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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강변
임미옥 지음 / 봄봄스토리 / 2020년 3월
평점 :
[꿈꾸는 강변]은 충북일보에 ‘임미옥의 산소편지’를 연재해 온 임미옥 수필가가 그간 발표했던 작품들을 엮어서 펴낸 수필집이다. 청주에서 1인1책 펴내기 교실에서 수필을 강의하고도 있다는 저자는 이번 [꿈꾸는 강변]이 세 번째로 펴낸 수필집이다.
카카오 브런치의 영향인지 재작년부터 여러 종류의 에세이서적 신간이 풍성하게 서점을 채우고 있다. 대부분 20~30대의 젊은 저자들이 쓴 파격적이고 날렵한 저작들이 포진하고 있는 에세이 시장에 중년의 수필가가 쓴 수필집이란 ‘호흡도 차분하고 문맥도 지루하게 읽히지 않을까’ 싶은 인상을 먼저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임미옥 수필가의 내공은 만만치 않다. 신문에 수필을 연재하고 수필 작법을 강의하고 있다는 저자답게 구성과 문장, 어느 것 하나 흐트러짐이나 느슨함 없이 잘 짜여있다.
[꿈꾸는 강변]을 읽으면서 정말 이 글을 참 좋다, 싶은 내용들을 추려본다.
올해도 흐드러진 꽃송이들이 하늘을 빽빽하게 덮어버린 무심한 꽃길을 걸었다. 그 아이 또래 남학생들이 꽃나무 아래서 툭탁 치고 받으며 장난을 친다. 아이야, 인생길을 가다 길을 잘못 들어서는 이가 어찌 너만 있었겠니. 다시 돌아 나오면 되는 것을 너는 오지 못할 길로 가버렸구나. 백두산 골짜기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어느 지점에 와서 이쪽 길이냐 저쪽 길이냐 택함에 따라 동해와 서해로 흘러가도, 언젠가는 한 바다에서 만나지기도 하거늘, 너는 영영 돌아오지 못할 길로 가버렸구나.
26쪽 [꿈길에서 꽃길에서]
마음 둘 곳이 없어 방황하던 중학교 2학년 남자아이, 훔친 오토바이로 달리다 새벽에 사고로 죽은 아이, “교회에서 밥 준다면서요?”라고 말하던 아이. 잘 알지도 못했던 그 아이를 불현 듯 추억하며 쓴 에세이. 세상에 그렇게 방황하다 덧없이 스러지는 안타까운 아이가 어디 그 아이 하나겠으며, 알고 보면 마음 짠해지는 사연이 어디 한둘이겠나. 그럼에도 이 에세이가 내내 마음에 와 닿는 것은 그 아이를 기억하고 간직하는 저자의 마음이 살뜰해서다. 잠시의 인연으로 알게 되었던 그 아이를, 지금은 아마 그 아이의 피붙이조차 간직하고 있지 않을 그 아이의 한 때를, 저자만큼은 의식 깊은 곳에 고스란히 접어 두었다가 어느 날엔가 이렇게 펴 보는 일이 슬프고 고맙고 아름답다. 그래, 인생은 가다가 잘못 들어서면 돌아 나오면 되는 일인데 그렇지. 그렇게 흘러가다 보면 정 반대의 방향으로 갈라지더라도 언젠가 한 때 정도에는 너른 바다에서 마주치기도 하게 되니 뭐가 어떻든 그래도 계속 흘러가볼 일이다. 그때 그 아이가 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영영 돌아오지 못할 길로 가버린 그 안타까운 인생의 맥을 추모하는 저자의 글 마디마디는 살아오면서 우리가 아는 동안 그리고 모르는 동안 어긋나버린 인생의 많은 인연을 연상하게 만드는 마중물이다.
누군가의 마음에 주목해본 적이 언제였던가. 서로를 탐색하며 마음놀이를 하는 그 짜릿함이라니.... 마음에 흐르는 이 감정이란 것이 얼마나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지 모른다. 좋은 감정이 사람사이에 흐르면 그 파급이 치달아 행복이라는 황홀을 창출하며 삶은 풍요로워진다. 우리 모두는 한 이성과 마음놀이를 하다 사랑의 못으로 뛰어들었고, 나오지 못하여 결혼하지 않았던가.
51쪽 [마음놀이]
손녀와 마음놀이를 했다는 저자. 나도 마음놀이를 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적어놨다, 다이어리에 마음놀이. 저자가 짚었듯이, 연애도 그렇다. 결국 마음놀이다. 서로의 마음 속에 있는 말들을 들여다보아 주다가 같이 살게 되고, 같이 한 시간들이 흘러가고 그렇게 마음놀이를 할 수 있는 손녀도 만나게 되고, 그런 거구나.
그 무렵 수필을 만났다. 수필은 찬란한 무지갯빛 옷을 입고 다가왔다. 변심해버린 연인의 마음이 이럴까? 온 마음이 수필에게 옮겨졌다. 수필의 늪에 풍덩 빠져버리고 말았다. 수필은 내게 거대한 물결과도 같았다. 큰 물결이 작은 물결을 덮어버리듯, 큰 감정이 작은 감정을 덮어버리듯, 수필은 내 모든 삶을 일시에 덮어버렸다. 좋은 글이 뭔지도 모르면서 그저 쓰는 게 좋아 글을 쓰느라 밤을 새우곤 했다. 그러니, 기본자세 익히느라고 한 달 내내 활만 긋에 하는 첼로가 뒤로 밀린 건 자연스런 현상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글을 쓰면서 어느 덧 십년을 보냈다.
무슨 일이든 열정을 다하여 십년을 몰두하면 전문가로 인정해 주어야 한다는 말도 있건만, 나의 글 세계는 부끄러울 뿐이다. 그럼에도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나의 졸작을 여기저기서 달라는 것이다. 나는 사양하지 않고 여기저기 지면에 내보냈다. 뿐만 아니라 그간 책을 두 권이나 엮었다.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로만 불리던 나를 사람들이 수필가 누구로 내 이름을 불러준다.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 무소의 뿔처럼 돌진하며 써댔던 결과로 얻은 이름이라 생각하며 뿌듯해 했다. 그런데 돌아보면 얼마나 야성적인 글들이었던가. 나의 행동들은 겁을 상실한 행동이었다.
136-137쪽 [첼로 줄을 갈며]
최근에 1인1책 내기가 열풍이다. 무슨 전국민 캠페인 같다. 내 유튜브 채널 하나 정도 있어야 하고, 내가 쓴 책 한 권 정도는 있어야 하는 게 요즘의 시절이다. 이런 트렌드에 대하여 [편집자처럼 책을 보고 책을 쓰다]라는 최근에 읽은 책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을 지적했다. 원고쓰기나 글쓰기는 단순히 책을 내기 위해서라기보다, 나 자신의 강점을 발견하고 개발하기 위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임미옥 수필가가 ‘수필쓰기’를 만나게 된 순간을 적은 이 내용도 그런 맥락에서 읽힌다. 글쓰기는 삶의 고통이나 고민들, 지금 이 순간에는 너무 크지만 인생 전체의 시야에서 보면 별 것 아닐 게 분명한 여러 가지 것들을 덮어버릴 수 있다. 큰 물결이 작은 물결을 덮고 큰 감정이 작은 감정을 덮듯이. 그런 글쓰기의 힘을 느꼈던 저자가 10년 간 몰두해온 수필의 세계가 바로 이 책에 담겼다. 그래서 이 책 [꿈꾸는 강변]은 아주 진중하고 진지하고 견고하다.
누군가의 마음에 주목해본 적이 언제였던가. 서로를 탐색하며 마음놀이를 하는 그 짜릿함이라니.... 마음에 흐르는 이 감정이란 것이 얼마나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지 모른다. 좋은 감정이 사람사이에 흐르면 그 파급이 치달아 행복이라는 황홀을 창출하며 삶은 풍요로워진다. 우리 모두는 한 이성과 마음놀이를 하다 사랑의 못으로 뛰어들었고, 나오지 못하여 결혼하지 않았던가. -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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