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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품격 - 삶이 곧 하나의 문장이다
이기주 지음 / 황소북스 / 2019년 5월
평점 :
절판
나는 직조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씨줄과 날줄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그 가운데 서로 교차하고 겹치면서 엮여 가는 그 감각이 직조(織造)라는 단어에 넉넉하게 묻어난다. 이 감각은 때로는 창조와 생산이라는, 무언가를 만들어간다는 짜릿하고 생동감 가득한 기운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때로는 노동과 피로라는, 한껏 달음박질을 한 뒤에 정수리부터 뒷목까지 모든 에너지가 한꺼번에 빠져 나가는듯한 고단함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살아가는 일은 그 자체로 언덕과 내리막, 평지와 진흙탕길이 교차하듯 직조되는 일이고 ‘나’라는 존재 역시, 내 생애라는 어떤 시간과 그 속에서 움직여가는 내 자신이 직조하여 만들어진다.
이 직조의 감각이 잘 어울리는 또 다른 개념으로 ‘시간’이 있다. 시간을 의미하는 그리스어는 두 가지다. 수평으로 흘러가는 연속적인 시간의 개념인 크로노스와 특정한 혹은 순간이나 주관적인 시간의 개념인 카이로스다. 개개인은 누구나 저 두 가지 시간이 직조된 총체적 시간을 살아가기 마련이다. 삶은 자기만의 주관적인 시간, 그러니까 회상이나 추억 혹은 몰입(시간을 초월하여 시간이 가는 줄 모르게 집중) 같은 카이로스와 누구에게나 똑같이 흘러가는 24시간 7일과 같은 보편적인 크로노스가 교차하며 엮어낸 양탄자 위를 달리는 일이다.
베스트셀러 작가인 이기주 작가의 신간 [글의 품격]에서 이런 시간의 개념을 만나서 대단히 반가웠다. 누구나 자기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을 제외하면 그 어떤 삶에도 공통점은 없다. 누구에게나 시간은 24시간인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의 시간은 실은 저마다 다 다르게 흘러간다. 카이로스와 크로노스로 직조된 시간의 총체, 이것들이 만든 카펫의 커다란 그림은 같은 게 있을 수가 없다.
같은 주제, 비슷한 감상으로 글을 쓰더라도 사람마다 글이 다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글의 품격]은 이기주 작가가 어머니의 병환과 회복, 작가로서의 사유, 아버지와 어머니의 아들로서 그리고 사회인(기자)으로서 생각하고 느꼈던 감각들을 직조한 책이다. 그 생각과 느낌들은 오래 숙성하였다가 건져 올려, 생풀의 냄새가 나는 날것이 아니라 차분하게 숨이 가라앉아 단정하고 부드럽다.
책을 다 읽고 나서 그 부드러운, 원만하고 살가운 그런 마인드를 배우고 싶다고 생각했다. 강렬한 메시지를 강속구로 던져 메다 꽂는듯한 글이나 책도 좋지만, 때로는 이렇게 부들부들한 우유 푸딩처럼 뭉클하고 담백한 글도 좋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