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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미터 그리고 48시간 ㅣ 낮은산 키큰나무 17
유은실 지음 / 낮은산 / 2018년 9월
평점 :
갑상선 항진증 진단을 받은 건 정말이지 뜻밖이었다. 살이 몰라볼 만큼 빠진다는데 나는 그런 적도 없었고 목이 튀어나온다는데 그런 증상도 없었다. 다만 정말 미쳐버릴 만큼 피곤하고 고단해서 어딜 제대로 다니지 못했을 뿐이다. 코로나19로 거의 모든 업무를 멈추고 집에 콕 박혀서 지낸 시간이 도리어 나에게는 행운이었을까? 아마 작년과 같은 업무를 그대로 하고 있었다면 진즉에 실려갔을 수도 있다.
항진증 치료약을 먹기 시작한지 두 달째에 접어들면서 몸 컨디션은 많이 나아졌다. 치료되어 가는 과정인지 살도 오르기 시작하고. 만성피로가 나를 짓누를 때는 우울감도 심했는데 확실히 요즘은 마음도 가벼워졌다. 신체의 면역력이 약해져서 병이 드는 게 순서겠지만, 마음이 약해지면 몸도 약해져서 병이 들고 병이 나아가면 즉 몸이 건강해지면서 다시 마음도 강해지는 신체와 정신의 밀접한 관계를 이번에 톡톡하게 체감했다.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이 병증과 함께 하면서 병자로 산다는 것은 내가 막연히 생각했던 사회적 약자로 산다는 문제와는 아주 차원이 다른, 대단히 어렵고 힘든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2미터 그리고 48시간]은 갑상선 항진증 진단을 받은 정음이가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을 병자로 보내면서 느끼는 걸 그린 소설이다. 형편이 어려운 집안, 엄마와 아빠는 따로 살고 엄마와 함께 사는 정음이는 그나마도 마음이 편치 않다. 정음이는 엄마와 살면서 한번도 병자로서 엄마에게 기대본 적이 없다. 속깊은 정음이에게 보이는 엄마의 생활고는 정음이로 하여금 주변사람에게 의지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 병자인 정음이 속을 누가 알아줄 수 있을까? 친구들이란 어차피 그 또래, 고만고만한 아이들일 뿐이다. 어른도 다 헤아리지 못하는 그 외로움과 슬픔, 억울함과 화를 어떻게 알겠어. 같은 입장이 되어보지 않으면 절대 모른다.
[2미터 그리고 48시간]의 저자는 주인공 정음이처럼 갑상선 항진증을 오래도록 앓아온 소설가다. 병원에 갔을 때 함께 대기실에 앉아 있던 청소년 환자를 보고 이 소설을 떠올렸다고 한다. 어른이 감당하기에도 어려운 이 병증, 병자에 대해 무심하고 혹독하기까지한 이 사회의 냉혹함을 어린 환자는 어떻게 감당하고 있을까. 같은 입장이기에 조근조근 그 아이의 속내를 헤아려보는 것에서 이 소설이 시작되었다. 그래서 [2미터 그리고 48시간]은 '병자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벗'이라는 판타지를 등장시킨다. 정음이의 마음을 알아주는 같은 반 아이 인애 그리고 정음이의 할머니는 오랜 병증으로 얼어버린 정음이의 마음을 녹여준다. 그리고 정음이는 항진증과도, 그 병증이 가져온 외로움과 괴로움과도 작별하며 어른이 되어간다.
내 새끼, 아픈 데 사느라고 얼마나 고생이 많으냐? 아무도 모른다. 아파 보기 전에는 몰라.”
할머니의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그러고는 멍해졌다. 엉덩이뼈가 부서진 채 누워서, 6인실의 소음을 견디며 죽음을 기다리는 할머니, 그 할머니가 단단히 잠겼던 빗장을 열고 내 마음속으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왔다.
144쪽
정음이의 항진증이 차도가 보이지 않자 결국 병원에서는 방사선 약물 투여를 결정한다. 방사선 약을 삼킨 뒤 48시간 동안 그 어떤 인간도 정음이의 2미터 이내로 들어와선 안 된다. 정음이가 먹은 약에 피폭될 수 있기 때문이다. 수 년을 앓아온 항진증보다도, 병이 주는 경제적 그리고 정서적 어려움 보다도 정음이가 두려워한 건 그 '2미터 그리고 48시간'이었다. 약을 먹고 혼자 있을 수 있는 친할머니의 집으로 가는 과정에서 정음이는 필사적으로 사람들과 2미터 이상 떨어지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2미터를 떨어지기란 예상보다 훨씬 어려운 일. 정음이는 '우리가 이렇게 가까웠구나'를 새삼스럽게 느끼며 갖은 고생 끝에 친할머니의 집에 도착한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병원에 홀로 다녀오시다가 큰일을 당했던 할머니가 있어 혼자 병원에 다녀오는 정음이가 남같지 않은 인애, 엉덩이 부상으로 병원에 입원한 채로 정음이를 위로하는 정음이의 친할머니, 말은 무심하게 해도 정음이가 먹을 수 있는 저요오드식으로 냉장고를 꽉 채워둔 아빠를 차례로 등장시킨다. 아파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병자의 마음은 누구라도 따듯하게 헤아려 줄 수 있다. 오늘 처음 만난 타인조차도 아파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동감하게 되고 연민하게 된다. 이 동감과 연민은 병자를 치료하는 또다른 약이자 힘이다. 정음이는 생각지도 못한 사람들로부터 동감과 연민을 받으며 마음을 연다. 아파보지 않은 사람은 없다. 사실 우리는 알고 보면 서로를 이해하고, 그 아픔에 동감하고, 그 고통을 연민할 수 있는 그런 존재라고, 작가는 숭늉처럼 고소한 필치로 정음이를 그리고 우리가 사는 세상을 그려냈다.
나는 어른이 된 정음이가 편의점에서 친구와 나란히 앉아 컵라면을 먹으며 소박하게 즐겁기를 바란다. 여전히 생활고에 시달리는 엄마와는 든든한 동지가 되고 인애가 정음이에게 그랬던 것처럼, 주변의 병자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어여쁜 어른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 역시 그러기를. 정음이의 친할머니가 정음이에게 '아픈 데 사느라고 얼마나 고생이 많으냐'고 위로했듯이 나 역시 그렇게 주변의 병자를 위로할 수 있기를 바란다. 무엇보다도 작금의 거리두기와 시간두기를 통해 우리 모두가 이 동감과 연대를 체득할 수 있게 되기를, 그러기를 바란다.
내 새끼, 아픈 데 사느라고 얼마나 고생이 많으냐? 아무도 모른다. 아파 보기 전에는 몰라."
할머니의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그러고는 멍해졌다. 엉덩이뼈가 부서진 채 누워서, 6인실의 소음을 견디며 죽음을 기다리는 할머니, 그 할머니가 단단히 잠겼던 빗장을 열고 내 마음속으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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