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번의 일
김혜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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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사의 엔지니어가 지방의 영업직원이 되고 그마저도 오래 머물지 못하고 퇴직으로 밀려났다가 산골 노인들을 상대해야 하는 하청업체 노동자가 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는 고객과 민원인들에게는 회사의 대언자가 되곤했지만 정작 그가 곤란할 때 회사는 그의 대언자가 되어주지 않았다. 그는 고객과 민원인들에게 회사가 시키는 대로, 회사의 입장대로 말하는 일을 수행했지만 고객과 민원인들이 그에게 찾아와 회사의 입장과 조율울 보고자 할 때에 그 조율에 응하는 일을 수행할 수는 없었다. 실체도 형체도 없이 그저 '회사'라는 글자로만 존재하는 조직과 그 조직이 떠맡긴 일을 수행하는 그, 9번. [9번의 일]은 그 9번이 회사로부터 받은 일의 실체와 그 일이 9번의 인간성을 완전히 파괴하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살벌해, 점점 더 살벌해진다니까. 단물만 다 빨아먹고 이제 빈손으로 나가라는 거지. 안 그래요?

어디 여기만 그런가. 다 그래. 다 그렇다고. 개새끼들. 못된 건 서로들 또 얼마나 금방 배우는지. 하는 짓거리들 보면 다 똑같아.

맞아. 못된 건 금방 배워. 왜 그럴까? 응? 왜 그런거야?

85쪽

 

 인간성이 파괴되는 일은 생각보다 쉽다. 세상이 복잡해지면서 사람을 파괴할 수 있는 방식도 다양해졌다. 냄비에 든 개구리가 물이 따뜻해지는 동안은 그걸 즐기다가 결국 물이 끓을 때까지 냄비를 벗어나지 못한 채로 죽게 되듯이. 서서히 끓어오르는 동안 개구리는 알지 못한다. 이 뜨거운 물이 결국 나 자신을 죽일 거라는 사실을. 그러나 만약 알았다고 해서 거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 그 따듯하고 아늑한 냄비 안을 포기하고 나올 수 있었을까? 냄비 속 따듯한 물이 무엇인지는 사람마다 다르리라. [9번의 일]의 주인공 그에게는 이것이 '일'이었다.

 

걷다 보면 거대한 싸움판 한가운데 서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누군가 비열하고 야비한 방식으로 자신을 이곳까지 불러들인 것 같았다. 매일 아침마다 그는 보이지 않는 상대를 주시하고 아직 시작되지 않은 싸움을 기다리는 우스꽝스러운 자신과 나란히 걷고 있는 착각이 들었다.

165쪽

 

 직업이나 회사 내에서의 역할로서의 일이 아니라 행동으로서의 일은 무척 치명적이다. 자아 실현의 방법으로서의 일은 이제 지나간 시대의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 시대의 자아 실현은 더이상 자의에 기대지 않는다. 오히려 자의를 적극적으로 부정한다. sns에서 방송에서 온갖 미디어와 거리에서 그리고 집에서마저 우리는 자아를 의심받고 자신의 현재, 자신의 가치를 부정당한다. 가진 것도 많고 누리는 것도 많은 잘난 타인들 속에서 우리는 자꾸만 주변으로, 변두리로 밀려나고 밀려난다. 그래서 일을 한다. 소외되지 않기 위해서 일을 한다. 일은 사회 구성원으로, 가정의 일익을 담당하는 가족으로, 현대 사회에서 낙오되고 소외되지 않은 개인으로서의 나 자신이 되게 해준다. 그렇게 일이 내가 되고 내가 일이 된다. 소외되지 않기 위해서 일을 했는데 일에게 잠식당한 후로 일은 나를 세상으로부터, 가족으로부터 그리고 나 자신으로부터 소외시켜버린다.

 

오랫동안 그에게 회사는 시간을 나눠 가지고 추억과 기억을 공유한 분명한 어떤 실체에 가까웠다. 그의 하루이자 일상이었고 삶이라고 불러도 좋았다. 친구이자 동료였고 가족이었으며 또 다른 자신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었다.

자신의 일부이자 전부였던 것.

그는 잠에서 깨어나듯 가볍게 머리를 흔들었다. 순진하고 어리석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지금 이 순간까지도 그런 생각을 완전히 버리지 못하는 스스로가 한심했다. 그의 생각은 스스로를 여기까지 밀어붙인 게 바로 자신이라는 결론에까지 이르러 있었다.

책 229쪽

 

[9번의 일]은 일이 사람을 잠식하는 과정을 치밀하게 그렸다. 9번에게 닥친 상황은 특이한 것도, 특별한 것도 아니며 기이한 것도 아니다. 아주 보통의 상황, 우리 중 누구라도 잘 아는 상황이다. 한 번 이상 겪어본 상황이기도 하고 아직 안 겪어본 이에게는 앞으로 가까운 미래에 꼭 한 번 겪을 법한 상황이다. 그래서 이 소설이 섬뜩하다. 9번의 일은 나의 일이 될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 뼘씩 두 뼘씩 성큼성큼 자라나서 마침내 스스로 서 있게 된 철탑을 올려다볼 때마다 그의 내부엔 알 수 없는 조바심이 차올랐다. 그건 두려움으로 번졌고 이내 공포심으로 몸집을 키웠다. 자신의 손으로 뭔가를 만들고 완성했다는 자부심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다만 자신이 만든 것이 저토록 흉물스러운 것이었다는 깨달음과 이곳의 작업이 끝나가고 있다는 불안감과 충돌하며 밤새 그를 깨어 있게 했다.

그것이 그가 만든 것의 실체였다.

245쪽

 

어쩌면 이 작품이 세상에 나온 건 아주 적절한 타이밍일지도 모른다. 9번이, 자신의 손으로 만든 흉물스러운 것의 실체를 마주한 때는 그가 완전히 세상과 그리고 모든 인간들과 차단되어 고립된 후였다. 다음 9번은 누구인가? 이대로 우리가 각자의 세계에만 갇힌 채 일에 몰두한 채로 이 세상에 지속된다면 '일'의 시커먼 아가리에 물리지 않을 이가 없을 것이다. 당신에게 일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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