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쉽게 풀어쓴 현대어판 : 캉디드 미래와사람 시카고플랜 시리즈 7
볼테르 지음, 김혜영 옮김 / 미래와사람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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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사는 게 힘들 때가 있다. 일이 안 되도 이렇게 안 될 수 있나? 마치 온 우주가 나를 망가뜨리려고 작정한 게 아닌가 싶은 그런 나날들 말이다. 단순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순탄하게 풀리지 않는 선이 아니라 갑자기 창고 천정이 무너져서 비품을 모두 버려야 하는 일이 생긴다든가 옆 사무실에서 난 불이 우리 작업장까지 번져서 어제까지만해도 멀쩡했던 공간을 태워버렸다든가 하는 천재지변까지 거들고 나서면 정말 눈앞이 깜깜해진다. 살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이런 상황에 18세기 낙관주의자들은 '괜찮아, 결국에는 최선의 상태로 나아가게 될거야.'라고, 오늘 우리 시대 방식으로 치자면 '괜찮아, 다 잘 될거야'라고 생각하겠지만 미안하게도 현실은 상당히 빡세다. 21세기라서 빡센 건 아닌 것 같다. 왜냐면 18세기에도 저런 낙관주의자들을 비웃는, '현실이 이렇게 빡센데 최선이니 어쩌니 하는 공상만으로 정말 괜찮을 것 같냐'며 채찍을 휘두르는 소설이 있었기 때문이지.



볼테르의 풍자소설 [캉디드]는 이 소설이 등장하게 된 배경, 볼테르가 이 소설을 쓰게 된 시대 상황과 이 소설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에 대한 대략적인 정보를 알고 읽으면 더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내용 전개나 반전을 중요하게 다룬 작품이 아니기에 볼테르에 대하여 혹은 이 작품 자체에 대하여 약간의 정보를 갖춘 후에 소설을 읽어나가면 왜 이 소설이 이렇게 여러 지역을 종횡무진하며 주인공을 개고생시키는지에 대하여 의문을 품지 않고 마지막까지 흥미롭게 읽어나갈 수 있다.


볼테르는 18세기 중반에 유럽 도처에서 일어난 자연재해와 참극, 전쟁 등을 보고 듣고 겪은 후에 이 작품을 썼다. 볼테르의 작품과 가치관에 반대하던 사람들은 볼테르가 전통적인 기독교 정신을 무너뜨린다고 비난했지만 볼테르는 종교적 광신주의, 당시의 지배층인 가톨릭과 봉건주의에 맞섰던 지식인이었다. 볼테르는 [캉디드]에서 주인공 캉디드를 이 나라 저 나라로 떠돌게 하며 갖가지 사건 사고를 겪게 하는데 이 때에 당시 자신이 목격한 불합리한 현실의 사건사고들을 빗대어 그들이 살고 있는 세계를 신랄하게 풍자했다. 이런 저자의 입장을 알고 [캉디드]를 읽다보면 저자인 볼테르가 그의 작품과 그 주인공 캉디드를 통해 독자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 보다 분명하게 다가온다.



"인간은 본성을 타락시켜 온 게 분명해요. 늑대로 태어나지도 않았으면서 늑대가 되고야 말았잖아요. 신은 인간에게 24구경 대포도 주지 않았고, 총검도 주지 않았어요. 그런데 인간은 총검과 대포를 만들어냈고, 서로를 죽이고 있잖아요. 파산과 재판을 생각해보아도 결론은 똑같아요. 법원이 파산자의 재산을 탈취하는 바람에 채권자들은 더 힘들어지잖아요."

애꾸눈이 된 팡글라스가 대꾸했다.

"모든 건 필수불가결했던 겁니다. 각자의 불행은 대다수의 이익을 만들어내죠. 개인이 불행해질수록 전체적으로는 더 좋아지는 거랍니다."

25쪽



"오, 팡글로스 선생님! 선생님은 이런 참혹한 일은 상상도 못하셨겠죠? 이제는 끝입니다. 선생님이 말씀하셨던 낙천주의는 포기해야겠습니다."

캉디드가 소리 질렀다.

"낙천주의가 뭔가요?"

카캄보가 물었다.

"낙천주의? 아, 그건 상황이 안 좋은데 모든 게 좋다고 끊임없이 생각하는 집착 같은 것이지."

101쪽



[캉디드]의 첫 챕터에서, 주인공 캉디드와 그의 연인인 퀴네공드는 아주 순진하고 맑고 명랑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성화에 자주 등장하는 천사들의 모습처럼, 그들은 세상의 악하고 처참하고 무서운 일들,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는 온갖 이상한 일들을 전혀 알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러나 그들은 곧 험난한 세파 속으로 던져진다. 순진한 시절에 캉디드와 퀴네공드는 숭배하듯 팡글로스 선생과 그의 낙천주의를 따랐지만 그들이 진짜 리얼한 세상살이를 하는 동안 그들은 결국 깨닫고 만다. 낙천주의? 이제 그건 그만둬야지.


캉디드가 낙천주의를 결국 놓아버리기까지 겪는 파란만장한 사건 사고들 속에서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과 캉디드의 대화 속에는 흥미로운 내용들이 무척 많은데 특히 볼테르가 프랑스와 파리를 비꼬아 놓은 부분이나 당시 관료, 성직자들의 부패를 꼬집은 부분들은 상당히 재밌다. 지금 읽어도 재밌으니 이 작품이 당시에는 얼마나 폭발적인 호응을 받았을지 짐작이 된다.



"나는 그 어떤 종교법 전문가와 대신의 이름을 알았던 적이 없습니다. 지금 당신이 말하고 있는 그 사건에 대해서도 아는 게 전혀 없고요. (중략) 내가 농사짓는 밭에서 수확한 것들을 팔면 그걸로 된 거죠."

선량한 노인이 대답했다.

(중략)" 그 땅을 자식들과 함께 경작합니다. 노동은 우리를 세 가지 큰 불행, 즉 권태와 방탕 그리고 가난으로부터 멀어지게 해 주죠."

180쪽



캉디드는 농가로 돌아오면서 노인이 했던 말을 다시금 되새겼다. 그리고 팡글로스와 마르탱에게 말했다.

"우리가 영광스럽게도 함께 식사했던 여섯 명의 왕들보다 저 노인이 자신의 운명을 더욱 바람직하게 꾸리고 있는 것 같아요."

181쪽



이론과 사상, 학문, 정치 등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저런 거대한 것들인 것처럼 보이나 실상 개인의 삶이란 땅에 발을 딛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캉디드는 마침내 다시 퀴네공드를 만나고 결국 가정을 꾸린다. 퀴네공드 역시 세파 속에서 천진한 시절의 아름다움을 다 잃고 심지어 괴팍해졌지만 둘은 함께 살아간다. 그리고 캉디드는 유식한 것은 아무것도 모르는 무식한 노인과의 대화 속에서 우리의 삶이 어떻게 지속되어야 하는지를 깨닫는다. 땅을 경작하고 노동하며 그 노동의 결실을 신성한 삶의 양분으로 삼는 사람처럼, 우리 각자의 인생은 결국 각자가 경작하고 노동해야 하는 것이라고. "우리가 우리의 땅을 경작해야 한다는 것 또한 알고 있습니다(책181쪽)"라는 캉디드의 짧은 말에 이 작품 전체를 통해 저자가 전하고자 했던 이야기가 들어있다.



권태와 방탕 그리고 가난. 지금 우리의 세상에서도 많은 사람들의 삶을 어렵게 만드는 난제들이다. 누군가는 돈이 돈을 버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이 가난으로부터 멀어지게 해준다는 말이 가당키나 하냐고, 구닥다리 시절의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노동은 부자가 되게 해주지는 못하더라도 가난을 면하게는 해준다. 나의 노동이 나를 먹고 살게 한다면 이 노동이란 얼마나 귀한 것이며 그렇게 내 삶을 내 손으로 경작해가는 일은 얼마나 신성한 것인가? 심각한 우울증으로 권태와 방탕에 빠져 자신의 생을 스스로 어쩌지 못하는 사람들이 날로 늘어가는 걸 볼 때에 200여 년 전에 세상에 등장한 이 작품 [캉디드]는 지금도 여전히 흥미롭고 의미있는 소설이다.더군다나! 지금 우리 시대에도 족보없는 낙천주의에 자리를 잡고 누워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이 작품을 읽다보면 2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우리의 정신 상태는 별로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꽤 나이가 많은 소설이라 21세기의 독자로서 도전하기 어려워보인다면 미래와사람 출판사의 시카고플랜 시리즈 중 읽기 쉽게 풀어쓴 현대어판 캉디드를 읽기 시작하는 게 어떨지. 책 제일 앞부분에 인물 관계도가 있어 좋고 전체적으로 어렵지 않은 문장들이라 캉디드의 속도감과 파란만장함을 즐기기에도 좋다




노동은 우리를 세 가지 큰 불행, 즉 권태와 방탕 그리고 가난으로부터 멀어지게 해 주죠. - P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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