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는 왜 여자의 말을 믿지 않는가 - 은밀하고 뿌리 깊은 의료계의 성 편견과 무지
마야 뒤센베리 지음, 김보은.이유림.윤정원 옮김 / 한문화 / 201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몸이 안 좋아서 진료를 가면 가장 자주 듣는 진단이 이거다. '원인이 스트레스일 가능성이 크다'. 내 경험상, 두통이든 근육통이든 몸이 평소와 달리 군데군데 불편하거나 아파서 병원을 찾을 때 병인을 확실하게 듣지는 못했다. 직업이 뭐냐고 묻고, 스트레스가 많은 직업이니 가능하면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을 피하라는 진단을 들으면 병원을 나오면서 이런 생각이 든다. '스트레스가 그 정도로 대단히 강력한 것인가, 아니면 병인을 찾지 못하니까 스트레스로 퉁 치는 건가?'. 과학과 의학의 맹시가 포착해내지 못하는 신체의 변화를 밑도 끝도 없는 스트레스로 밀어붙이는 건 환자의 입장에서 너무나 위험천만한 일이 아닌가 싶다.

 

2. 남성 환자가 받는 진료와 여성 환자가 받는 진료가 다르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었다. 왜냐면 남성 환자와 같이 진료를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전립선 치료제라고 검색했을 때의 결과와 난소 치료제라고 검색했을 때의 결과가 매우 다르다는 것은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전립선이라고만 쳐도 바로 전립선 치료제라고 검색어가 완성된다. 성격이 다를 수는 있겠지만, 난소 질병의 경우 검색어 완성은 고사하고 검색 결과에 따라 나오는 정보의 양도 많지 않다. 물론 이건, 검색어를 넣는 유저의 규모에 따라 영향을 받는 부분도 있다.) 이 책 [의사는 왜 여자의 말을 믿지 않는가]를 읽어보면 왜 위와 같은 정보 차이가 나는지 알 수 있다. 바로 몇 십년 전까지만 해도 난소암은 증상도 없는 침묵의 질병이라고 알려져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난소암 환자들이 통증이나 병증을 호소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여성들은 난소암으로 인해 발생하는 고통을 의사에게 호소해왔다. 의사들이 믿지 않았을 뿐이다. 여성들은 남성보다 감정적이고 예민하기 때문에 히스테리거나, 심인성 질환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혹은 귀신에 들렸거나)

 

3. 이 책은 굉장히 충격적이다. 이 책의 추천인인 윤정원 녹색병원 산부인과 과장의 추천사는 이 책이 어떤 일을 해 냈는지를 알려준다. "저자인 뒤센베리는 우리가 막연하게 '여자라서 내 말을 안 믿어 주는구나'라고 가지고 있던 의심이 실제적인 차별로 존재했음을 광범위한 전문가 인터뷰와 설문조사, 연구들을 통해 증명해낸다. 여성 환자가 2/3인 알츠하이머 치매나 만성통증질환들은 정부 연구비나 재정 지원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약물이나 의료기기는 여성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하지 않기 때문에 어떤 효과가 나는지 정확히 모르며, 심장마비를 호소하는 환자 중 오진으로 집으로 돌려보내지는 환자는 여성이 남성의 7배에 이른다." (추천의 글 7쪽 중에서)

 

4. [의사는 왜 여자의 말을 믿지 않는가]를 읽고 나서 가장 강하게 드는 생각은 성차별이나 성평등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우리는 여전히 우리의 신체에 무지하다'는 사실이었다. 이 책을 페미니즘의 시각에서만 봐서는 안되는 이유가 이것이다. 우리 모두는 여전히, 누구나, 자기 자신의 몸에 대해서조차 무지하다. 어디가 어떻게 얼마나 아픈지를 기술하는 일조차 서툴다. 문제는 이것을 환자들만 인지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의사들이 누구보다 먼저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의사들은 몸의 이상을 100% 진단할 수 없다. 그러니 그저 기분탓이나 스트레스탓으로 병인을 몰아서 환자가 유별나다거나 예민해서 그런 고통을 호소한다고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여성, 남성의 문제가 아니라 환자와 의사 모두가 꼭 읽어봐야할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