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으로 간 여성들 - 그들이 써 내려간 세계 환경운동의 역사
오애리.구정은 지음 / 들녘 / 2023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Mother Nature라는 말을 성차별 단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왜 대자연에 성별을 붙이는가? 자연은 무성인데 어째서 굳이 여성 그것도 어머니라는 역할을 부여하는가? 그랬는데 지금은, 이 지구라는 거대한 자연이 나에게 무엇을 해주는지를 한 결, 한 결 깊이 체감하면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자연에 굳이 성별은 필요없으나 어머니라는 역할로 이름을 짓는 건 타당하지 않은가. 자녀에게 자신의 살과 피를 주고 필요한 정서적 양분을 공급하고 자녀와 교감하고 소통하며 자녀를 기르는 어머니라는 역할. 지금 자연이 우리에게 하고 있는 일이다. 사람의 신체도 자연에서 출발하고 사람의 정서적 양분도 자연에서 얻는다. 사람의 생존도, 성장도 자연에 달려 있는데 문제는 자연에 교감하지도, 소통하지도 않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데에 있다.


[숲으로 간 여성들]의 저자들은 여성과 환경의 관계에 대해 자연이 사람을 먹이고 돌보듯 '땅에서 키워낸 먹거리로 가족을 먹이고 돌봐온 여성들의 일상이야말로 오늘날 환경운동의 출발점'이 되었다고 썼다. 같은 역할을 오랜 시간 해온 존재들이 서로의 위치와 입장을 공감하고 나아가 소통하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타자와 교감하는 일이 좀더 능숙한 여성들이기에 그랬을까? 암튼 이 책은 여성들이 시작했던 생태학과 환경 보호 그리고 녹색 투쟁에 이르는 세계 환경운동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한다.


멀리는 천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환경운동의 역사 속에서 환경운동에 나섰던 여성들의 생은 하나같이 험난했다. 살충제로 인한 환경 피해를 고발하면서 화학 업계의 무자비한 공격을 받았던 레이첼 카슨을 비롯하여 특히 라틴 아메리카에서 환경운동에 나섰던 많은 여성들은 살해당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촌 곳곳에서 여성들의 환경운동은 진행 중이다. 도리어 환경운동에 나선 여성들의 연령은 점점 더 어려지고 있다. 학자나 연구가, 교사 등 사회 활동을 하는 성인 여성들만 아니라 성인이 되지 않은 툰베리나 우홍이와 같은 어린 운동가들의 활동은 '기특하다'가 아니라 '경이롭다'는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고향의 울창한 숲이 벌목으로 잘려 나가자 자기 이름도 쓸 줄 모르는 여자들이 나무를 끌어안고 싸웠다. 박사 과정을 밟고 있던 나는 충격을 받았다. 돌이켜보면 개발과 성장 신화를 버리고, 보전과 공존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짜기 위한 나의 투쟁은 그때부터 시작됐다"고 회상했다. 또 칩코 운동을 통해 깨달은 것이 있다. 적어도 환경운동만큼은 남자가 아닌 여자가 주도적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책 150-151쪽 인도의 환경운동가 반다나 시바


알레타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여성들은 투쟁을 이끌면서 가장 심각한 핍박의 대상이 되곤 한다. 지구를 구하기 위한 싸움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관심의 초점은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을 넘어 점점 '기후 정의'쪽으로 향해가고 있다. 거기에는 억압적이고 비민주적인 정부와 싸우는 것, 삶과 공동체에서 대안적인 해결책을 만드는 것, 기득권 남성들의 정치권력에 맞서 새로운 상상을 실천하는 것이 포함된다. 민주주의와 다양성이 결국 지구 환경을 지키는 가장 큰 무기인 것이다.

책159쪽


환경운동은 단순히 자연을 사랑하는 일은 아니다. 환경운동은 약자의 입장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헤아리고 그것을 어떻게 개선해 나가야 할지를 고민하고 마침내 개선책을 실행해나가는 것과 같은 순서로 전개된다. 자연은 크고 광대하기에 우리가 애써 그의 병든 곳을 관찰하고 교감하고 소통해야만 그의 아픔을 알 수 있다. 우리 주변의 모든 사회적 약자가 그렇듯이,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그래서 환경운동은 민주주의와도 닿아있고 평등과 존엄, 정의라는 가치에도 연결되어 있다. 환경운동은 우리의 터전을 지키고 생존 가능한 지구, 지속 가능한 발전의 지구를 만들어가는 일일 뿐 아니라 평등, 자유, 정의 마침내는 평화를 이루는 운동인 것이다. 반다나 시바가 환경운동은 남성이 아닌 여성이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한 인터뷰는 이런 맥락에서의 뜻이 아니었을까.


요즘 나의 가장 큰 관심은 분리수거와 비닐 적게 사용하기다. 처음에는 미세플라스틱, 그러니까 내가 나도 모르게 흡입하고 있는 미세플라스틱을 줄여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최근에는 '인간이란 정말 답이 없다. 왜 이런 것들을 일부러 만들어서 날마다 날마다 엄청난 량의 그것도 썩지 않는 쓰레기로 자기 자신은 물론 지구 전체를 망쳐놓는 걸까.'라는 데에까지 생각이 미쳤다. 정말이지 비닐백을 너무 쉽게, 대충 막 써버리니까 그게 너무 문제인거야.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런 노력만으로 지구를 지키기에는 터무니 없이 부족하다는 게 우리의 현실이라는 거다. 너무 무서운 것은 이번 세기 안에 지구 평균기온이 1.5도가 올라가면 돌이킬 수 없는 지구가 되어버린다는 사실이다. 이걸 쓰고 있는 지금도 당장이라도 지구의 파국을 내 생애 동안 맞게 될까봐 너무 무섭다. 툰베리가 눈을 부릅뜨고 경제를 빌미로 지구를 대책없이 오염시킨 어른들이라며 따지고 드는 심정이 지금 내 심정이다. 제발 그만 좀 만들고 그만 좀 쓰고 그만 좀 파괴하고 그만 좀 오염시켜! 제발 그만!!


지질학적인 시간에 비하면 찰나를 사는 인간이지만 그 찰나의 삶이 스스로 택한 잘못된 경로 때문에, 혹은 힘 있는 이들이 멋대로 결정한 경로 때문에 피폐해지고 괴로워져서는 안 된다. 그래서 토착민들은 싸움을 계속하고, 환경운동가들은 캠페인을 벌이고 있으며, 국제사회는 기후 대응 체제를 만들었고, 기업들도 녹색으로 향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 생산과 관리 방식을 차츰 바꾸고 있다. (중략)

어떤 것이 가장 효과적일지는 알 수 없지만, 할 수 있는 것은 뭐든지 해보려는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어떤 분야와 관점에서 접근하든, 그 출발점은 미래 세대의 절박함을 받아들여 지금의 행동으로 이어지게 하는 일이다.

296-297쪽



알레타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여성들은 투쟁을 이끌면서 가장 심각한 핍박의 대상이 되곤 한다. 지구를 구하기 위한 싸움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관심의 초점은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을 넘어 점점 ‘기후 정의‘쪽으로 향해가고 있다. 거기에는 억압적이고 비민주적인 정부와 싸우는 것, 삶과 공동체에서 대안적인 해결책을 만드는 것, 기득권 남성들의 정치권력에 맞서 새로운 상상을 실천하는 것이 포함된다. 민주주의와 다양성이 결국 지구 환경을 지키는 가장 큰 무기인 것이다. - P15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