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그리 빈테르의 아주 멋진 불행
얀네 S. 드랑스홀트 지음, 손화수 옮김 / 소소의책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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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잉그리 빈테르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세 명의 딸과 변호사 남편과 함께 산다. 별 걱정 없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엄마이자 아내로 보이지만 사실 그는 변덕스럽고 별나고 신경증적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그는 오도 가도 못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내놓은 집은 팔리지 않고, 학부모회와 직장에서는 갈등이 이어지고, 성가신 경보기 외판원과 예전 같지 않은 결혼 생활 때문에 불안해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게다가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대학 사절단의 일원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에 가야만 한다. 그 목적은 해외 국립대학과의 자매결연이지만 잉그리 빈테르는 낯선 러시아에서 엉뚱한 사건에 휘말려든다. 


 그러면서 시베리아의 강제수용소로 보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목감기 약을 과다하게 복용한 탓에 갖은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사절단원이 되어 방문한 러시아에서 과연 그녀는 모든 일을 무사히 마무리 지을 수 있을까? 안전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아니,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그녀가 원하는 것일까?

 

그동안 읽어 본 노르웨이 소설은 안개 낀 쪽빛 밤하늘처럼 서늘하고도 우울한 분위기의 소설이 많았다. 등장인물들은 죄다 비밀을 간직하고 있으며 너무나 진지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이 소설 [잉그리 빈테르의 아주 멋진 불행]은 그간의 노르웨이 소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작품이다. 얀네 드랑스홀트가 쓴 이 작품은 벌써 노르웨이 코미디언을 비롯하여 신선하고 재미있고 섬세하다는 호평을 듣고 있다.

 불안한 현실과 그 속에서 슬프고 위태롭게 좌충우돌하는 여성의 심리. 잉그리 빈테르를 통해서 작가는 독자가 살아가면서 사소하게 혹은 일상적으로 내리는 수많은 선택과 결정들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돌아보게 한다.

 

 

 단풍이 우거진 숲속에서 두 개의 오솔길을 앞에 두고 선택을 내려야 하는 내 모습을 떠올렸다. 가끔은 두 개의 길 중 하나는 옳은 길, 다른 하나는 잘못된 길을 의미할 때가 있다. 잡초가 우거진 비좁은 오솔길과 널찍하고 환하게 열려 있는 오솔길. 하지만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선 어떤 길이 어디로 이어질지 전혀 알아볼 수가 없다.
 문제는 내가 이미 선택을 내렸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새집을 구입하며 지나왔던 길.
 목감기 약을 들이켰던 길.
 훔친 성화를 숨겼던 길.
 아니, 어쩌면 나는 여전히 숲속의 양 갈래 오솔길 앞에서 어떤 길로 발을 옮겨야 할지 선택을 앞두고 있는지도 모른다.
 342쪽

 

 

 별일 없이 순탄한 가정처럼 보이나 우리의 가정은 실은 저마다 각각의 이유로 많은 걱정을 안고 산다. 마치 톨스토이가 [안나 카레리나]에서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 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고 쓴 것처럼. 잉그리 빈테르의 가정도 그렇다. 직장은 불안스럽고 가정은 불만스럽다. 팔리지 않는 집 때문에 부부사이 마저 서먹해진 그녀는 하필 이 때 타국으로 출장까지 하야 하는 상황이다. 내키지 않는 마음을 않고 갔던 출장지에서도 일은 꼬이기만 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갑자기 툭 터져나온 잉그리 빈테르의 고백은 아주 흥미롭다.


 

 

“우리는 세상입니다. 우리는 어린아이들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에겐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 스스로의 삶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명백한 사실이며 진실입니다! 당신과 나!”
345쪽

 

 

이 한 부분을 위해서 앞에서부터 수많은 고구마를 먹여온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이 부분은 아주 시원하다. 잉그리 빈테르를 통하여 저자가 독자에게 선사하는 사이다는 이것 외에도 또 있다. 역시 이런 소설에서 로맨스가 빠질 수야 있나.

 소설의 끝에서 잉그리 빈테르는 다시 그녀의 일상으로, 가정으로 돌아간다. 많은 번뇌가 있었으나 그녀는 수많은 선택의 갈래를 거쳐 그녀가 가장 편안하게 느끼는 자리로 갔다. 작품의 마무리에 남편이 하는 말이 정말 재미있다. 우리의 잉그리 빈테르는 정말 ‘웃픈’ 삶을 사는구나. 우리 사는 거 다 그런 거 아니겠냐는 저자의 말이 들려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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