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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 연인 ㅣ 로망 컬렉션 Roman Collection 13
전경린 지음 / 나무옆의자 / 2019년 10월
평점 :
연애는 뭐고 연인이란 어떤 존재일까? 아마 우리는 평생에 걸쳐 이 물음을 되새김질하는 것 같다.
전경린 작가의 최근작 [이중 연인]의 표지는 마치 선으로 무심히 낙서를 해 놓은듯한 모양새다.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면 이게 무슨 이미지인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조금 멀리서 표지 전체를 보면 알 수 있다. 세 사람의 표정, 서로에게 향해 있으나 눈맞춤은 하지 않는 그들의 얼굴. 이 작품 속에서 주인공과 동시에 연애에 들어선 두 명의 남자 중 한 명인 황경오가 이런 이야기를 한다. “누구의 인생이나 너무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폐허인 거야. 무너진 잔해들로 가득한 폐허이지. 폐허를 덮기 위해 다시 뭔가를 하고, 또 하는 거야.”(책 131쪽) 우리의 연애도 그런 것일까. 가까이에서 보면 아무런 의미 없는 낙서 같은 순간들과 감정의 파편들이 멀리서 보면 자못 무시할 수 없는 선이 되어 우리들의 얼굴을 그리고 있는 것일까. 이 얼굴을 그리기 위하여, 우리는 다시 뭔가를 하고, 연인을 찾고, 또 연애를 하는 것인가 한다.
[이중 연인]은 나무옆의자 로맨스소설 시리즈 로망컬렉션의 열세 번째 작품으로 발간된 소설이다. 주인공 수완에게는 두 명의 연인이 생긴다. 한 명은 공기처럼 가벼운 이열, 또 다른 한 명은 사막의 모래처럼 뜨거운 황경오다.
이열은 무엇이든 가볍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그의 인생에 무거운 건 없을 것 같았다. 황경오는 강렬하고 자극적이고 매력적이고, 이열은 담담하고 소소하고 편안했다.
143쪽
그러려던 건 아니었다. 수완은 흔히 말하는 양다리를 걸치고 싶은 생각도, 그럴만한 맹랑함이나 기술이 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다만 그녀는 이열의 말처럼 문을 열어두고 있었다. 보통 30대 중후반이 되면 남자든 여자든 문을 열어두는 데 인색해진다. 수완의 말처럼 열린 문으로 뭐가 들어올지 모르니까. 그러나 이열의 말이 마치 주문 같아서였을까. 수완은 문을 열어 두었고 두 남자와 연애를 했다.
소설을 다 읽고 나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황경오하고도, 이열하고도 연애를 하고 싶지 않다고. 이건 아마 내가 아직 열린 문이 아니기 때문일 수 있다. 어쨌건, 막연한 호감만으로는 잡히지 않는 바람 같은 사람도 나에게는 너무 어렵고, 자신의 싸움을 상대에게 미루는 덜 자란 남자도 나는 감당할 수 없다. 다만, 이 소설의 끝에 그것 하나는 정확하게 인지한다. 어떤 남자가 나에게 좋은 남자인 줄은 모르겠으나, 어떤 남자가 나에게 나쁜 남자인 줄은 알겠다.
작가의 말이 너무 좋아서, 그 마지막 문장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이제 사랑을 배우며 서로의 폐허를 덮어 주고 시원의 맑은 얼굴을 건져 낼 수 있으면 좋겠다.
207쪽 작가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