정도 관심을 가지고 있거나 경제 분야에 해박한 사람이라면 이미 다 알만한 이야기들이라 어렵지 않다고 느낄 수 있겠지만 내가 느끼기엔 굉장히 많은 양을 한 책에 다 넣어 현재를 진단하다보니 독자가 소화해야 할 양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독성은 무척 좋다. 번역자의 감각 덕분일수도 있고 저자의 박식하면서도 명석한 전개 덕분일수도 있다. 여튼 어려운 내용이나 어렵지 않게 읽힌다는 점.


실은 어려운 내용을 어렵게 전달하는 책이라고 해도, 아마 감기약 먹듯이 꾸역꾸역 읽어냈을 것이다. 지금 지구촌을 사는 사람 특히 고물가, 부채, 인구감소, 기후위기 등 묵직한 이슈들을 실생활에서 체감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이 책을 읽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우리는 이제 완전히 새로운 영역에 들어섰다. 세계 소득증가율이 하락하면서 대부분의 예측 가능한 시나리오에서 국가과 기업, 은행과 가계가 상환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빚을 지고 있다.

27쪽


성장을 달성하기 어려운 오늘날, 우리는 사회보장과 의료 서비스에 대한 미적립 청구서의 무게에 무참히 짓눌리는 중이다.

78쪽


국민 소득 중 점점 더 큰 비율이 젊은 노동자가 아닌 은퇴자들의 삶을 유지하는 데 사용된다. 급여와 생산 가능 인구가 줄고 노령 연금이 급증하면서 이 편향 현상은 매년 더 심화되고 있다. 만일 청년 노동자들이 은퇴자를 부양하기 위해 자신의 미래를 포기해야 할 수도 있는 이 문제에 아직 분개하지 않고 있다면, 머지않아 그렇게 될 것이다.

84쪽


[초거대 위협]은 그도안 평범한 개인이 여러 기사와 지표들을 통하여 막연하게 느꼈던 불안함, 이거 이대로 가면 안 될 것 같은 좋지 않은 예감을 명확한 분석으로 구체화한다. 이게 불안한데 왜 불안한 지 알수 없었던 문제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비로소 답을 얻는다. 가계와 국가가 지고 있는 상환 능력을 뛰어 넘는 부채의 문제라든가 당장 오늘도 기사가 났던 출산율 폭락의 문제 등이 지금의 나에게 어떤 위기가 될 것인지를 아주 정확하게 짚어준다. 그래서 책장을 넘길 때마다 더더 불안해진다. 저자가 예측한 우리의 미래는 아주 아주 좋지 않다. 이 비관적 예측은 그냥 대충 두드려 본 눈대중이 아니라 수많은 낙관적 전문가들로부터 조롱과 지탄을 받으면서도 비관적인 예측을 주저하지 않았던 저자가 최근 100년 동안 지구촌에서 벌어진 국제 경제와 정치, 미국의 정책 등 굵직한 이슈에 대한 폭넓은 데이터, 그에 관한 자신의 식견과 경험을 총망라한 결과이기 때문에 무엇하나 틀린 말이 없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다소 슬프고 원통하기도 했다. 아이고, 우리가 어쩌다 모두 이런 신세가 되었을까. 이제는 버릴 때가 되었다.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오리라 기대했던 핑크빛 미래, 지난 75년이 그랬던 것처럼 지구촌의 국가들은 앞으로도 꾸준히 성장하고 번영할 것이라는 낙관, 흥청망청 쓰고 버리고 두려움 없이 투자하고 소유했던 지난 나날들에 대한 향수.


낙관주의자들은 아직도 기술 혁신을 통해 긍정적인 총공급 충격을 촉발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인플레이션 완화 압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가능한 일이긴 하지만 선진경제에 관한 데이터에서 기술 변화가 총 생산성 성장에 미치는 영향은 아직 불분명하다. 데이터에 따르면 생산성 성장이 정체되고 있기 때문이다.

172쪽


내가 그보다 더 심각하게 우려하는 초거대 위협은 경제, 금융, 정치, 지정학, 무역, 첨단기술, 건강, 기후 등 광범위한 문제들이다. 지정학적 위협처럼 그중 일부는 냉전을 거쳐 종내에는 열전, 즉 본격적인 무력 전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내가 이 책을 쓴 이유는 지금 우리가 매우 긴급하고 거대한 규모의 10가지 심각한 문제에 직면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따라서 명확한 비전을 갖고 미래를 예측하고, 이런 위협이 우리를 파멸시키지 않도록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11쪽


하나같이 가공할 만한 위력을 지닌 이 초거대 위협들이 한 점으로 수렴된다면 그 결과는 끔찍할 정도로 파괴적이리라.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지구상 모든 사람을 위한 세세한 조정과 협력이 필요하다. 다음번 변곡점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솔직히 말하면 두렵다.

410-411쪽


저자는 '가공할 만한' '끔찍한' 등의 표현을 사용하는 데에 거침이 없다. 그도 그럴것이 저자의 분석과 예측에서 그래도 희망적이라고 할만한 내용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계속 끝까지 읽어나간 이유는 단 하나다. 지금 필요한 건 낙관주의도, 희망도, 호재도, 긍정적인 지표도 아니고 냉철한 현실주의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에게 [초거대 위협]의 저자 누리엘 루비니가 불안을 야기하는 비관론자로 보이겠지만 이 책을 바탕으로 분명히 알 수 있다. 저자는 냉철하다 못해 냉혹한 현실주의자라는 사실을. 그리고 지금 우리가 마주한 위기들 속에서 조금이라도, 손톱만큼이라도 나은 길을 찾으려면 냉혹하더라도 현실을 제대로 볼 줄 아는 사람의 눈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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