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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면의 역사 - 평평한 세계의 모든 것
B. W. 힉맨 지음, 박우정 옮김 / 소소의책 / 2019년 8월
평점 :
평면은 우리가 무심코 바라보는 모든 곳에 존재한다. 그곳은 바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곳으로, 원래의 자연적 모습과 땅의 질감을 잃어버린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뒤덮여 납작해진 경관이다. 계획된 도심 주거지 건축이다. 평평한 운동장과 컴퓨터 게임 화면이다. 우리의 시각적 삶을 지배하는 픽셀 또는 프린트로 뒤덮인 평평한 정보의 표면이다. 평면은 자연이 가지고 있는 지형의 다양성에 대한 추상적이고 인공적인 공간의 승리이다. 평면의 일부는 보는 사람에 따라 아름다움을 느끼기도 한다. 또 다른 일부는 차마 눈으로 보기 괴로울 수도 있다. 평면은 문명화의 상징이기도 하고, 살아 숨 쉬는 지구에 대한 인간의 불경함의 표시이기도 하다.
20-21쪽
<네모의 꿈>이라는 노래가 있다. 우리 사는 지구는 둥근데 어째서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공간들 속에는 네모가 가득하냐고 묻는 노래다. ‘네모난 아버지 지갑, 네모난 지폐, 네모난 팜플렛, 네모난 학원’. 여기 등장하는 네모난 것들은 모두 인위적인 것, 그러니까 사람이 만든 것들이다. 자연적인 것의 정반대 측에 서 있는 것들이다.
B W 힉맨이 쓴 [평면의 역사]를 읽다보면 이 노래가 연상된다. 이 둥근 지구에, 바다의 수면은 둥글고, 산은 울퉁불퉁한 이 지구에서, 사람들은 평평하게 땅을 다져놓고 산다.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공간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는 ‘평면’이다. 바닥면, 벽면, 가구면. 하다못해 우리가 날마다 쓰는 스마트폰이나 신용카드의 기본 형태는 ‘평평하다’. 그렇게 꾸며놓고, 그런 평평한 것들로 도배를 하고 살아가는 사람의 신체는 정작 평면이 없는데도 그러하다. 참 이상한 일이지?
이 책을 읽고 나서야 비로소 ‘평면’이 인공적인 공간이며 이 평면을 문명화의 상징으로 바라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면서 위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되었다. 내가 쓰는 거의 모든 것들이 평평하지만, 정작 내 신체도, 내 생각도 평평하거나 밋밋한 구석은 없다는 현실 인식이 든 것이다.
저자는 왜 인간은 자연계의 평면화에 그토록 많은 노력을 쏟아 부었는지와 왜 인간은 인공적으로 평평한 사물의 제조에 사로잡히게 되었는지, 이 두 가지 질문에 알맞은 답을 찾기 위하여 276페이지에 이르는 짧지 않은 여정을 안내한다. 단지, ‘평면’을 설명하는 게 아니라, 인간의 공간 인식이 어느 지점으로부터 출발하여 어떻게 오늘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추적하고, 이 추적의 단서로 동서양의 신화와 여러 역사 및 문화적 요소들을 그러모았다. 공간에 대한 새로운 개념, 신선한 인식을 준다는 면에서 이 책은 재미있고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