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하, 나의 엄마들 (양장)
이금이 지음 / 창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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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에 오랜만에 태극기를 주섬주섬 꺼내다 시간이 정말 빠르다는 사실을 다시 체감했다. 76주년을 맞은 광복절에 우리는 여전히 마무리가 되지 못한 역사의 부채를 안고 있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골목에 태극기를 게양한 집이 예전보다 현저히 줄고 사람들의 관심이 해방과 역사 보다는 대체공휴일과 휴가로 기울고 있는 현실은, 시간이 흐를수록 부채가 감하는 게 아니라 도리어 늘어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누가 지나가는 말로 그러더라. "어떻게 되찾은 나라인데..." 그래, 어떻게 되찾은 나라냐고, 이 나라가. 이름조차 남기지 못하고 목숨을 바친 수많은 사람들의 핏값이 아닌가. 그렇다면 죽은 사람들만 피, , 눈물을 흘렸던가. 그건 또 아니지. 죽을 각오로 몸을 던진 사람도 있었고 죽을 수 없어서 이를 악문 사람도 있었다. 그 때 그 시절이라는 말이 너무나 촌스럽게 들리더라도 어쩔 수 없다. 그 때 그 시절은 모두가 참혹하게 살아갔던 나날이었다.

 

 

이금의 작가의 <알로하, 나의 엄마들>1900년대 하와이를 개척한 한국 이민자들의 삶을 소설로 구성한 작품이다. '사진 신부'라고 부리는 조선 여성들, 그러니까 해외 이민 1세대 여성들이 어떤 삶을 살았고 그들이 남긴 유산은 무엇인지를 그린 이야기다. '알로하'라는 말이 낭만적인데다 소설 표지 삽화가 마치 휴양지에서 읽어야 할 것 같은 평온한 색채여서 나는 이 작품이 이렇게 생생한 고생사를 닮고 있을 줄 몰랐다.

 

이야기는 어진말에서 시작한다. 버들이와 홍주는 어진말에서 함께 자란 친구로 포와(하와이)로 함께 시집을 간다. 포와에서 보내온 사진 속 남자들은 다들 훤칠하고 부유해보였다. 일제의 탄압 속에 숨죽이며 살아가야 하는 조선, 유교의 강박에 갇힌 채로 삶아야 하는 조선을 벗어나 포와에 가면, 공부도 하고 원하는 일도 실컷 하고 잘생기고 훤칠하고 부유한 남편과 행복하게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무당의 딸로 돌팔매를 맞으며 컸던 송화까지, 어진말 출신 셋은 함께 부산을 지나 일본을 거쳐 포와에 도착한다. 그러나 포와에 도착해서 만난 남편들은 사진에 보이는 것 보다 10살 이상 많은 중년의 남성들이었다. 땡볕 아래서 고된 노동을 해서 깡 마르고 볼품 없는데다 농장 노동자로 일하는 형편들이라 부유한 것도 아니었다. 사기나 다름없는 환경에 사진 신부들은 모두 울며 불며 난리가 났지만 차마 조선으로 돌아갈 수 없어 현실에 적응하며 살아낸다. 소설은 버들이를 주축으로 버들이와 홍주와 송화의 하와이 정착기 나아가 이 세 친구가 만나고 겪은 여러 조선 이민자들의 삶을 촘촘하게 그린다.

 

 

 

조선 독립도 중요하지만 당장 먹고 사는 일도 중요하다 아입니꺼.

- 버들

 

 

 

조국의 독립을 이루는 거이 자식을 위한 일 아니갔어. 내레 나 위해서 이러간?

- 버들의 남편, 태완

 

 

 

나는 아버지를 부끄러워해야 할지, 자랑스러워해야 할지, 불쌍하게 생각해야 할지 늘 헷갈렸다.

- 태완이 무장독립투쟁을 하는 동안 버들이 홀로 낳은 딸,

 

 

 

1세대 이민자 사회는 혼란했다. 지켜주는 나라가 없어서 그러했고, 이승만 파와 박용만 파와 갈려 서로 다투느라 그러했다. 일제에게 아버지를 잃고 오빠도 잃었던 버들은 힘이 없어 당하는 설움을 너무나 잘 알았다. 아마 그래서 남편 태완이 어린 정호와 버들만 두고 무장독립투쟁을 하러 떠나겠다고 했을 때 차마 막아서지 못했을 것이다. 그의 열의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버들은 자신과 다른 태완의 가치관이나 이승만 파에 속한 친한 지인들이 자신을 따돌리는 모습에 대해서 분노하거나 대적하지 않는다. 그들을 사랑하고 아낀 자신의 마음은 고요히 접어두고 자신이 할일을 찾아 부지런히 살아간다. 조선과 모든 것이 다른 하와이에서 적응해야 했던 이민 1세대의 대부분이 그러했으리라. 어떻게든 정붙이고 살아가 보는 것. 그렇게 살다보면 살아지고 그렇게 살아지다보면 어느 새 황혼에 이르는 법이다. 이해하지 못할 것을 그저 받아들이는 자세는 버들의 딸인 펄에게 계승된다. 마치 보낸 이를 알수 없는 택배처럼 버들의 몫으로 속속 들이닥친 삶의 고비들, 그 고된 시간들을 버들이 묵묵히 버티며 감당해온 것처럼, 이야기의 끝에서 펄이 '해안에 부딪힌 파도가 사정없이 부서질 걸 알면서도 멈추지 않듯 나도 그렇게 살아가겠다'고 다짐한다. 엄마인 버들과 갈등이 깊었던 펄이 이런 마음을 먹기까지 쉽지 않았다. 버들과 펄에 대한 여러 반전은 소설 후반부에 숨어 있는데 이 반전 덕에 소설 중반을 넘어서며 조금 느슨해졌던 읽는 재미의 텐션이 다시 바짝 올라간다.

 

 

 

⁠⁠ 얼마 전 끝난 도쿄올림픽의 서핑 종목 해설이 그야말로 명품이었다. 서핑 국가대표 감독인 송민 해설위원이 남긴 여러 해설 멘트 중에서 내 뇌리에 남은 건 이 한 부분이었다. 선수가 경기를 잘 했든 못 했든, 가진 기술을 다 보여주었든 그렇지 못했든 지금 선수가 탄 파도는 '본인이 선택한 파도' 서핑을 인생과 견주는 여러 멘트가 등장했는데 인생과 서핑의 결정적 교집합을 짚어내자면 바로 저 멘트가 아닐까. 우리의 삶은 예측할 수 없는 수만 가지의 사건 사고에 부딪힌다. 때로는 내가 선택하지 않은 일이라며 억울하기도 하고, 내가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지 원망이 드는 상황도 있다. 그러나 결국 생이라는 바다 위에서 내가 타고 있는 물결은 내가 선택한 파도다. 잘 되면 좋겠지만 안 되도 어쩔 수 없다. 펄의 말처럼 파도는 부딪혀 부서질 걸 알면서도 기꺼이 바위에 부딪혀 산산이 흩어진다. 그리곤 무지개를 남긴다. 모든 파도는 결국 부서지고 저마다 무지개가 된다. 내가 원하는 걸 얻지 못했더라도 무지개 같은 위로 덕에 생은 그 다음 파도로 다시 이어진다. 부서질 걸 알면서도, 기꺼이 부딪히겠다는 펄의 용기의 근간은 그녀를 키운 엄마들이다. 1세대에서 2세대로 이어진, 지금의 우리에게도 간절한 이 용기의 유산이야말로 역사를 가장 빛나게 기록할 수 있는 자양분이리라.

 

 

 

 

 

 

 

 

내 딸은 좋은 시상에서 내보다 나은 삶을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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