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수용소에서 (보급판, 반양장) - 빅터 프랭클의
빅터 프랭클 지음, 이시형 옮김 / 청아출판사 / 2017년 12월
평점 :
품절


코로나19 전염 사태가 길어지고 있다. 미국의 확진자 수는 조만간 2만 명을 돌파할 듯 보이며 이탈리아의 사망자 수는 1만 2천명을 넘어섰다. 각국이 전염병 관리를 위해 외국인들의 유입을 엄격하게 관리하면서 그동안 하나의 나라나 다름없었던 지구촌 시민들은 순식간에 각방을 쓰는 소원한 사이가 됐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공포에 질린 시민들이 사재기에 나서면서 정작 음식과 생필품이 간절한 사람들이 필요한 것을 구하지 못해 SNS에 눈물의 호소를 올리는 풍경도 빚어졌다. 마치 지구별 전체가 거대한 수용소가 되어가는 것 같은 요즘이다.

 

누군가는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게 된 이 시기에 비로소 자기 자신의 몸과 마음을 돌아보고 그동안 사는 일에 바빠 놓쳤던 주변의 소중한 것들을 살펴보면서 진정한 슬로우 라이프, 참다운 힐링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도 한다. 코로나 19가 우리 모두에게 좋은 의미에서의 쉼표를 선사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런 슬로우 라이프, 힐링의 시간, 멈춰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발견하는 쉼표의 기회는 먹고 사는 형편이 그래도 좀 나은 사람들의 이야기 같다. 우리나라 정부가 긴급 생활지원금을 지급하고 소상공인 대상으로 초저금리 대출을 열겠다는 발표가 나오자마자 각 지역의 주민센터와 은행 등에는 문의가 빗발친다. 어디 문의 뿐인가. 어느 은행에는 대출을 상담 혹은 신청하기 위하여 한걸음에 달려온 상인들이 새벽부터 줄을 서는 진풍경이 빚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렇게 줄을 섰음에도 상담의 기회조차 없었다고 토로하는 상인들이 적지 않다. 지금 대출을 받아야 가게가 견디는데 대출이 2달 후에 나오면 무슨 소용이냐며 한숨 쉬는 상인들도 있다. 코로나19가 쉼표가 되는 사람도 있겠지만, 마치 법원에서 날아온 차압 딱지처럼 원치 않는 마침표를 받게 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빅터 프랭클이 쓴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난데 없이 수용소로 끌려가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고 기약 없는 절망의 생활을 견뎌야 했던 저자의 기록이다. 빅터 프랭클 박사는 빈 대학에서 의학박사와 철학박사 학위를 받고 의사로 일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간다. 3년 동안의 수용소 생활 후 기적적으로 생존한 그는 수용소에서 그가 발견했던 '인간을 인간되게 하는 것'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정신분석 방법인 '로고테라피'를 이룬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빅터 프랭클 박사가 '로고테라피' 기법에 가장 중요한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과정을 스스로의 경험에 비추어 쓴 책이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크게 3가지 내용으로 구성된다. 수용소 생활의 기록, 로고테라피 설명, '비극 속에서의 낙관'의 실제 의미와 역할.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 생존기 정도로만 이 책이 읽힐 수도 있지만, 사실 이 책은 생각보다 훨씬 깊은 책이다. 1984년 개정판을 내면서 저자가 쓴 서문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원했던 것은 독자들에게 어떤 상황에서도, 심지어는 가장 비참한 상황에서도
삶이 잠재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구체적인 예를 통해 전달하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만약 강제수용소와 같은 극단적인 상황에서 이것이 입증된다면
사람들이 내 말에 귀를 기울여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책 9-10쪽

 

 

생의 어떤 순간에라도 나의 삶은 잠재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내가 어떤 취급을 받더라도 그것이 나라는 존재를 규정하는 절대적인 기준은 될 수 없다. 삶의 주체가 되는 사람은 주변의 영향을 받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심지에 따라 지옥의 한가운데에서조차 희망의 빛을 볼 수 있다. 빅터 프랭클은 자신의 체험기를 통하여, 자신과 자신 주변의 수용소 사람들을 통하여 이 사실을 증명해낸다. 삶을 움직이는 것은 모호한 행복이나 가치가 아니라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의미'라는 사실을.

 

 

이 책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발간 당시보다 오히려 지금 조명 받아야 한다. '실존적 공허' 다른 말로 하면 "왜 사는지 모르겠다."는 권태와 허무를 집단적으로 앓고 있는 세대가 바로 우리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이 실존적 공허의 문제와 해법을 아주 명확하게 짚어낸다. 코로나19 블루를 호소하는 시민들을 위하여 여러 문화예술 기관에서는 집에서 혼자 즐길 수 있는 여러가지 문화 프로그램을 온라인으로 제공하고 있는데, 간서치의 입장에서는 이 책이야말로 코로나19 블루를 개선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해결책이라고 보인다.

 

단순히 현재 벌어지고 있는 코로나19 블루 뿐만 아니라 수십 년간 여러 문화를 통하여 자리 잡은 '인간은 유전과 환경의 산물에 불과하다'는 인식에도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경종을 울린다. 유발 하라리니 칼 세이건이니 하는 학자들의 이야기가 모두 틀렸다는 것은 아니나 인간은 유전과 환경의 우연에 의하여 나타난 존재일 뿐이라는 인식은 너무나 위험하다. 빅터 프랭클 박사는 이 인식이 가지고있는 치명적인 신경증을 예리하게 짚어낸다.

 

인간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가르침, 즉 인간은 생물적, 심리적, 사회적 조건의 결과물이거나 유전과 환경의 산물에 불과하다는 이론은 태생적으로 위험을 안고 있다. 인간을 이런 식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환자로 하여금 자기가 믿고자 하는 것, 즉 자기가 외적인 영향과 내적인 환경의 담보물이나 희생물이라는 사실을 믿게 만든다. 이런 신경증적 숙명론은 인간이 자유로운 존재라는 것을 부정하는 심리치료법에 의해 조성되고 강화된다.

 


인간이 유한한 존재이고, 인간의 자유 또한 제한되어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자유란 조건으로부터의 자유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조건에 대해 자기 입장을 취할 수 있는 자유를 말하는 것이다.
책 209-210쪽

 

 

우리나라에서 프로이트나 아들러가 추앙받는 것에 비해 빅터 프랭클의 로고테라피는 상대적으로 덜 부각이 된 듯하다.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로고테라피'의 진가가 발휘될 수 있는 때가 아닐까. "인간 존재의 주요한 특징 중의 하나는 인간은 그런 조건을 극복하고 초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빅터 프랭클은 타계했지만 "인간은 가능하다면 세계를 더 나은 쪽으로 변화시킬 수 있고, 필요하다면 자기 자신을 더 좋게 변화시킬 수 있다.(책 211쪽)"는 그의 전언은 여전히 살아 있다.

 

 


인간이 유한한 존재이고, 인간의 자유 또한 제한되어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자유란 조건으로부터의 자유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조건에 대해 자기 입장을 취할 수 있는 자유를 말하는 것이다. - P20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