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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
루이스 알베르토 우레아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2월
평점 :
나에게 아버지란 어떤 존재인가? 내게 ‘아버지’의 얼굴은 그저 나에게 아빠이고 엄마에게 남편이고 한때 학교에서 선생님이었고 이웃들에게는 다소 쌀쌀맞은 아저씨의 얼굴이다. 왕래가 잦지 않아서 다소 희미하지만 고모들에게는 남동생, 조카들에게는 친구 같은 삼촌의 얼굴도 있다. 아버지의 얼굴은 하나가 아니다. 내가 미처 알지 못하는, 너무나 많은 아버지의 얼굴이 있을 것이다. 그 많은 얼굴이 모여서 하나의 존재가 된다.
그런 아버지가 어느 날 없어진다면? 아버지와 영영 이별한다면? 그 모든 얼굴들과 헤어져야 한다면? 그 얼굴 하나하나에게 작별을 하느라 아마 시간은 퇴근시간 러시아워처럼 정체되지 않겠는가.
루이스 알베르토 우레아의 소설 [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은 한 가족(가족이라고 해야할지 민족이라고 해야 할지ㅎㅎ 암튼 좀 거대한 일족)의 정신적 지주였던 노인 빅 엔젤의 마지막 생일파티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다. 루이스 알베르토 우레아는 시, 소설, 수필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드는 작품 활동으로 펜포크너상, 에드거상, 라난 문학상 등을 수상하고 퓰리처상 최종 후보에 오르며 필력을 인정받은 작가라고 한다. 이 작가의 이름이 왜 이렇게 생소한가 했더니 그의 장편소설이 국내에 소개되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은 작가가 그의 형의 마지막 생일 파티에 영감을 받아 쓴 책이라고 한다.
데 라 크루스 집안의 가장인 미겔 엔젤은 죽어가고 있다. 모든 사람은 결국 시간의 흐름과 함께 죽어가는 존재들이긴 하나, 미겔 엔젤의 경우는 분명히 죽어가고 있다. 이번 생일이 아마 그의 마지막 생일이 될 것이다. 빅 엔젤로 불리는 미겔은 그는 인생의 마지막을 앞두고 온 가족을 불러 모은다. 그런데 100세가 된 빅 엔젤의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그는 어머니의 장례식과 생일 파티를 연이어 열게 되었다. 모든 생애는 죽음과 탄생의 직조인가. 장례식과 생일 파티의 콜라보는 데 라 크루스 가족의 개성 넘치는 인물들과 그들의 기억들이 촘촘하게 엮이면서 제멋대로의 풍경으로 빚어져 간다.
아마 이 소설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을 수도 있다. 예측불가한 인물들의 이야기와 회상들은 정말 제멋대로 튀어나와서 자기 할 일을 하고 페이지 뒤로 넘어간다. 이 제멋대로의 이야기들이 흘러가는 데 툭툭 결정타들이 튀어나와 독자의 마음에 훅을 훅훅 건다. 이민생활의 고단함, 그 처절함, 이민자들을 대하는 미국사회의 저열함 그리고 동서양이 모두 공감하는 ‘아버지’의 다사다난함. 이야기들은 그렇게 흘러흘러 빅 엔젤의 죽음까지 다다른다.
소설은 이래서 읽나보다. 우리의 세상을 보게 되고 내가 살아온 것과 비슷한 궤적을 발견하고 작가와 혹은 소설 속 인물과 더불어 감정들을 공유하고 교류하고 때로는 증폭시켜가면서. 그런 경험들을 선사하는 게 소설이라서, 그래서 우리는 아마 한 해가 가는 이 시간까지 소설을 읽으면서 살아가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