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대중의 탄생 - 흩어진 개인은 어떻게 대중이라는 권력이 되었는가
군터 게바우어.스벤 뤼커 지음, 염정용 옮김 / 21세기북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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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의 봄 운동이 수행되었고, 플래시몹이 출몰하고, 온갖 종류의 폭동이 일어난다. 이 불씨가 얼마나 빨리 옮겨갈 수 있는지 그리고 가상의 대중에서 어떻게 실제의 대중이 생겨나는지는 얼핏 단번에 나라 전체를 덮치는 것으로 보이는 대중 시위의 급속한 확산이 보여준다. 이것은 2004년과 2013~14년의 우크라이나, 2013년의 브라질 혹은 2016~17년의 서울의 경우에서 드러난 바 있다.
책 271쪽 [새로운 대중의 탄생] 중에서

 

 인터넷 기사 댓글란의 갑론을박은 언제 읽어도 치열하다. 거기는 언제나 두 개의 편이 있다. 중도는 허락되지 않는다. 한 쪽이 존재하기에 다른 한 쪽이 존재하는 것이므로, 이 둘 사이에는 어떤 공간도 있어서는 안 된다. 서로 첨예하게 대립하지만 서로가 달라서 맞서는 게 아니다. 오히려 둘은 닮아도 너무 닮았다. 진정한 국민의 목소리를 자처한다는 점, 자신의 세계관이 옳다고 확인해주는 의견과 미디어만 수용한다는 점, 내 편에 대한 긍정보다 대립하는 상대에 대한 부정에 더 열을 올린다는 점. 데칼코마니도 이런 데칼코마니가 없다. 댓글을 읽다보면 그 치열함이 내가 선 공간이 점점 포위해 온다. 마치 너는 어느 편이냐고 심문을 당하는 기분이랄까. 나 역시 국민인데, 이 두 개의 편이 주장하는 두 개의 국민 중 어느 쪽이 내 쪽인지 도저히 모르겠다. ‘진정한 국민’을 자처하는 호소 아래 나와 다르다면 모두가 ‘가짜 국민’이라고 속삭이는 뭉근한 목소리를 숨긴 이 대중은 누구이며, 이들에게 동조하기를 거부하는 나와 같은 다수는 또 어떤 대중인가?

 

 

 [새로운 대중의 탄생]은 기존의 질서를 흔들어 바꾼 후 다시 새로운 질서를 세우고 있는 세력이 누구인지를 탐구한 책이다. 베를린 자유대학 철학 교수인 군터 게바우어 교수와 철학 강사인 스벤 뤼커는 최근 100년의 세계를 움직이고 있는 역동적인 ‘대중’을 설명하기 위하여 다양한 이론과 사건, 최근의 여러 현상들을 아주 세밀히 살펴본다. 두 명의 저자가 여러 이론을 현미경 삼아 낱낱이 해체하여 이 책에 나열한 대중은 시민혁명을 이끌었던 그 때의 민중과는 다르다. 전통적인 이론이나 역사로부터 읽을 수 있는 대중은 현재의 대중과 무척이나 다르다. 그래서 ‘새로운 대중’이라고 이름을 붙였나보다.

 

 두 저자는 새로운 대중이 가진 여러 얼굴을 신중하게 추적하지만 이 대중의 내면까지 파고들어 그 생각이나 욕망까지 밝히려고 하지는 않는다. 어디까지나 철저하게 관찰자의 시점을 유지한다. 가능한 어떤 편향도 제거하려 노력한 덕인지 [새로운 대중의 탄생]이 밝힌 대중의 기원, 구조와 작동 원리, 발전 양상과 오늘날 대중의 활동 등의 내용은 이제까지의 어떤 이론이나 정치적 입장 혹은 이익 집단의 관점에서 자유롭다.

 

 우리는 대중이 벌어지는 대사건에 직면해 있는 동시에 그것을 서술할 적절한 이론은 없다는 이중의 문제를 알고 있다. 이 현상들에 전통적인 대중 이론을 적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페터 슬로터다이크는 이렇게 설명한다. ”사회학자들 대다수는 대중의 변화된 겉모습에 현혹되어, 대중의 사건이 현대 정치와 문화의 근본 문제가 되었던 대중의 시대는 지나갔다는 생각을 품게 된다. 이보다 더 잘못된 견해는 없다. 그렇지만 미디어 시대의 대중은 매스 미디어의 영향으로 잡다한 혹은 개별화된 대중으로 변해버렸다 .”
책 9쪽, [새로운 대중의 탄생]

 

 [새로운 대중의 탄생]을 쓴 두 저자는 대중이 변형되어온 시간을 크게 세 개의 단계로 나누어 설명한다. 첫 번째는 사회 질서를 전복시킨 민중으로 기억되는 대중, 두 번째는 1900년대 중반에 이르러 미국 중산층으로 대변되는 경제적, 문화적 동질성을 갖는 대중 그리고 그런 고전적이고 보수적인 질서에 반항하는 또 다른 대중, 세 번째는 오늘날 폭발적인 확장으로 변혁을 일으킨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의 파도를 타고 가상과 실재를 두 세계를 넘나들고 있는 대중 곧 우리의 얼굴이다.

 

 저자들은 대중이라는 단어의 어원(mass, crowd)을 추적하는 걸로 본격 대중 탐구에 나선다. 길어 올린 ‘반죽’과 ‘짓이김’이라는 의미를 통하여 대중의 속성 곧 ‘구분할 수 없게 뒤섞임’과 ‘파괴되는 개인’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전통적인 대중의 속성이다. 지금의 대중은 커다란 덩어리이지만 그 안에서 개인은 뭉개지거나 소멸되지 않는다. 새로운 대중은 밀레니얼 세대다. 연대를 체험함으로써 그것을 개인화하고 그 개인화된 사건은 무한으로 통하는 SNS를 통하여 실시간으로 전 지구에 연결된다. 이 연결은 가상의 세계에서 가상의 대중을 만들고 이렇게 창조된 대중은 오프라인에서의 행동과 결합하여 실제의 대중이 된다. 이실제의 대중 속에서 개개인은 자신의 가치관과 행동 양식, 개성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가치관에 대하여는 결코 타협하거나 침묵하지 않으며 자신과 공명하는 다수와 24시간 연결되어 있는 밀레니얼 세대의 특징이 새로운 대중의 속성과 직결된다.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대중은 그 전의 르봉과 타르드 시절의 구성체와는 성질이 다르다. 이것은 적어도 선거권이 주어지고, 미디어가 자유롭게 허용되고, 여론이 깨어 있고, 인터넷과 소셜 네트워크에 접근할 수 있는 여건을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는 나라들-따라서 개개인이 의견을 밝히고, 어딘가에 소속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나라들에서는 통용된다. 이러한 법률적 수단과 정보 교환 수단뿐 아니라 사상의 자유와 집회의 자유가 주어진 다원화된 사회에서는 개인의 무리가 특정한 장소에서 특정한 시간에 몸소 집결할 수 있다. 그들의 등장은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전해질 수 있고, 사진으로 전송될 수 있고, 거기에 소식이나 요구가 첨부될 수도 있다.
책 20쪽, [새로운 대중의 탄생]

 

 밀레니얼 세대가 새로운 세력으로 부상하여 가상과 실제의 세계 양쪽에서 커다란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과 궤를 같이 하여 이 책 [새로운 대중의 탄생]은 오늘날의 대중이라는 무리가 어떻게 영향력을 행사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래서 이 책에는 ‘흩어진 개인은 어떻게 대중이라는 권력이 되었는가?’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개인주의와 다원주의에 따라 집단과 연대가 힘을 잃고 개인으로 해체되어 대중이라는 개념 역시 과거의 유물이 된 줄 알았던 독자들은 이 책으로 말미암아 대중은 오래 전부터 있었고 지금도 있을 뿐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있으리라는 예감을 하게 된다.

 

 이 새로운 대중은 과거의 대중과는 그 영향력의 결이 다르기에 이 대중이 만들 세계 역시 이전과는 달라질 것이다. 예전의 대중은 무조건 지도자를 숭배하며 따르는 무지성과 감정의 분출에 따른 폭력성, 폐쇄성을 동반하곤 했다. 그러나 이 대중은 개방적이고 평화적이며 구조 역시 수평적이다. 아랍의 봄부터 서울 광화문까지 새로운 대중이 이뤄온 역사적 순간들로 이미 이 대중의 힘은 입증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퍼퓰리즘적 대중의 역습이다.

 

 

 여기서 특히 한국의 독자들이 이 책을 읽어봐야 할 당위성이 형성된다. 이 당위성은 선택지가 아니다. 지금도 인터넷 기사 댓글란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포퓰리즘적 대중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4장 포퓰리즘을 읽으면서 내가 왜 인터넷 댓글에서 치고 박는 두 개의 패 중에 어느 쪽으로도 동조하고 싶지 않았는지 이유를 찾았다. 왜 이렇게 네거티브가 난무하고 국민의 목소리를 자처하는 무리들이 많아졌는지 그 원인을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야 한다. 우리나라에 팽배해 있는 포퓰리즘에 더 이상 휩쓸리고 싶지 않다면 역시 이 책을 읽기를 바란다.

 

 포퓰리즘이란 생각보다 이기기 어려운 상대다. 평생 남 욕 한 번 안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게 사람의 속성임을 감안하면 포퓰리즘과 아닌 것을 구별하는 일도, 포퓰리즘을 능가하는 일도 쉽지 않다는 게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그러니 이 시대의 대중은, 스스로가 포퓰리즘적 대중이 되지 않기 위하여 공부를 해야 할 사명이 있는지도 모른다. 세월호 때, 촛불시위 때 그리고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위하여, 우리는 먼 훗날에 ‘포퓰리즘에 휩쓸려 잘못된 선택을 내렸다’는 후회를 하지 않기 위하여 [새로운 대중의 탄생]과 같은 책들이 필요하다.

증오를 전파하는 대중은 남들에 대해 no라고 말하며, 적대적인 대치 집단에 관점을 맞춘다. 이들은 포퓰리즘적 개념 구상에 부합한다. 반대로 사랑을 실천하는 대중은 자신에 대해 yes라고 말하며, 자기 자신을 따른다. (중략) 포퓰리즘의 증오를 전파하는 대중과는 달리 ‘자기애에 빠진 대중’은 자신에게 존재와 의미를 부여해주는 적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들은 스스로 만족한다.
- P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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