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심원단 변호사 미키 할러 시리즈 Mickey Haller series
마이클 코널리 지음, 한정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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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클 코넬리는 영미문학을 대표하는 스릴러 작가다. 30년 가까이 범죄스릴러소설을 써왔다. 변호사 미키 할러 시리즈는 벌써 7편이 발표되었고, 살인전담반 형사인 해리 보슈를 주인공으로 한 시리즈는 22편이 발표되었다. 두 개의 굵직한 시리즈물 외에도 다양한 소설을 출간했다고 하니 마이클 코넬리의 정력적인 작품 발표에 감탄만 나온다.
 
 그렇게 발표된 작품들은 드라마와 영화로 만들어지는 등 그 상업성과 대중성을 인정받고 있다. 미키 할러 시리즈의 첫 편인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는 매튜 매커너히 주연으로 영화로 만들어졌고, 보슈 시리즈는 드라마로 제작 중이라고 한다.

 

 마이클 코넬리가 소설작가로 전향하기 전의 이력도 화려하다. 기자로 일했던 그는 퓰리처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단다. 기자로 일하면서 취재한 수많은 범죄 사건들이 그가 쌓아온 작품 세계의 바탕이 되어주었다.

 마이클 코넬리의 소설을 그 전에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다. 추리나 범죄스릴러 장르의 소설을 즐겨 읽지 않는 편이라 그렇다. 범죄스릴러나 수사물, 법정물은 드라마로 보는 게 박진감 최고라는 개인의 취향 탓이 크다. 인간 쓰레기라고 할만한 문제인물들의 변호를 주로 맡는 변호사 미키 할러 시리즈는 그래서 나에게 무척 생소했다. 그래서 경력이 그토록 화려한 작가의 이렇게 대단한 시리즈, 미키 할러 시리즈의 가장 최근작인 [배심원단]은 읽기 전부터 낯섦과 설렘을 동시에 주는 묘한 소설이었다.

 

 

 

 

 [배심원단]은 미키 할러가 지방검찰청장 선거에서 패배하고 1년이 지난 뒤다. 선거에서 패배하면서 자존감과 자존심에 모두 상처를 입은 미키 할러는 일에 몰두한다. 인간쓰레기의 변호인으로 악명이 높은 미키 할러는, 그가 석방시킨 션 갤러거가 사람 둘을 치어 죽이면서 딸과의 사이도 완전히 틀어져 버린 상태다. 희생자 둘은 딸의 친구와 그 엄마였고 딸은 아빠의 삶의 방식, 악인을 옹호하고 변호하는 직업적 태도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미키는 어떻게든 딸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싶어하지만 심지어 한 시간 반 거리의 도시로 전처와 딸이 이사를 가게되는 등 관계 회복의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그를 괴롭히는 건 딸과의 관계 뿐 아니다. 그는 션 갤러거 사건으로 촉발된 깊은 죄의식에 시달린다. 자신의 직업적 활동이 낳은 희생자들, 피해자들은 그의 무의식 중에서 계속 그를 괴롭힌다. 열두 명의 배심원단 앞에서 그는 의뢰인이 아니라 마치 자기 자신이 심판받는 듯 느낀다. 악인을 옹호해야 하는 변호사로서의 죄의식을 전면에 내세운 이 작품의 제목이 [배심원단]이라는 사실이 작품 전체에 긴밀하게 깔려 있다.
 
“그 작자 이름은 갤러거예요, 션 갤러거. 제 할 일을 했다는 건 중요하지 않아요. 저 때문에 사람이 죽었어요, 아저씨. 제가 석방시킨 사람 때문에 사거리에서 두 명이 차에 치여 사망했는데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만 하면 책임이 없어지나요. 어찌 됐든 이만 가볼게요.”
32쪽

 

딸 헤일리가 나와 인연을 끊으면서 했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내 의뢰인 명단에는 약쟁이나 살인범 같은 ‘인간쓰레기들’이 우글거린다고 했다.
38쪽

 

“네가 항상 갖고 있는 죄책감 말이야. 그게 변호사로서의 네 역량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치니까 문제다. 변호사로서, 피고인의 옹호자로서, 이 사건에는 부당하게 기소된 피고인의 옹호자로서 네가 보여줘야 할 업무능력에 악영향을 미치니까.”
231쪽

 

 미키 할러 시리즈는 법정 스릴러답게 범죄와 법, 재판에 관련한 공방이 촘촘하고 긴장감 있게 펼쳐진다. [배심원단]은 특히 미키 할러가 법을 대하는 자세, 배심원단을 설득하는 과정, 정의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는 저자의 전언이지 않을까 싶다.) [배심원단] 속에서 악인과 선인의 경계가 없다. 누굴 악인이라고 할지, 누굴 선인이라고 할지 모르겠는 모호함이 아니라 아예 ‘선인’이라고 할 만한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다. 소위 말해 법 없이도 살 사람이 없는 것이다. 이 지점이 미키 할러 시리즈가 갖는 냉엄한 현실성이다. 미키가 변호하는 의뢰인은 살인혐의로 기소되었지만 살인자는 아니다. 하지만 살인자가 아닐 뿐 선인은 아니다. 그래서 이 작품 속에서 미키의 멘토 역할을 하는 리갈은 이렇게 말한다.
 
법은 무른 납과 같아서, 구부려서 원하는 대로 모양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법은 유연한 거야. 구부릴 수도 늘일 수도 있지.” 리걸 시걸은 항상 이렇게 말하곤 했다.
27쪽

 

 이건 법이 느슨하고 안일해서가 아니다. 법이 심판하는 대상이 인간이기 때문에 그렇다. 인간 자체가 하나의 기준, 하나의 잣대로 무 자르듯 분명하고 명료하게 재단되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배심원단]은 이런 인간의 한계와 특성을 ‘법’이라는 현미경을 통하여 들춰낸다. 미키 할러가 문제인물들을 어떻게 변호해서 결국 어떤 방법으로 승소하는지의 과정을 읽는 것도 재미있지만, 인간을 바라보는 저자의 이런 시각을 읽는 것도 그 이상으로 재미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읽으면서 미국의 법과 재판에 대하여 배울 수 있어서 유익했다. 저자가 굉장히 집요하고 철저한 취재와 검증으로 이 작품을 썼다는 사실은 책장을 넘기면서, 재판 과정과 법리에 대한 인물들의 대화를 읽을 때마다 느끼게 된다. 단순히 흥미와 자극 위주로 쓴 작품이 아닌, 깊이 있는 취재와 해석 그리고 생생한 인물 창조로 빚어내는 마이클 코넬리의 작품들은 출간할 때마다 인기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된다. [배심원단] 덕에 마이클 코넬리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보고 싶을 뿐 아니라 추리소설, 스릴러 장르에 대한 인식의 전환까지 되는 중. 진짜 재밌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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