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월 시집 진달래꽃
김소월 지음, 나태주 시평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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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읽을 때는 꼭, 각 인물의 대사를 입으로 소리내어 보라고 한다. 직선과 곡선으로 박제된 글자로서가 아니라, 둥글려지는 혀의 울림과 길거나 짧게 마치 파도의 나래처럼 저절로 움직이게 되는 운율이 소리를 타고서야 비로소 모습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이렇게 현현한 의미의 진짜 표정은 말하는 이의 혹은 듣는 이의 얼굴로 옮겨 고스란히 물든다.

 소리의 마법. 글에 고정된 감상과 감정이 말과 운율을 타고 되살아나는 마법이 가장 아름답게 펼쳐지는 곳은 詩의 장막이다. 구어와 운율을 양 날개 삼아 어느 한국인에게나 익숙하게 시의 세계로 날아오르게 이끄는 민족시인, 김소월. 국민시인이니 민족시인이니 하는 수식어로 김소월을 부르는 이유는 비단 진달래꽃이라는 작품이 유명해서만은 아니다. 알에이치코리아에서 새로 펴낸 [김소월 시집 진달래 꽃]의 서문에서 나태주 시인은 김소월의 시가 어떻게 민족성, 보편적인 국민성을 획득하는지를 설명한다.

 

 

 지금까지 우리의 시인 가운데 김소월만큼 장기간에 걸쳐 폭넓은 독자층의 지지를 확보한 시인이 있었던가. 김소월의 시는 단연 독보적 존재로서 우리 민족의 마음을 울리며 장강과 같이 오늘에 이르고 있고 내일로 가고 있다.
 시에서 말하는 개성과 보편성을 두고 볼 때도 김소월만큼 그 두 가지 면을 고르게 성취한 시인이 없다. 김소월의 시야말로 개성, 시인만의 오로지한 특성이 분명하면서도 독자들에게로 향한 보편성도 드넓게 열린 시라고 할 것이다.
[김소월 시집 진달래 꽃] 5쪽

 

 시의 재료가 감정이란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것이다. 인간의 감정 가운데 사랑하는 마음, 그리워하는 마음보다 좋은 마음은 없다. 사랑의 대상이나 그리움의 대상으로는 인간만이 아니라 자연이나 사물이 될 수도 있다.
 이 사랑하는 마음과 그리워하는 마음을 아름다운 말, 예쁜 말, 착한 말로 정성껏 다듬어 쓰는 시가 바로 연애시이다. 이러한 연애시야말로 시의 본령이며 독자들이 진정 원하는 시이며 독자들에게 도움을 주는 시이다.
 그런 점에서 김소월의 시가 연애시라는 점은 비난이 아니라 칭찬이 되어야 한다.
[김소월 시집 진달래 꽃] 7쪽

 

 김소월 시의 바탕은 우선 우리의 전통적 민요에 있다. 민요적 가락을 십분 발휘하여 시를 이룬다. 한때는 7·5조라 그랬지만 그 이론이 극복되고 지금은 3음보 가락이라고 말을 한다. 우리의 민요의 기본 리듬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는 3음보 가락을 변용시켜 자연스럽고도 편안하게 활용되고 있음을 본다. 시인만의 체질화된 숨결이라 하겠다.
 소월 시의 그다음 특성은 철저한 구어체 문장의 사용이다.
[김소월 시집 진달래 꽃] 9-10쪽

 

 

 [김소월 시집 진달래 꽃]에는 나태주 시인의 여는 글, 김소월의 작품들, 김소월 시인이 쓴 유일한 시론인 시혼詩魂까지 한 권에 엮여 있다.
 33세 젊은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김소월 시인의 생애는 내가 다 아깝고 안타깝다. 릴케는 시는 감정이 아니라 체험이므로, 벌이 꿀을 모으듯 시인은 한평생 의미를 모으고 모아 쓰는 거라고, 그래서 한 행의 시를 쓰기 위하여 많이 보는 거라고 했다. 많이 본다는 말은 곧 오랜 시간을 본다는 것이리라. 십 년의 짧은 시간 동안 민들레 같은 진실한 시들을 남긴 김소월 시인에게 만약 그 다음 십 년이 더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나태주 시인이 서문에서 쓴대로,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면서 숙성하고 정제되어 보다 풍요롭고 향미 짙은 숲을 이루었을 그의 시詩 세계를 우리는 만나지 못했다.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막연한 낭만이 아니라, 분명한 유산이 되었을 그 세계의 부재를 실감하기 때문에 아깝고 안타깝다.

 


 그래서 김소월의 시집, 내가 전에 만나지 못했던 그의 다른 작품들을 읽으면서 감탄하고 감동하는 일에 단순한 즐거움과 기쁨일 뿐 아니라 아련한 그리움이 더해지는가 보다. <진달래꽃>이라는 작품을 통해서 대략만 알았던 김소월의 시 세계는 낯익으면서도 낯설다. 계절은 여름을 기약하는 봄인데 시집 속의 시인은 때로는 흑백의 겨울에서, 또 가끔은 먼지 바람이 이는 가을에서 그리움과 이별의 정한을 노래한다. 이별이, 서러움이 계절을 가려 묻고 오지 않으니 그런 이별의 섦을 노래한 김소월의 시 역시 사계절을 가려 묻지 않고 읽히겠거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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