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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할 때 뇌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 - 그저 못생긴 화학물질 덩어리일 뿐인 뇌가 어떻게 행복을 만들까?
딘 버넷 지음, 임수미 옮김 / 생각정거장 / 2019년 6월
평점 :
절판
[행복할 때 뇌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알지 못한다고 해도, 내가 행복을 느끼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다. 진한 브라우니 한 조각을 입에 넣고 그 맛을 느끼며 즐거워할 때, 내 식도와 내 장기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모른다고 해도 브라우니를 만끽하는 데에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는 것처럼.
하지만 내가 행복을 느낄 때, 내 머릿속에서 어느 기관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그것은 어떤 원리에 의하여 나타난 작용인지를 알고 있다면 다음에 그 행복감을 다시 불러오는 것이 훨씬 수월한 일이 될 수는 있다. 가령 너무 너무 화가 나는 일이 생겼다거나, 하는 일마다 족족 풀리지가 않아서 실의에 빠져 기운이 없다든가 할 때 말이다. 모든 일이 잘 되어서 만족감을 느끼는 그런 상황에서는 사실 행복에 대한 열의가 크지 않다. 목이 마르지 않을 때에 눈 앞에 있는 물 한 잔은 큰 의미가 없듯이. 그러나 뙤약볕 아래에서 몇 시간이나 행군을 한 사람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딱 하나 뿐일 것이다. 물!!!!! 불운의 늪에 빠져 있다거나 누군가의 폭언과 폭력에 시달려 괴로운 날이라거나 이것도 저것도 아니지만 사는 게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어서 왜 사는 건가 싶은 고민에 빠지는 그런 날들에 우리는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을 입에 올린다. ‘아, 행복하고 싶다.’ 그럴 때에, 내 뇌 어딘가에 저장되어 있는 행복 기억을 스르르 불러올려, 그 행복감으로 내 정신 전체를 촉촉이 적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마 그럼 우울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들도, 무기력을 고민하는 사람들도 없어질거야.
[행복할 때 뇌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의 저자 딘 버넷은 젊은 뇌과학자다. 그는 행복과 뇌와 나라는 아주 어려운 관계를 뇌과학으로 풀어내려 시도했다. 이 책은 그 시도의 결과다. 행복할 때 뇌 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행복하려면 뇌 속에 어떤 호르몬이 분비되어야 하는지 결론은 없다. 이 책은 결론을 말하려는 책이 아니니까.
사실은 (아직) 아무도 세로토닌의 증가가 뇌에서 실제로 어떤 작용을 하는지 모른다. 만약 단순히 행복한 감정을 유발하기에 세로토닌 양이 부족한 거라면 문제는 간단할 것이다. 하지만 신진대사나 뇌가 움직이는 속도를 봤을 때 SSRIs는 세로토닌 수치를 거의 즉각적으로 증가시킨다. 그런데 대부분의 SSRIs는 정량을 복용한 뒤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몇 주가 걸린다. 따라서 행복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세로토닌 자체가 아니라 세로토닌이 간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는 다른 어떤 대상이다. (중략)
근본적으로 행복의 근원을 특정 화학물질에서 찾는 것 자체가 잘못된 접근법인 듯하다. 화학물질이 행복에 관여하는 것은 맞지만 그 근원은 아니다.
33쪽
이 때문에 물리학이나 수학은 제대로 된 과학으로 여겨질 때가 많다. 아마도 다른 분야의 교수나 학자들도 잠재의식적으로 물리학과 수학을 연구하는 동료들처럼 대우받고 싶은 욕구가 있으며, 따라서 물리학과 수학을 따라 하려는 시도를 하는 건지도 모른다. 인간의 행동이나 감정처럼 매우 복잡하고 난해한 것에조차 공식을 만드는 거다. 행복 같은 것에다가 말이다.
51-52쪽
행복은 무엇인가라는 정의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단순히 ‘네가 행복할 때’에 대한 질문만 물어봐도 백이면 백 사람이 각각 다른 대답을 한다. 그게 사람이다. 그런 사람에게 ‘행복의 정의’가 어떻게 한 가지 일수 있을까? 행복이라는 것 자체가 복잡하고 난해하다. (어떤 책은 매우 간단하고 명료하다고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그런 행복이라는 현상 혹은 기분, 상태와 관련하여 놀랍도록 복잡하고 미묘한 뇌라는 장기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혹은 영향을 받는지)를 파헤친다는 건, 문외한인 내가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래서 저자는 뇌의 어떤 기능에 행복에 직결되는지를 공식을 세우려는 시도가 아닌 다른 측면에서 접근한다. 집, 일, 인간 관계, 섹스, 유머(웃음) 등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몇 가지 커다란 틀에서 사람이 느끼는 행복감이 어디로부터 오고, 왜 오는지를 추적했다. 사무실에 앉아서 키보드만 두드리고 마우스나 굴리면서 추적한 게 아니다. 저자는 자기를 실험 대상으로 삼아 직접 발로 뛰며 취재한 것들을 느끼고 분석한 것들을 이 책에 담았다.
[행복할 때 뇌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이 비슷한 주제의 책 중에서 가장 탁월한 점은 쉽게 설명한다는 점이다. 물론 초반에 뇌 속에서 분비되는 호르몬들을 이야기할 때는 눈이 팽글팽글 돈다. 하지만 초반 첫 꼭지만 넘어가면 그 뒤부터는 술술 읽힌다. 표현이나 설명이 어렵지 않아서다.
뇌를 자극해서 행복하려는 시도는 사실 의미 없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가 설명한대로 사람이라는 존재는 너무나 다양한 자극과 복잡한 과정을 통해서 행복감을 만나기 때문이다. 다만, 그때의 그 행복감이 어디로부터 왔는지를 내가 알고 있다면, 그 행복감이 너무나 절실하게 필요할 때 비슷한 기분이나마 내도록 스스로 자극을 줄 수도 있지 않겠나. 그런 노력이야말로 우리가 진짜 행복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들이 아닌가 싶다.