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인트 (반양장) - 제12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89
이희영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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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옵션을 고르듯이 부모도 고를 수 있다면 운명은, 각자의 인생은 어떻게 달라질까? 세상에 태어날 때 상속받는 유전자는 선택할 수 없더라도 태어난 이후 살아갈 환경을 고를 수 있는 선택권이 있다면 어떨까? 그건 행운일까?

 

<5가지 사랑의 언어>라는 테스트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 테스트를 해주셨던 선생님이 그랬다. "누군가는 사랑의 표현을 말로, 누군가는 궂은 일을 대신하는 것으로, 누군가는 선물을 하는 것으로 한다. 사람마다 사랑의 표현법 즉 사랑의 언어가 다른데, 한 가정 내에서도 가족 구성원마다 사랑의 언어가 다르다. 특히 부모가 쓰는 사랑의 언어와 자녀가 쓰는 사랑의 언어가 다르면 서로 간에 오해가 쌓이기 쉽다." 부모가 자녀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자신의 기준과 취향, 가치관과 사고방식을 자녀에게 강요하면 생기는 건 갈등 뿐이다. 부모가 그들의 부모와는 다른, 독립된 인격체이듯 자녀 역시 부모와 구분되고 분리된 인격체다. 부모가 자녀에게 똑똑하고 성실하거나 착하고 부지런하거나 등등을 바라듯 자녀 역시 부모가 지혜롭고 인내심이 많거나 상냥하고 다정하거나 등등을 바란다.

 

청소년 소설 [페인트]는 자녀가 바라는 부모에 대한 상상력에서 시작된 작품이다. [페인트] 속 시설(NC)에서 자란 청소년들은 부모를 선택할 수 있다. 부모가 아닌 국가로부터 양육을 받은 시설의 아이들을 입양하여 기르면 국가가 보조금을 지급한다. 보조금이 절실한 기혼 커플들은 부모 면접에 뛰어든다. 아이들은 이력서를 낸 지원자들 면접을 보는 가게 사장님처럼 부모 지원자들을 심사한다. 생활 형편은 괜찮은지, 성격은 원만한지, 말이 통하는 타입인지, 취향은 비슷한지. 마치 결혼시장에 뛰어든 여자와 남자가 서로의 조건을 계산하고 만나보듯 부모와 자녀가 조건만남으로 가정을 이룬다. 그래서 [페인트] 속에서는 시설의 아이들이 만족스러운 가정을 이루는지 어쩐지는 비밀. 궁금하신 분들은 책[페인트]를 읽어보시라.

 

 

아내와 남편 사이는 무촌이나 부모와 자녀 사이는 천륜이다. 어느 관계가 더 운명적이고 절대적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페인트]를 읽고 나서 부모와 자녀 사이는 천륜이라는 말에 더 깊이 공감하게 된다. 낳아준 부모에게 양육을 받은 자녀 사이는 운명이고 생물학적 부모는 아니더라도 기른 부모와 자녀 사이 역시 운명이다. 인연은 내 마음대로, 내 뜻대로 닿는 것이 아니기에 언제나 운명적이다.
인연이 운명이라면 생활은 노력이다. 어떤 인연으로든지 한 가정을 이루게 된 구성원-부모와 자녀-들이 각자 어떤 노력을 하는지에 따라 가정 생활의 만족도가 달라진다. [페인트]는 그래서 묻는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 필요한 것은 무엇이냐고? 행복한 가정이란 어떤 거냐고?

 

 

“바깥에서 지내다보니까, 친부모 밑에서 자라는 애들도 우리랑 별반 다르지 않더라. 부모와 남보다 못하기 지내는 경우도 있고 의견 충돌도 잦고. 부모에게 바라는 거라고는 제발 아침마다 잔소리 좀 하지 마라, 하루에 한 시간 정도는 VR룸에서 보낼 수 있게 해 줘라, 친구하고 비교 좀 하지 마라, 몰래 멀티워치 좀 살펴보지 마라 뭐 이 정도거든. 한마디로 부모에게 특별히 기대할 게 없단 거지. 그런 부모들이 프리 포스터로 왔다고 생각해 봐. 누가 페인트를 하겠냐? 바로 안녕이지.”
[페인트] 183쪽

 

독립이란 성인이 된 자녀가 부모를 떠나 자기 힘으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나의 말처럼,
어쩌면 부모 역시 자녀로부터 독립할 필요가 있는 건지도 몰랐다.
자녀가 오롯이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걸
부모에 대한 배신이 아닌 기쁨으로 여기는 것,
자녀로부터의 진정한 부모 독립 말이다.
다시 걸음을 옮겼다.
하나는 나와 거리를 유지하면서 나란히 걸었다.
가족이란 그저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인지도 몰랐다.
‘먼발치’라는 말의 뜻은 시야에는 들어오지만
서로 대화하기는 어려울 정도로 떨어진 거리, 라고 한다.
[페인트] 160쪽

 

“우리는 다 열세 살이 넘었어요. 오히려 부모와 멀어지는 시기라고요. 가장 예민하고 혼란스러운 시기에 부모를 원한다는 게 무슨 뜻이겠어요? NC출신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인 거죠. 물론 정말 아이를 원하는 프리 포스터들도 있겠죠. 진심으로 부모의 사랑을 원하는 아이가 있듯이.”
그게 누군지 아시죠? 나는 박에게는 눈으로 말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고, 나는 말을 이었다.
“서로가 서로의 필요에 의해 살아가는 거, 저희만의 얘기가 아니잖아요. 바깥세상의 가족들이 사랑으로만 연결되어 있나요?”
[페인트] 190쪽

 

 

 우리는 무엇으로 연결되어 있는지, 쉽게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필요에 의해서이기도 하고 정에 의해서이기도 하고 어쩔 수 없어서기도 하다. 서로가 너무나 소중해서, 사랑해서, 정이 깊어서 등등 동화 같은 답만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가족이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그렇다면 나는 어른인가, 이런 질문에도 입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 부모는 자녀로부터, 자녀는 부모로부터 혹은 보호 받고 있던 존재로부터 자립하여 오롯이 자신의 모습이 되는 것. 그게 참 어른일텐데, 이런 생각으로 세상을 보면 참 어른은 많지 않아 보인다.

 

상처는 가까운 사람이 준다. 가까운 사람에게는 기대를 하고 의지를 하게 되는 게 인지상정. 그래서 가족은 행복의 근원인 동시에 상처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가족이란 참 기묘한 구성체 안에서 공존하는 상처와 행복에 공감하지 않는 이가 어디 있으랴. 때문에 가족 내부에서의 경험은 지극히 개인적인 동시에 공동의 것이다. [페인트]가 자기의 현재와 미래를 자기 손으로 그리고 싶어하는 청소년 뿐 아니라 가족이라는 울타리로 고민하는 성인들에게도 깊은 공감과 울림을 남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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