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선 1 - 마음이 속상할 때는 몸으로 가라 참선 1
테오도르 준 박 지음, 구미화 옮김 / 나무의마음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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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선은 종교가 아니다”
 선불교 승려가 쓴 참선 권하는 책을 읽게 된 동기는 순전히 저 한 마디에서 시작했다. 참선은 종교가 아니라는 단호한 저자의 말이 기독교인인 나를 움직였다.

이미 뉴욕 등지에서는 ‘명상’이 유행을 넘어 심리치료를 대신하는 유력한 마음 운동의 일환으로 자리를 잡았고 우리나라 번화가에도 명상용으로 운영되는 살롱이나 스튜디오들이 제법 들어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나에게는 인도발(發) 명상법이나 선불교식 명상 수련이 여전히 종교 행위로 인식되었다. 뉴요커에서 선불교 승려가 된 테오도르 준 박 스님이 쓴 [참선 1,2]는 내가 가지고 있던 것과 같은 편견이나 선입견을 허물고 명상이 왜 현대인에게 반드시 필요한지를 명료하게 증언한다.

 

 

 겉이 상하면 병원으로 가면 된다. 눈으로 볼 수 있는 곳이 고장나면 얼른 가서 CT를 찍든 MRI를 찍든 해서 약을 처방받든가 수술을 하든가. 그러나 속이 상하면 우리는 대부분 속수무책이다. 어젯밤에 상한 속이 오늘까지 아프다. 시간이 흐른다고 나을 것 같지만 천만에. 아픈 데가 바쁜 일과 속에 파묻혀 가라앉아 있을 뿐이다. 조금씩 도화선을 타고 불씨로 남아 있다가 어느 날 꽝! 폭발하고 만다. 그래서 [참선 1,2]의 저자인 테오도르 준 박도, 그의 스승인 송담 스님도 현대인에게 참선을 권한다. 

 

 


 현대인에게 참선이 필요한 이유는 멘탈을 강화하고 싶다거나, 영성을 계발하고 싶다거나 혹은 자본주의가 치 떨리게 싫어서라든가 뭐 그런 대의가 있어서가 아니다. 참선을 한다고 자본주의의 공기를 벗어나게 된다거나 갑자기 신령한 존재가 된다거나 하는 일은 생기지 않는다. 그러나 참선은 이런 세상 속에서, 외면과 내면의 자극이 거침없이 나를 집어삼켜 ‘나’는 매몰되고 오직 자극만 남게 되는 이 흐름 속에서 내가 삶의 주체인 나 자신을 자각하게 하고,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현실 직시력을 길러주고, 내 안에 영원히 파괴되지 않고 진정으로 살아 있는 나를 발견하게 한다.

 

 

 이 책은 단순한 참선법을 설명하는 책이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감수성과 공감 능력으로 세상이 ‘어떻게’가 아니라 ‘왜’ 존재하는지를 알고 싶어 애를 끓였던 저자의 생애가 오롯이 담긴 책이다.

 

저자는 책 초반에 현대 지식인으로서 그가 왜 윤택한 성공의 길이 아니라 참선가로서의 생을 택했는지를 설명한다. 그가 살아온 시간을 털어놓으며 저자가 진짜 말하고 싶은 것은 부와 성공이 부질없다는 허무주의도, 철학적 사고를 하면서 살라는 훈계도 아니다. 그것은 완전한 체험담이었다. 안전과 행복이라는 인간의 두 가지 기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오로지 물질적 전략 하나만을 배운 현대인으로서 저자에게 참선이란 어떤 유익함을 주었는지 그리고 아는 것과 알지 못하는 것과 믿는 것을 구분하는 지식인으로서 내 안에서 나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존재를 찾는 참선법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저자는 생생하고 솔직한 자기 체험담을 들려준다. 그 체험담이 얼마나 공감이 되는지 읽어본 사람은 안다. 우주의 본질 수준으로 철학적이고 거시적인 질문까지는 아니더라도 누구나 일생에 어느 한 지점에 이르면 ‘나는 대체 뭔가?’라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된다. 독자와 같은 고민을, 독자보다 먼저 혹은 비슷한 시기에 했던 저자는 ‘나도 당신과 같았다’라고 말을 꺼내며 답은 분명히 있으니 답을 찾고 싶다면 참선을 하라고 조언한다.

 


이런 대중적 공감을 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종교적이다. 불교 교리를 믿는다 혹은 기독교 교리를 믿는다는 차원에서의 종교성이 아니라 참다운 종교라면 이런 방향으로 가야하지 않을까 싶은 이상적인 종교성을 제시했다는 뜻이다. 
 
 저자는 자신이 선불교 승려라는 이유로, 절에서 그가 체험한 모든 일을 포장하거나 과장하지 않는다. 참선 수련과 관련한 선불교 내부의 사정을 꾸밈없이 이야기한다. 한국어도 모르고 한국 문화에도 익숙하지 않은 자신이 소화해야 했던 ‘어미 사자식 교육 방식’은 이제 시대에 어울리지 않으니 개선이 필요하지 않겠냐며 건의하는 부분은 마치 ‘꼰대’와 ‘라떼킹’을 과감히 거부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목소리처럼 들렸다. 또한 스님들이 무의식중에 하는 ‘종교의 연극’을 언급하며 아는 것과 모르는 것과 믿는 것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 시대 종교가 불신을 받고 있음을 꼬집기도 한다. 이런 저자의 태도 덕분에 독자 역시 더 이상 어떤 방어벽을 세우지 않고 꾸밈없는 태도로 책을 읽게 된다. 자기의 속내를 먼저 들춰보이는 진솔한 사람 앞에서 겉옷 한 장 벗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사람이 누구랴.

 

 

 무엇보다 가장 마음에 남는 것은 참선에 임할 때 가져야 하는 자세에 대한 언급이다. 소크라테스는 파이돈에서 '사람이 자기 영혼을 진지하게 성찰하고 그 영혼을 마주보려고 할 때에는 몸이 방해를 한다'고 했다. 몸에 익은 습관과 몸이 받아 들여온 정보들이 몸 속에 있는 영혼의 의식을 깨우는 일을 훼방한다는 것이다. 참선 1권 227쪽에서 저자는 이 문제를 이렇게 이야기한다. ‘우리 마음 속 표상이 결국 무의식이라는 깊은 물 속에 잠겨 있는 나 자신을 비추는 일을 방해한다’고. 그래서 선불교에서는 어린아이 같은 천진함과 순수성을 중요하게 여긴다 했다. 아이들이 전제 없이 만물을 대하는 것처럼, 우리도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 아! 그래서 예수님도 어린아이 같은 자가 천국을 간다고 하셨던가. 기존에 내가 알던 것을 내려놓고 ‘내 안에서 나를 움직이는 존재’에게로 눈을 뜨는 일이란 불교에서도 기독교에서도 어쩌면 모든 종교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사람됨이 아닐까 한다.

 

 

그러나 이렇게 절절하게 공감과 동감을 사는 책의 후반부에서 나는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정말 이렇게 복잡한 세상에서, 먹고 사는 일을 하면서 참선을 한다는 게 정말로 가능합니까? 가능하다고 해도 쉽지 않겠지요?

그래, 쉽지 않다. ‘정성과 인내가 필요하지만 틀림없이 가능하다’라고 이 책은 답한다. 그러니 이제 선택은 나의 몫이다. 쉽지 않으니 아예 시작조차, 시도조차 하지 않을 것인가?

 

 

 

이 책이 필요할 어쩌면 심리상담이나 우울증 약보다 훨씬 더 이 책이 간절할 사람들을 위하여 이 책의 한 부분을 실어본다.

 

 

 삶은 사건의 연속이고, 우리는 그 사건들로 인해 산만하고 속상해진다. 과거의 일이나 미래를 떠올리면 현재의 생각과 감정이 불안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관심을 되돌려 ‘이뭣고?’하고 스스로에게 물으며 대의심을 일으킬 수만 있다면 고통은 한순간 사라질 것이다. 동시에 관심이 자연스레 현재에 맞춰지면서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내적 변화와 주변 상황을 좀 더 명확히 인식하게 된다.
 [참선 1], 253쪽 중에서

 

 

지금 이 순간 바로 여기서 내 몸과 마음 안에 있는 진정한 ‘나’, 경험의 주체를 왜 찾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사람들도 있다. 실은 내가 그랬다. 진짜 나 같은 거 몰라도 오늘 하루 먹고 사는 데 별 지장이 없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난 지금은 비로소 알았다. 더 이상 나는 ‘내가 되고 싶다’ 혹은 ‘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로 살 필요가 없다. 나는 그냥 본래의 나로 살면 된다. 외부로부터의 자극과 내부로부터의 욕망이 빚은 ‘원하는 나’가 아니라 나 자신이 누구인지를 아는 나로 살면 삶은 얼마나 자유롭고 후련하고 당당할까. 종교의 유무 혹은 여부를 떠나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존재로서의 자신을 발견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아마 이 책은 든든한 동지이자, 가이드 그리고 응원군이 되어줄 것이다. 

 

 

“시궁창에 빠진 사람이 거기서 허리를 쭉 펴고 앉아서 조금 더 있고 싶다고 말해. 한번 말해봐. 그 남자가 정신적으로 건강한 거야?”
스님은 내 반응을 살피시고는 무척 즐거워하시며 말씀을 이어가셨다.
 “정신적으로 비정상이라고 말해야 맞제?”
 “네, 정상이라고 말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나는 바보처럼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들은 시궁창보다도 훨씬 더 더러운 정신 상태에 빠지거든. 그런 감정들이 시궁창보다 더 더럽고 고약한데 말이야. 우리가 정말 시궁창에 빠진다면 옷이나 피부 같은 껍데기만 더러워지겠지. 옷은 빨면 되고 몸은 씻으면 해결되잖아. 하지만 우리가 탐욕과 화, 망상에 빠지면 내면이 더러워지고 병이 생긴단 말이여. 마음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몸까지도 그렇게 돼.”
 나는 스님의 말씀을 외우려고 애쓰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건강을 위해 몸을 깨끗이 유지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 왜 마음에 대해서는 그러지 않을까?”
[참선 1], 1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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